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있었던 일이 아득히 멀어져만 가는데, 먼 훗날의 일은 유난히 또렷하다. 아지랑이가 기승을 부리는 한낮에 문득 알아챈다.
‘아, 더위를 먹었구나.’
싫어하던 것을 좋아하게 된 일이 있는가
혹은 그러고자 노력해 본 적이 있는가
용서한 적이 있는가
분명 예전보다 너그러운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용서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바로 여름이다.
여름은 강렬하다. 그러나 단편적일 뿐 인상적이지 않다. 더위, 땀, 장마 ∙∙∙ 단어들을 몇 개 나열하면 금세 동나버린다. 해는 길고, 끝날 기미가 없는 피곤한 계절이다. 그저 누군가가 보정하고, 미화한 영화 같은 두어 장면만이 반복 재생될 뿐이다.
몇 주 전, 하루이틀 집을 비운 사이 불청객이 날아들었다. 살아 숨 쉬는 건 나 하나로 충분한 집에서 무언가 날갯짓했다. 대문부터 복도까지 덕지덕지 자리를 잡은 것은 다름 아닌 ‘사랑벌레’였다. 도무지 사랑할 구석이 없는 아이러니한 이름이다. 더욱이 그들의 짝짓기 방식은 로맨스와 거리가 멀었다.
방충망은 여전히 촘촘하고 건재했지만, 그 늘씬한 몸이 유연하게 몸을 비틀면 얼마든지 비집고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름과의 유일한 통로였던 창문은 굳게 닫혔다. 환기조차 허락되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고,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는 뉴스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들 몰래 창문을 열어도 봤지만, 아니나 다를까, 창틀에는 사체(死體)가 가득했다. 여름이 거듭 미웠다.
여름이 기승을 부리면, 어김없이 생일이 돌아온다. 지금까지 예외는 없었다. 불쑥 이런 생각이 든다. 세상에 나온 이 계절이 이토록 미울 일인가.
한여름, 만삭의 몸을 이끌고 가는 저 여자는 어머니와 닮았다. 생명들이 숨 쉬고, 요동치고, 울음을 터트린다. 이제 막 태어난 갓난쟁이가 그랬던 것처럼. 평소에는 조용하던 나무들마저 초록(草綠)을 주장하고 나면, 이제는 흘릴 눈물이 없는 나는 땀이라도 흘려야 한다.
한 번 나가려면 짐이 한가득이다. 양산, 물티슈, 선풍기 ∙∙∙ 더는 큰 가방을 멜 힘이 없다. 더 이상 뺄 것도 없는 지금, 내려놓을 것이라고는 여름을 미워하는 이 마음뿐이다.
이옥섭은 누가 너무 미우면 사랑해 버린다고 했다. 이제 이 여름을 사랑해 버려야 될 것 같다. 미움은 버겁고, 사랑하는 사람은 강하다. 강함의 공식은 ‘이기는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져주는 것’에 있다. 아들과 달리기 시합을 하면 결승선에서 속도를 늦추는 아빠만큼, 딱 그만큼 져주면 된다. 져줄 수 있는 사람은 강하다.
돌아보면 미움의 기저에는 이기고자 하는 마음, 더 정확히는 이겨 먹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용서하지 못한 그네들에게 나는 절대 져주지 않았다. 꾸역꾸역 이겨 ’먹었’다. 이러한 포식에 배를 땅땅 치며 포만감을 느끼는 날도 있었지만, 대게는 체증에 걸려 손가락을 따야 했다. 결국 피를 볼 걸알면서도 그래야만 직성이 풀렸다.
아직 용서받지 못한 것들을 담아두는 보따리에서 여름을 꺼내본다. 맘 편히 태어난 날을, 나를 축하할 때가 되었다. 매년 이맘때면 목 빠지게 가을을 기다렸는데, 오늘은 여름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