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무용가 겸 아티스트 이선아입니다.
저는 어릴 때 농촌이 있는 지방에서 자랐어요. 하지만 부모님께서 직접 농사를 짓지는 않으셨다보니 농사 풍경은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접하긴 했지만 저에게 직접적인 경험은 아니었죠. 이후 서울에서 계속 지내다가 약 3~4년 전쯤 충남 홍성군 홍동면이라는 작은 마을로 이주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일상적으로 농사짓는 풍경을 다시금 가까이에서 접하게 되었어요.
제가 그동안 계속 다뤄온 작업의 주제는 ‘감각’이었어요. 신체가 어떤 감각을 경험하면, 그 기억이 몸에 남아 있다가 특정한 자극이 주어졌을 때 애써 떠올리지 않아도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그 과정을 늘 흥미롭게 바라봐왔어요. 이 관심은 일상생활 속 다양한 경험들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고, 홍동에서 지낸 후에는 ‘농사’라는 일상을 더 가까이에서 관찰하게 된 뒤에는 자연스럽게 농부의 노동과도 연결이 된 것 같아요.
처음에는 농부님들이 움직이는 방식이나 말투가 신체적인 관점에서 매우 인상 깊게 다가왔어요. 농사에 관한 책은 많지만, 실제 농사 기술은 대부분 몸으로, 그리고 말로 전해진다는 점이 특히 흥미로웠죠. 예를 들어, 선생님이 “씨앗은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 간격으로 심는다"라고 말씀하실 때, 평생 농사일로 단련된 손이 직접 그 감각을 전하고 계셨거든요. 이건 책으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 몸을 통해 체득되는 지식이라는 걸 강하게 느꼈어요. 그리고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순간은, 평소에는 연로해 보이던 어르신들이 논밭에 들어서는 순간 날렵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시는 모습이었어요. 노동을 통해 길러진 신체의 감각이란 어떤 것인지를 현장에서 직접 마주하며, ‘농부의 감각’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이러한 관심이 이어져서 2023년부터 본격적인 리서치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마을에 있는 농업학교의 선생님들과 학생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실습에 동행하면서 농사 현장을 기록했습니다. 직접 농사일을 돕기도 하고, 움직임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고, 말씀을 녹음하면서 작업을 이어갔어요. 그렇게 1년 넘게 리서치를 하다 보니, 단순히 농부들이 경험하는 신체적 감각뿐 아니라, 그분들이 농사를 통해 체득해 온 삶에 대한 감각, 생애 감각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게 됐어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소리’라는 매체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소리가 사람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느껴요. 단순히 보여주거나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직관적이고 즉각적으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거든요. 눈을 감고 소리만 들었을 때, 평소에는 잘 포착하지 못했던 소리들이 되살아나면서 몸이 빠르게 그 순간, 혹은 장소와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러한 저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전시를 열게 되었던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중심에 두고 있는 것은 ‘농부의 몸이 현장에서 감각하는 순간’이었어요. 농부의 몸은 단순히 움직이는 신체가 아니라, 바람을 맞고, 흙을 만지고,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는 감각의 주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현장에서 끊임없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감각하는 그 몸에 주목하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볍씨를 파종하고 싹을 틔우는 과정이 있어요. 싹이 어느 정도 자라면 논으로 옮겨 심어야 하는데, 이때 논에는 물을 가득 대어 촉촉하게 해요. 농부들이 논에 들어서는 순간, 발이 훅훅 빠지고, 몸의 상태가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해요. 발을 옮길 때마다 진흙의 무게감이 다르게 느껴지고, 못자리를 옮기는 작업처럼 여러 명이 두 줄로 서서 동시에 논에 들어가는 순간, 모두의 몸이 푹푹 꺼지며 마치 군무처럼 모두가 함께 같은 모습으로 움직이는 장면이 펼쳐지죠. 그 모습이 저에게는 너무나 인상 깊고 아름답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러한 장면들은 저는 소리로 전달하고 싶었어요. 저는 관객이 이 소리들을 들으며 최대한 몰입할 수 있기를 바랐고, 그 몰입을 통해, 농부의 몸이 경험하는 순간들을 비로소 함께 체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어요.
글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김푸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