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읽고 어떻게 보관하세요?

by 아트인사이트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들과 유독 관계가 좋았다. 담임선생님과 우리 반 학생들 사이에는 '두더지'와 '두더지 대통령'이라는 애칭까지 있었다. 우리들의 두더지 대통령, 1학년 4반 담임선생님의 제안으로 '타임캡슐'을 묻기로 했다. 그 캡슐 안에는 6년 뒤, 스무 살이 될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담았다. 우리는 2017년 2월에 만나 같이 캡슐을 열어볼 것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그렇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중고등학교 6년의 과정을 마치고 스무 살이 되던 해 2월, 약속대로 1학년 4반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재수를 결심했던 스무 살의 나는, 당연히 원하는 대학에 붙었을 거라며 확신에 가득 차 있던 열네 살의 나에게 쓴웃음을 날려주었다. 당돌했던 열네 살의 나, 상상 속 멋진 스무 살의 나, 그 편지를 읽었던 스무 살의 나, 그리고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보고 있는 지금 스물여덟 살의 나는 여전히 그때 그 타임캡슐 속에 소중히 포개져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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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금 일하는 곳에서 퇴사하는 분께 편지를 받았다. 편지를 읽고 다시 봉투에 넣은 뒤 서랍 속에 보관해 두려다, 문득 서랍 속 수북이 쌓인 편지들에 시선이 머물렀다. 언제 받았는지조차 가물가물한 편지들. 그 서랍은 마치 오래도록 봉인돼 있었던 또 다른 타임캡슐 같았다. 서랍 안에는 6년보다 훨씬 더 오래된 편지도 들어 있었다. 한 번 읽고 서랍에 넣으면 다시는 꺼내 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절대 버릴 순 없었던 건 그 속에 담긴 오로지 나만을 향한 소중한 마음들 때문이었다.


여러 통의 편지 속에서 마음에 오래 남은 조각들을 발췌해 하나의 편지로 엮어보았다.


우리 서현이 완벽주의자 서현이,
슬플 땐 울어. 너무 더워서 그 눈물이 금방 마를 거야.
네가 여기까지 오느라고 얼마나 노력했을지 생각하게 된다. 너는 잘하리라 믿어.
앞으로도 더더욱이 예술에 진심인 사람으로 성장하자. 어떤 삶이든 같이 으쌰으쌰 하자!
너의 미래와 안녕을 항상 응원해.
계속 천천히 내 인생에 끼어들어 줘. 우리 40년 50년 뒤에도 함께 하자!


모든 글을 사랑한다. 그중에서도 편지는 일기만큼이나 비밀스럽고 진솔해서 좋다. 일기가 아무도 듣지 않을 나만의 혼잣말 공간이라면, 편지는 우리 둘만 아는 아지트처럼 느껴진다. 일기를 쓸 때면 종종, 혼자 놀이터 그네에 앉아 생각에 잠겼던 새벽을 떠올리곤 했다. 그렇다면 편지는, 내 옆자리 그네에 앉아 온전히 내 편이 되어주고 나에게 온 마음을 쏟아주는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편지 속 문장들은 투박하지만 담담하다. 다듬어지지 않은 채 마음의 흐름을 따라 써 내려간 문장들로 가득해서 좋다. 그 사람의 마음을 손 글씨라는 떨리는 목소리로 받아보는 경험을 사랑한다.


문자메시지로 하고 싶은 말을 바로바로 전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어도, 손 편지는 지워지지 않는 마음을 상대에게 남긴다. 우리만 아는 문장들이 꾹꾹 눌러 담은 손 글씨로 영원히 남는다. 그래서인지 편지를 주고 나면, 그 문장들이 나를 떠나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 아쉬워서 편지를 쓰고 사진으로 남겨두는 습관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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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써 본 사람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오로지 편지를 받아볼 상대에게만 집중하고, 또 그 상대를 향한 나의 마음에만 집중하게 된다.


어딘가 고이 포개놓은 여러분들의 타임캡슐 안에는 어떤 소중한 마음이 접혀있을지 한 번 꺼내보는 건 어떨까. 나는 이미 그 타임캡슐을 열어봤으니 새로운 타임캡슐에 넣을 편지를 써볼까 한다. 지난겨울에 입던 패딩 주머니 속 꾸겨 넣었던 삼천 원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날아갈 듯이 좋았던 것처럼, 미래의 나에게 예상치 못한 선물을 주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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