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눈코입은 똑같은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삽시다.

by 아트인사이트


일 년 전, 처음으로 히피펌을 했다. 초중고를 거쳐 대학생 때까지도 파마를 해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상당히 큰 결심이었다. 뽀글뽀글한 머리칼을 볼 때마다 귀엽다는 감상이 들면서도, 섣불리 결단을 내리기에는 리스크가 커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직모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히피펌을 한 나의 모습이 상상되지 않았다. 언제 마지막으로 파마를 해봤지? 하고 돌이켜 보았을 때,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 유치원생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파마하고 그 뒤로는 도전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과거를 회고하는 시간을 거치자 한 번쯤은 지겹도록 유지해 오던 생머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스타일링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여 24년도 겨울,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에 앞서 히피펌이라는 관문에 도전하게 된다.


줄곧 유지해오던 헤어 스타일을 바꾸는 데에 앞서, 마음을 준비하는 기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동안 파마한 머리카락이 나에게 잘 어울릴지 조금의 간을 봤다. 다양한 매체를 접했지만, 그중에서도 나의 선택을 가장 좌우한 것은 일명 헤어 컨설팅이라고 불리는 유튜브 영상이었다. 간단하게 말해 해당 스타일이 자신에게 어울릴지 갈피를 잡아주는 역할을 자처하는 영상들은 모든 유형의 사람들에 대한 카테고리를 상세하게 나누어 설명했다.


어떤 얼굴형에 무슨 커트를 해야 하고, 볼륨은 얼마나 줘야 하며, 어떤 계열로 염색해야 좋을지. 개개인의 맞춤형 이미지를 설계해 주는 영상들은 밀물처럼 밀려들었고, 이목구비마다 항목을 매겨 냉철한 평가를 내리는 영상들을 점차 맹신하게 되었다. 심지어 유명 연예인의 사진을 예시로 들며 신체를 확대하고 낱낱이 재단하여 판단했다. 비교를 통해 더 나아 보이는 스타일을 찾아주는 영상에 의지하게 되었음에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쾌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렇게 여러 영상들을 지켜봐 온 결과, 헤어 컨설팅 또는 이미지 컨설팅이라는 이름 아래 만들어진 영상들이 모두 같은 입으로 개성이 몰살된 일관된 의견을 주장했다. 예를 들면 '얼굴이 긴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한다.' 또는 '볼살이 많은 사람은 어떤 스타일을 해야 한다.'와 같이 말이다. 더 어울리는 이미지라는 명목하에 제안과도 같은 강요를 하는 것처럼 비춰졌다. 평가를 당하는 사람의 기분은 안중에도 없는 일관되고 보편적인 말이었다.


그런 영상들을 계속해서 시청하다 보니 나의 마음도 점차 탁해져 가기 시작했다. 원하는 것이 뚜렷하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의심하게 되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다는 핑계로 타인의 의견에 지나친 비중을 두게 되자, 다수가 하는 선택이야말로 가장 옳은 답안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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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수없이 되풀이되던 고민을 멈춘 것은 다름 아닌 어느 댓글이었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애쓰는 영상 속에서 꿋꿋하게 본인의 감상을 적어놓은 그 댓글은 용감하고도 단호했다. 몇 사람의 추천도 받지 못한 그 한 문장이야말로 이리저리 휘둘리던 나의 마음을 단숨에 정착하게끔 만들었다. “어차피 눈코입은 똑같은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삽시다.” 그 문장을 읽자마자 갑자기 머리가 상쾌하게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맞아, 어차피 얼굴은 똑같은데 내가 하고 싶은 머리 스타일을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새로운 시도를 해봐서 어울리면 즐거운 일이고, 안 어울린다면 앞으로 다른 스타일을 해보면 되는 것이었다.


그 후, 집 주변의 미용실에서 히피펌을 예약했다. 일단 저지르고 보니 속이 후련했다. 그러나 막상 당일이 되자, 미용실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도 심란한 마음은 가실 줄 몰랐다. 너무 과해 보이면 어떡하지? 어울리지 않는다면? 튀어 보인다면? 걱정은 걱정을 불러일으켰고, 머리가 복잡한 상태로 미용실 의자에 앉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걱정 반 기대 반인 상태에서 머리카락은 미용사의 손에 맡겨졌다.


수 시간이 지난 후, 샴푸를 끝내고 나온 머리카락은 정말 꼬불꼬불했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끊이지 않던 웃음을 뒤로 하고 거울 속 얼굴을 마주하니 생각보다 꽤 괜찮게 느껴졌다. 처음 느껴보는 인상이었지만, 용수철처럼 말려진 머리카락이 얼굴의 반동에 따라 튕겨지는 느낌이 좋았다. 파마 직후, 머리카락은 손볼 새도 없이 바람에 멋대로 휘날렸고, 자유분방한 이들을 진정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머리칼을 길들이는 일부터 다시 시작했다. 마치 갓 태어난 아이가 자신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점차 히피펌을 한 머리가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주위에서도 진작에 파마를 해야 했다며 잘 어울린다는 말을 해줬다. 그런 호평을 들어왔음에도, 화장실의 거울을 마주치면 컨설팅 영상들이 일관되게 주장해 왔던 항목에 과연 좋은 점수를 매길 수 있는지 궁금증이 들곤 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강조해 왔던 평가들 말이다. 미의 기준은 주관적이고, 그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것을 행했을 때 충족되는 마음의 포만감이다. 거울 속의 나는 나일 뿐이다. 현재 나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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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히피펌은 나의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자유분방하게 뻗친 머리카락이 마음에 든다. 아침마다 고데기로 머리를 펴고 앞머리의 볼륨을 주기 위해 시간을 투자했던 과거와 달리, 부스스한 머릿결을 컬 크림으로 몇 번 만지기만 하면 끝이다. 무엇보다도 나의 선택을 존중한 결과라는 점이 자랑스럽다. 언제 마음이 바뀌어 다른 스타일을 고집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진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 좋다. 머리 모양만으로 느껴지는 발랄함이 나의 활기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니, 무언가가 어울릴지 아직 고민만 하는 당신이 있다면 우선은 해보라고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 선택을 내리기만 한다면 그게 무엇이든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좋든 나쁘든, 마음에 들든 별로든, 나에 대해 알아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선택에 있어서 옳은 답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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