무엇보다도 먼저, 새해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말을 고르는 첫 순간부터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복을 기원하기엔 너무 많은 운의 배신을 목격해 버렸고, 행복을 기원하기엔 그 기준을 잘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무탈하고 평안하길 바라다가도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입니다. 어떤 이의 평안은 바라는 것이 어렵습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이젠 조금 어른이 되어, 타인의 삶의 깊이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어깨를 으스대던 이전의 저의 모습이 무색하게도, 누군가의 세상은 저의 언어로 인해 종종 납작해집니다.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욕심은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가끔은 제가 손가락질하던 아무개의 모습이 제 안에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곤 작게 놀랍니다.
누군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설거지통 속에도 시는 나온다.’ 언젠가 봤던 영화 속 인물의 대사입니다. 누추하고 비루한 삶의 순간에도 아름다움과 문학이 있다는 그 말이 다시금 크게 와닿는 최근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아주 빛나는 것들이 아주 어두운 것들 중에 있었습니다. 혹은 그것들이 동시에 뒤엉켜 때로는 먼 곳에서, 때로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다가왔습니다. 그럴 때면 대체 어느 쪽으로 눈을 부릅떠야 하는지, 혼란함에 말문이 막히기도 했습니다. 흑과 백, 명과 암, 생과 사. 모든 것이 아주 얇은 선을 사이로 크게 달라지고 있으며, 이 와중에도 우리를 훌쩍 압도해 버리는 아주 거대하고도 무작위한 삶의 흐름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제게 막연하게 느껴지던 허무주의를 일순 이해하게 만드는 계기였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당연하게도 2025년이 되었습니다. 개인의 고통과 시대의 고통이 얼마나 크던지 간에, 자비 없는 시간의 흐름은 또다시 시작을 선포합니다. 여전히 해결된 문제는 없습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습니다. 어제의 문제는 오늘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저는 우리 앞에 펼쳐질 또 다른 365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그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하고도 낯선 감각을 이겨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그 찰나의 순간,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하는 누군가의 복을 기원하고, 좋은 노랫말을 가진 음악을 찾아 듣습니다. 영하의 날씨에도 타종 행사를 듣기 위해 까마득히 모이고, 일출을 보기 위해 이른 아침 몸을 일으킵니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그 몇 초의 순간이 지니는 의미는 대체 무엇일까요.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의 기원은 어디로 가닿게 되는 걸까요. 그렇게 나눠진 마음들은 어디에 어떻게 남아 기능을 하게 되는 걸까요.
어제의 고통이 오늘의 고통으로, 어제의 미뤄둔 것들이 오늘의 과제로 계속하여 이어지고 있지만, 달라진 것은 있습니다. 우리는 시작이라는 땅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들이 믿는 것은 그 시작의 땅이 주는 힘이겠지요. 모든 것이 이어져 있으며 이전과는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음에도, 그 찰나의 변화가 가르는 희망의 가능성에 마음을 걸어보기로 한 것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그 순간 쏟아져 나왔을, 그 보이지 않는 마음과 기원들을 믿어보기로 합니다. 그 각각의 소원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든지 간에, 그것들이 추동할 시작의 걸음들을 믿어보기로 합니다. 설거지통 같은 비루한 세상과 삶임에도, 그 안의 시를 찾아내는 간절한 마음들을 믿어보기로 합니다.
그렇기에 이젠 거창하고 원대하며 허황된 새해 소망을 꾸지 않습니다. 12월 31일의 부족함이 1월 1일의 부족함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인정하며, 모든 양가적인 것들이 함께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그저 저는 어떤 마음들을 믿은 채로. 그들과 함께, 그리고 또 따로. 그렇게 시작의 땅에 서기로 합니다. 특별하진 않아도 평범하게 무탈하길, 종종 반짝이는 어떤 것들을 마주하길, 허무를 이겨낼 강력한 다정을 만날 수 있길, 납득할 수 있는 세상을 마주하길, 조금 더 넓게 사고하고, 조금 더 건강하길. 자비 없는 시간의 흐름보다 진정으로 본인이 몰두해야 하는 걸음에 더 집중할 수 있길, 이리저리 헤매다가도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되기를. 그런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잘 지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