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다리기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니까

by 아트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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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서교동 골목에 자리하고 있는 한 디저트 카페를 다녀왔다. 그 카페의 존재를 알게 된 지 무려 1년 만이었다. 궁금한 카페를 한 번 가보는 것에도 다짐이 필요한 파워 집순이라 처음엔 이곳도 역시 지도 앱의 ‘가보고 싶은 곳’ 리스트에서 지워지는 일이 없겠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따사로운 햇살이 무성한 나뭇잎을 노랗게 물들이고 반팔에 외투 한 벌이면 충분한, 일 년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기인 5월이 찾아왔다. 어디든 나가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충동이 들었고, 그 순간 머릿속에 이 카페가 떠올랐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사진으로만 보던 디저트는 눈과 입 모두가 만족할 수 있을 만큼 훌륭했고, 평소엔 잘 마시지 않는 커피도 거슬리는 맛 하나 없이 술술 넘어갔다. 어마어마한 웨이팅만 빼면.


물론 이날은 운이 좋게도 오픈 10분 전에 도착해 곧바로 매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 동행과 한참을 즐겁게 대화를 나누던 중 무심결에 뒤를 돌아보니 뻥 뚫린 창밖으로 수많은 대기 손님이 보였다. 영업을 시작한 지 10분 만에 생긴 줄이 한 시간이 지나도록 줄어들지 않자 다들 초조해진 눈빛이었다. 누구라도 자리를 정리하고 나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졌다. 문득 ‘내가 여길 다음에 또 올 수 있을까?’라는 체념적인 생각을 하며 원래 계획보다 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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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언제부터 이런 종류의 기다림이 우리의 일상이 된 걸까. 인터넷에 식당 이름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에는 꼭 ‘웨이팅’이라는 키워드가 뜬다. 웬만큼 맛있는 음식을 즐기기 위해서는 한두 시간의 기다림이 필수가 되었고, 이러한 웨이팅 문화를 고려해 웨이팅 등록 기계를 매장 앞에 설치해 둔 가게도 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한때 백화점 오픈런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이는 비단 백화점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식당에서도, 커피 전문점에서도, 미술관에서도, 팝업스토어에서도 줄 서는 풍경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이 하도 잦다 보니 이젠 돈을 받고 대신 줄을 서주는 아르바이트가 인기를 끌 정도다.


인기 있는 장소일수록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또 오랜 기다림 끝에 손에 쥐게 된 무언가는 바로 그 기다림 때문에 배로 값진 것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기다림에도 분명 부작용이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언제나 기다림이라는 대가를 치르다 보면, 어느새 기다리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나부터가 그랬다. 인기 많은 독립영화관의 GV 상영 회차 티켓을 구하기 위해 온종일 휴대전화를 붙잡고 있던 날이 있다. 식사에도, 공부에도, 그 어느 것에도 집중하지 못한 채 내 자리 하나를 찾기 위해 온 정신을 이곳에 쏟았다. 그러다 하루가 다 끝나서야 후회가 됐다. 차라리 이 행사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좋았을걸, 차라리 처음부터 뛰어들지 않았다면 좋았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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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요즘 ‘기다림의 미학’보다 ‘안 기다림의 미학’이 좋다. 오래 기다려야만 가질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는 대신, 그 시간을 즐거운 다른 일로 채운다. 두 시간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핫플 맛집이 아니라 산책하다 우연히 발견한 동네의 작고 단정한 노포에 들어가 배를 든든히 채운다. 유명 영화제의 예매일이 다가오면 엄청난 경쟁이 예상되는 티켓팅에 동참하지 않고 다음에 가지 뭐, 하는 생각으로 소파에 벌러덩 누워 읽고 싶었던 책의 페이지를 여유롭게 넘긴다.


그러다 보면 기다림으로 인해 곧 증발할 예정이었던 나의 소중한 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 주체적으로 쓰고 있다는 충족감이 든다. 안 그럴 것 같지만, 이런 소소한 일상의 선택들은 생각보다 힘이 아주 세다.


물론 시간을 쓰는 방법은 개인의 자유다. 다만 나는 기다리지 않는 쪽을 택했을 뿐이다. 얻고자 하는 ‘무언가’에 더는 종속되지 않는 삶. 기다리지 않고도 값진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충만해지는 삶. 그것이 바로 오늘의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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