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불투명한 마음과 투명한 햇빛 사이에서 쓰고 그리는 작가 사사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처음에는 캘리그라피에서 시작했어요. 좋아하는 가사나 문장을 글씨로 쓰는 걸 정말 좋아했거든요. 그때도 붓펜이 아닌 얇은 펜을 사용해서 글씨를 썼어요. 그렇게 작업을 진행하다가 글씨만으로는 감정이나 느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씨 주변에 작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러다보니 계속해서 저의 작업들을 확장해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성이 안 찬다고 해야할까요? 가사나 문장이 가진 감정선이나 느낌을 저만의 방식으로 더 잘 표현하고 싶었는데, 그 당시 작업했던 것처럼 글씨를 적거나 작게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는 그게 부족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점점 그림의 크기를 키우고 그림의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가사나 문장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던 것 같아요.
사실 펜화라고 하면 보통 사실적이고 꼼꼼하게 그린 이미지가 떠오르잖아요. 그런데 제 작품에서 그리는 펜화는 그와 조금 다른 성향을 가진 것 같아요. 다른 펜화 작품들이 정교하고 사실적인 표현을 지향하는 반면, 저는 정확한 현실을 그리기보다는 그때 느꼈던 감정이나 인상을 그대로 전달하려는 방식에 집중하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나무를 그린다고 해도, 다른 펜화 작가들이 실제 나무의 질감과 생동감을 표현하려 한다면, 저는 그 나무가 뭔가 멎어 있는 정적인 느낌을 주는 방식으로 그리려고 해요. 마치 기억에 조금 뭉뚱그러진 채 남은 순간의 장면을 남기듯이요. 그래서 제 펜화는 더 뭉툭하고, 정교한 기술보다는 선을 겹쳐가며 쌓아가는 느낌이죠. 제가 펜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 과정에서 섬세하고 오밀조밀한 표현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저는 작은 것들을 세밀하게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펜은 얇은 선을 사용해서 그런 세밀한 디테일을 담아낼 수 있는 도구거든요. 다른 매체로는 그런 섬세한 표현을 하기 어려운데, 펜은 그 점에서 정말 적합해요. 그래서 작고, 오밀조밀하며, 가득 모여 있는 이미지를 추구하는 저에게는 자연스럽게 펜화가 끌릴 수밖에 없었고, 그 매력에 계속 빠지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어슴푸레한 눈맞춤] 시리즈 중에서도 두번째 작업인 [선잠]이라는 작품을 가장 좋아해요. 사실 관념적인 작업을 하다 보면 처음에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던 것과 실제로 결과물이 나오는 것은 많이 달라질 때가 많아요. 그런데 선잠은 제가 처음 구상했던 그대로 거의 그대로 나왔던 작품이에요. 특히 해당 작품은 처음 구상했을 때부터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지 그 이미지가 가장 뚜렷하게 떠오른 작품이기도 하죠. 그렇기 때문에 [선잠]을 제 작업 중 대표작으로 뽑고 싶어요.
또, [선잠]에 그려진 풀들은 제가 좋아하는 형태의 풀이에요. 가느다란 풀들이 우수수 자라난 듯한 모습을 좋아해서, 그런 풀의 형태를 혼자서 ‘우슉푸슉’이라고나름의 애칭을 지어서 부르고 있어요. [어슴푸레한 눈맞춤]은 작업 하나하나 장면을 구상하는 데에 오랜시간이 걸렸는데, [선잠]은 장면이 단번에 떠올랐던 유일한 작품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선잠]을 그릴 때는 ‘아주 얕고, 아스라이 일렁이는’ 느낌을 물씬 담아내고 싶어서 바람 한 점 없이 멎어있는 물가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작업했어요. 차분히 일렁이는 물가와 가느다란 가닥의 풀들이 한 데 멎어 있는 모습이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선잠]의 느낌을 잘 드러내 주었던 것 같아요.
제 작품을 처음 보시면 아마 조금 낯설고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어쩌면 정말 낯선 자세로 멀뚱멀뚱 서 있는 그림처럼 느껴지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낯선 모습이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바라보시면, 그 안에서 뭔가 다른 느낌을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그 안에서 무엇이든 자유롭게 지나쳐가는 느낌이나, 그냥 그 공간을 이리저리 넘나드는 느낌도 좋고요. 보이는 대로, 자신만의 상상 속에서 자유롭게 읽고 바라봐 주시면 그 자체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김푸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