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키보드 백스페이스키가 부서졌다. 지금도 급하게 테이프로 고정해 사용하는 중이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도 K 키마저 부서지고 말았다.
몇 개월 전에는 L 키와 F 키가 뜯겨나가 수리점에 다녀왔다. D 키는 도색이 벗겨졌고, 키보드 소음 방지 덮개는 군데군데 찢긴 지 오래다. 이제는 이런 누더기 상태의 노트북에 익숙해져, 마치 정든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이 모든 고장의 원인은, 다름 아닌 나의 글쓰기 습관 때문이다. 대부분의 글쓰기를 노트북으로 진행하면서, 내게는 키보드를 유난히 세게 두드리는 습관이 생겼다.
모든 키를 사정없이 내리치는 편이지만, 특히 힘이 더 들어가는 건 역시 백스페이스키를 누를 때다. 보통은 ‘톡. 톡. 톡.’ 시차를 두고 천천히 눌러야 할 백스페이스키를, 나는 늘
‘탁탁탁!!!’
이렇게 빠르고 격하게 연타한다. 꾹 누르지도 않는다. 꼭 한 글자씩 지워나가야 하고,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빠른 속도로, 연속해서 두드려야만 한다.
나는 왜 이렇게 자판을 못살게 구는 걸까? 노트북을 앞에 두고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내 타자에는 감정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글을 쓰는 과정, 특히 초고를 쓰는 과정에서 꽤 큰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무엇에 그리 화를 내느냐고 한다면, 바로 나의 ‘표현력’이다. 대개 글짓기의 시작이 되는 아이디어는 머릿속에서 시작된다. 이 아이디어가 나의 머릿속에 있을 땐 한없이 반짝거리는 빛을 뿜어낸다. 아이디어가 떠오른 그 순간만큼은 저명한 창작자가 된 것처럼 만족스럽고, 얼른 글로 표현하고 싶어 가슴이 뛰기도 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렇게 반짝이는 보석이 손가락을 타고 키보드로, 노트북 화면으로 흘러가면, 빛을 잃은 평범한 돌덩이처럼 보인다. 반짝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흔하디흔한 글자들의 나열처럼 보인다.
그렇다. 나의 초고는 정말로 형편없다. 참신한 단어와 표현은 곧 죽어도 떠오르지 않고, 어디에선가 본 표현의 나열이 반복된다. 가끔은 이를 도무지 견디기 어려워, 동그라미나 물결 기호로 대충 표시해 두고 다음 문장으로 도망치기도 한다.
그러니 한 글자, 두 글자 쓰다가도 ‘이건 아니야!’라며 분노에 찬 상태로 백스페이스키를 마구 두드리게 된다. 노트북 화면에 찍히는 글자가 만족스럽지 않을수록, 오탈자가 많을수록 키보드를 두들기는 힘의 크기가 비례적으로 늘어나는 이유다.
이 얼마나 감정적이고 나약한 글쓴이이란 말인가! 노트북과 자판 앞에서 비로소 가시화되는 부족함을 견디지 못해 애꿎은 키보드에 분풀이하다니.
나의 글쓰기는 누더기가 된 키보드 자판만큼이나 절대 평온하지 않다. 내게 글쓰기는 어렵고, 복잡하며, 감정을 요동치게 한다. 한 번이라도 글을 써 봤다면, 글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꼈을 테다.
자연스레 궁금증이 생긴다. 그렇게 본문 바깥에서는 끝없는 사투를 벌이면서도 왜 나는, 왜 우리는 계속해서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일까. 하나의 습관이 형성되었다는 건 그만큼 같은 행위를 긴 시간 반복해 오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체 글쓰기가 무엇이길래, AI도 뭔가 써내는 시대에(이것을 글쓰기로 볼 수 있는지에는 의견이 갈리지만), 왜 우리는 그럼에도 습관이 형성될 만큼 반복적으로 글을 쓰는 것일까.
이 질문은 나를 복잡하게 하고, 수많은 이유를 떠올리게 하므로 아직은 단 하나의 완전한 답을 내릴 수는 없다. 완성했을 때의 뿌듯함 때문일 수도 있고, 사투의 과정에서 느끼는 살아있다는 감각에 중독되어서일 수도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글쓰기가 좋다는 것이다. 나는 글쓰기가 좋다!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어디에 있었고 지금 어디쯤 있는지, 앞으로 어디로 가고 싶은지도 조금은 보인다.
그러니 글쓰기가 싫어지지 않는 한, 나는 계속 쓸 것이다. 백스페이스키를 힘껏 내리치는 습관은 나의 부족함에서 비롯되지만, 그럼에도 나는 또다시 엔터키를 누른 채 다음 문단을 쓰러 전진할 것이다. 그러니 그저 다음에 부서질 키는 부디 엔터 키만 아니길 바란다.
미안하다, 그리고 조금만 더 고생하자. 키보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