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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중심을 지켜주기

by 아트인사이트


수능이 다가온다. 수능을 본 지 몇 년이나 지났는데, 오랜만에 그때와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11월이다. 어학성적을 따기 위해 영어공부를 시작했고 대학교 전공 시험공부가 아닌 목표를 가지고 펜을 잡는 건 까마득해서 낯설다. 공부의 시작도, 과정도, 방법도, 마음가짐도 모두 어렵기만 하다. 어려우니 피하고 싶고 피하고 싶으니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찬찬히 여유를 가지고 준비하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축에 속하는 공부가 밉게 느껴져 얼른 해치워버리고 싶은 마음에 단기간 공부를 목표로 덜컥 시험 접수를 했다. 3주의 기적,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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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모든 건 이 짧은 기간이 주는 부담감에서 시작된 것도 같다. 아무도, 무엇도 강요되지 않았다. 날 강하게 만드는 동시에 날 가혹하게 하는 건 항상 나였다. 강요받아본 적 없고 강요를 원치 않았으므로 자연스럽게 남이 지워주는 부담이나 강요는 손쉽게 구분하고 타격을 받지 않았다. 날 가장 혹사시키는 건 바로 나였다. 그리고 그게 다 나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한테 가장 멋있고 싶으니까, 상상한 건 모두 해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성적은 생각보다 나오지 않았다. 아직 공부한 기간이 짧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실질적인 실력보다 위험한 건 나의 정신상태였다. 정확한 목표 설정이 없으니 자꾸 드는 잡생각과 이때다 싶어 불쑥 튀어나오는 고민거리들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흐트려 놓았다. 한국어로 된 책을 읽을 때도 잡생각을 하면 한 문장도 이해할 수 없는데, 영어 지문을 보면서 문제를 잘 풀어낼 리 없었다. 지금 가진 문제가 뭔지 알 것 같으면서도 정확히 뭔지를 모르겠는 이 답답함을 안고 공부를 하려니 고역이었다. 거울을 보니 얼굴에는 표정 없는 회색빛이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산만하게 하는지 제대로 마주하고 싶었다. 이렇게 괴로울 거면 나는 지금 이걸 왜 하고 있지? 오늘만 참자, 내일만 참자, 일주일만, 시험까지만 참자. 무엇을 위해서? 시험이 끝나면 행복할까? 마지막 질문에 도달해서야 잊고 있던 내 답을 찾았다.


누군가 들으면 코웃음 칠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오래도록 변치 않는 마음가짐이 있다. 절대 무언가를 위해서 오늘 하루를 불행하게 놔두지 말 것. 그게 무엇이든, 참아야 얻는 게 있다고 한들, 그 과정에 있는 하루들을 가볍게 여기지 말 것. 지난 며칠 동안 그걸 까먹고 있었다. 내 하루가 다른 날을 위해 희생당하는 건 싫다. 희생이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필수적이지만, 적당히 괴로우면서 하주 자체를 잃지 않는 희생의 날이 존재한다. 충분히 그렇게 하루를 꾸릴 수 있다. 과정이 행복하고 싶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부담은 언제까지고 별거 아니라고 여기고 싶다. 미래에 실수할 나보다 지금까지 노력한 나를 믿어야 한다.


생각해보면 정답이 있는 공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뭐 공부를 좋아서 하는 사람이야 그렇게 많지 않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공부는 정말 필요해서 했다. 공부하기 싫다기보다는 공부해서 시험을 봤을 때 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틀리면 왠지 서럽고 눈물이 와장창 날 것 같았다. 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틀렸을 때, 공부 부족이라는 걸 알면서도 왠지 내가 부정당한 것 같았다. 누군가는 공부가 답이 있어서 좋다고 한다. 뭐가 맞고 틀린 지 확실히 알 수 있으니까. 가려는 방향이 옳은 방향인지 아닌지 정확하게 알려주니까. 하지만 나는 내 답이 그렇게 정해지는 것에서 답답함을 느꼈다.


글을 쓰는 것에는 정답이 없다. 잘 쓴 글과 잘 쓰지 못한 글이 나뉠 수 있지만, 내 글이 정답이라고 믿으면 그만이다. 크게 보면 예술 분야에서 업을 삼는 일도 비슷하다. 지금 하고 있는 연기가, 지금 그리고 있는 그림이, 지금 만들고 있는 노래가 잘 만든 것일지, 성공할지는 성공하기 전까지 아무도 모른다. 정답이 없는 과정 속에서 무수히 많이 좌절하고 시도하고 불안해한다. 그러다 보면 누가 정답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싶을지도 모른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맞다고, 아니면 아니라고.


명쾌한 정답이 있는 공부를 하든 정답이 알려지지 않은 길을 가든 어디서든 막다른 길은 존재한다. 그걸 잊으면 안된다. 그걸 알고도 선택하는 길은 조금은 더 경쾌할지도 모른다.

나는 따지자면 후자에 속하는 편이다. 하지만 내 것을 정답으로 만들 자신감이 있다. 행여 제 3자의 시선으로 날 보았을 때 정답으로 받아들이지 못해도 나 자신에게만큼은 떳떳한 동그라미를 그려낼 자신이 있다. 그러기 위해선 중심을 잡는 게 중요하다. 내가 나로 오롯이 서 있을 수 있도록. 나만은 나를 믿어줄 수 있도록. 세상 전부가 엑스라고 해도 그 엑스를 이어서 원으로 만들 수 있도록. 빗금투성이여도 괜찮다. 논리적인 이유는 모르겠고 그냥 괜찮다. 지금은 그렇게 말해줄 시기라는 걸 내가 가장 잘 아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아무도 내가 정답을 살아내리라고 기대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 나는 나랑만 잘 타협하면 된다. 그리고 가끔은 나한테 져도 괜찮다. 지는 게 이기는 거라고들 그러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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