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앞에서만큼은

by 아트인사이트


A에게


난 진지한 분위기를 잘 못 견뎌서 늘 픽 웃어버리곤 해. 내 곁에 오래 있어 준 네가 가장 잘 알겠지. 그래도 오늘은 웃음 참고 진솔하게 이야기해 볼게.


내성적이었던 어린 시절의 나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에 익숙했어. 마음을 여러 겹으로 가리면 어느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거든. 그런데 가면을 쓰면 나 자신도 너무 힘들고 내 주변 사람도 힘들어하더라. 아마 내가 속마음을 잘 이야기하지 않아서 가끔 진심으로 말하면 놀라기도 했을 거야.


그런데 너를 만나 알고 지낸 이후로,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가면을 벗을 수 있었어. 힘든 일을 겪어도 너와 수다를 떨면 잠시 잊을 수 있었고, 같이 놀러 가는 날은 하루 종일 웃어서 배가 아플 정도였지. 간혹 다투기도 했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언제나 풀고 맛있는 걸 먹으러 갈 수 있었어. 이제 내 인생에서 너를 제외하고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없을 거야.


네가 보기엔 내가 구김이 없고 착한 사람일까?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늘, 인생이 본질적으로 슬프다는 생각이 있어. 유한한 삶이어서 슬프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나에게 있어서는 A 너와 같은 존재들이 내 곁에 있어 주기 때문이야. 덕분에 가면을 벗고도 당당하게,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어. 눈물 나는 날들도 있었지만, 그보다 웃음 나는 기억이 훨씬 많은 것 같아. 생에 대해 느끼는 부담감이 아주 조금 가벼워졌어.


그런데 모두가 맨얼굴로 사는 건 아니더라? 겨우 벗은 가면이었는데, 두터운 방패를 들고 나를 대하는 사람들 앞에 서니 나만 혼자 맨살로 펜싱하는 기분이었어. 생채기난 몸으로 돌아가면 네가 밴드를 붙여주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남을 내 멋대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해. 인간은 입체적이고, 선과 악이라는 것은 결국 주관적이니까. 그래서 밉기만 한 사람은 만들지 않으려고 늘 노력해. 그런데 정말 기준이 없어도 되는 걸까? 그러면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어디까지일까? 누군가 선과 악의 경계에 있다면, 내 곁에 있어도 되는 사람인지에 관한 판단은 적어도 내가 내려야 하는 것이잖아.


그래서 다시 가면을 쓰려고. 나를 보호하는 방법은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가면을 고르는 것. 필요할 때 쓰고 없어도 될 때 벗는 것이야. 지금도 나보고 구김이 없고 착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 A 너의 앞에서만큼은 가면을 벗고 맨얼굴을 보여줄게. 너만은 내 진심을 다 들을 수 있을 거야. 내가 다시 가면을 고르는 이유는 다쳐서 너에게로 도망치는 대신, 내가 강해져서 너의 상처까지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야.


늘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 표현을 자주 하지는 못하지만, 항상 능력이 닿는 만큼 너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어. 가끔 세상이 너무 두렵게만 느껴질 때도 네가 어김없이 나의 편이 되어주어서 정말 든든해. 그 언젠가 우리가 멀어져서 다시는 연락이 닿지 않게 된다고 해도, 너의 앞에 있던 건 꾸며낸 모습이 아닌 나 그 자체였다는 걸 잊지 말아 줘.


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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