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고 나서부터 오전 약속을 잡는 일이 손에 꼽게 드물어졌다. 알람을 맞추지 않고 기상해서 여유롭게 각자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에 만나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아마 성인을 기점으로 구분할 수 있는 건 아무래도 쏟아지는 아침잠을 건드릴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보통 느지막한 낮, 카페에서 만나는 것으로 약속이 시작된다. 그럼 빠르면 2시 정도에 나갈 때도 있다. 느지막히라고 하기엔 빠른 시간이지만 예쁜 카페를 찾아가려면 못해도 대중교통을 1시간은 잡고 나서야 하기에 어쩔 수 없다. 오후 2시쯤 집에서 나가 거리를 거닐면 왠지 내 시간만 여유롭게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직장인은 일할 시간이고 학생은 학교에 있으며 사람들 대부분이 거리가 아닌 실내에서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다.
역에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하는데, 홀로 약속 장소로 향하다 보면 창문 너머 사람들 일상에 저절로 눈이 간다. 특히 버스가 정차해서 횡단보도를 응시할 때면 다양한 사람들이 내 눈을 가로지른다. 목적지를 향해 바삐 발길을 움직이는 사람, 하교 시간이라기엔 이른데 수다 떨면서 건너는 학생, 운동복을 입고 한 손에는 텀블러를 쥔 채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 느리지만 꾸준히 남은 신호를 걸어 내는 노인, 유치원 가방을 맨 부모의 손을 잡고 총총 걸어가는 어린이, 앞지르는 반려견의 목줄을 꼭 붙들어 맨 사람, 자전거와 2인3각 경기를 하듯 발을 맞춰 걷는 사람 등. 아 참! 신호가 길면 꼭 5초 남았을 때 뛰는 사람도 볼 수 있다. 보통 그 사람의 급박함을 응원하는 쪽이다.
이 중 잔상에 오래 남는 건 ‘학생’들 이다. 어떤 연유로 오후 2시에 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건지 알 것 같으면서도 전혀 짐작 안되기도 한다. 그중에 분명 땡땡이를 치는 학생도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곧 그 친구들의 용기와 실행력에 부러움을 느낀 동시에 내 학창 시절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어떤 학생이었나?’ 보다 흥미롭게 이 질문을 바꾸면 ‘나는 땡땡이를 쳐 본 적이 있는가?’로.
곧장 대답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땡땡이의 마음가짐을 품고 있지만 실행하지 못해 선망했던 학생이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3년 증에서 1년만 간추려 생각해봐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주말을 제외한 나머지를 전부 학교에 가는 데 왜 그중 하루도 땡땡이에 시간을 들일 시간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땡땡이는 사회적으로 장려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 경우 아무도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 땡땡이의 유혹으로부터 가장 큰 방해요소는 나 자신이었을 거다. 하루 땡땡이를 치려면 그로 인해 빠지는 수업들의 보충 공부가 필요했고 그것은 내 할 일이 두 배로 늘어난다는 뜻이다. 또한 고작 하루 몇 시간뿐이지만 그것이 타인에 의해 인지되는 내 이미지에 영향을 끼칠 확률이 높았다. 그냥 땡땡이 침으로서 얻게 되는 자유보다 그 뒤에 처리해야 할 일에 대한 귀찮음이 더 컸다. 그러니 흔히 영화에 나오는 담장 넘기와 같은 고전적인 땡땡이 요소에 아직도 설렘을 품는 건 직접 경험해보지 못해서이다.
그럼 ‘나는 모범생이었나?’ 이 질문에도 섣불리 답을 할 수가 없다. 남들이 봤을 때는 약간의 모범생으로 비추어질지 몰라도 그건 그냥 학생으로서 할 일만 다 했을 뿐이다. 스스로 학창 시절을 표현하는데 있어 ‘교묘한 모범생’이라고 칭한다.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싫거나 부당한 것을 하지 않았음에도 남들 눈에 모범생으로 비추어질 수 있었던 이유 중에는 기본적인 규칙을 지키고 학생으로서 본분을 다했기 때문에 있다. 물론! 학생으로서 본분도 기본적인 것만 지켰다. 그러니 교묘하게 사리사욕을 다 챙기는 모범생으로 지낼 수 있었다. (사실 당시에는 모범생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모범생 타이틀을 달 수 있는 건 오로지 주변 사람들의 데이터를 종합해본 결과니, 동의하지 않는 이도 있을 수 있다.)
지고지순한 모범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도 해야할 것도 다 챙긴 학교생활은 나름 만족스러웠다. 해서 후회한다거나 다시 돌아가서 제대로 보내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때 나보다 끝내주게 보낼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해보지 못해서 단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땡땡이’다.
학창 시절로 돌아가 땡땡이를 칠 순 없어도 상상은 자유니까 땡땡이치는 하루를 그려보자면, 우선 오후 2시쯤 땡땡이를 치고 싶다. 오후 2시에 횡단보도를 건너며 바쁘게 입과 발을 움직이던 친구들처럼 평일 대낮에 학교가 아닌 땅에서 경쾌한 발걸음을 디디고 싶다. 그리고 학교 탈출 방식은 누가 뭐래도 담장 넘기! 다녔던 학교에 넘기 용이한 담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건증을 끊는다거나 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조퇴하는 형식의 땡땡이는 합법적으로 쉬는 것 같아서 땡땡이의 느낌이 나지 않을 것이다. 이왕이면 친구랑 함께면 좋겠다. 내 땡땡이를 같이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은밀한 즐거움이 배가 될 것이다. 막상 생각해보려니 땡땡이라는 명목 아래 하고 싶은 건 이게 다인 것 같다. ‘몰래’ 학교를 빼먹는다는 짜릿함만으로도 이미 땡땡이의 90퍼센트는 도달한 것 같은 느낌이다. 일단 빠져만 나온다면 뭘 하든 평범한 일상과는 다르게 느껴질테니까, 그냥 횡단보도만 건너도 흥분되겠지?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건, 이 글은 땡땡이를 장려하는 글이 아니다. 땡땡이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은 것 같아 찔리는 구석에 굳이 이 말을 더한다. 다만 ‘학생’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성인이 되면 마음대로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늘어나지만 학창 시절만큼은 돈을 주고도 살 수도 없고 학창 시절만의 무모한 땡땡이를 절대 흉내 낼 수조차 없다. 땡땡이를 쳐도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안전함을 담보로 남겨두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은 그 시간에 속할 때는 끝나지 않을 터널처럼 느껴지지만, 100세 인생을 기준으로 길어봤자 고작 10분의 2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고작’이라고 칭했지만 긴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태도가 형성되는 중요한 기간이기도 하다. 그러니 많이 경험해보았으면 좋겠다. 좋든 나쁘든, 사회가 정한 틀에서 벗어나는 행동이든 지켜야 하는 행동이든. 너무 모범생인 것도 재미없고 너무 놀기만 해도 후회투성이일테니, 가급적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교묘한’ 학생으로 살아보는 편을 추천한다!
오후 2시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내 모습은 어떻게 비춰지려나? 딱히 주의를 두는 사람이 없으려나. 그래도 저기 버스에, 저기 차 안에, 저기 건물 안에서 유심히 관찰하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오늘도 어깨 펴고 바른 자세로 건너길 한껏 의식한다. 그렇게 몸에 힘을 준 채 열심히 건너다보면 땡땡이라는 사색에 잠긴 것도 잠깐, 당당하게 오후 2시의 나른한 햇살을 받는 지금 기분에서 느끼는 짜릿함도 이루 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