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밍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by 아트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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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클라이밍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면 그 운동을 좋아하게 됐을 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이 운동을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꾸준히 가고 오랜 기간 붙들고 있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건 즐겁지만 정작 내가 즐기고 있는진 잘 모르겠다는 느낌. 그걸 좋아한다고 말할 순 없지 않은가.


그런데 최근엔 좀 태도가 바뀌었다. 열렬하게 좋아해서 미쳐버린 것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뜨뜻미지근하더라도, 있는 듯 없는 듯하더라도 오랜 기간 내 일상에 파고들어 있다면 그것도 좋아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매번 불탈 수는 없다고...


돌이켜 보면 클라이밍을 시작한 건 2년이 조금 넘었다. 나는 꾸준히 흥미를 잃으면서 기계적으로 클라이밍장에 갔다. 그만두는 데도 체력이 필요해서인가. 관성적으로 다녔던 것 같다. 쉬긴 했지만 그만두진 않았다.


클라이밍을 시작하게 된 건 딱히 계기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뿌리를 모르겠다. 왜 시작하게 됐더라. 서사에 목숨 거는 인간으로서 이런 시작부터가 중요한데 정작 내 인생에서 서사 찾기는 쉽지 않다. 이런 참...


내가 시작한 건 클라이밍 중에서도 볼더링이다. 줄이나 안전장치 없이 순전히 내 몸을 믿고 올라가야 하는 운동. 이렇게 말하면 무섭지만 실제로도 무섭긴 하다.


나는 고소공포증도 있고 팔 힘도 그냥 힘도 그다지 좋지 않다. 주변인에서 누가 가자고 한 것도 아니고 느닷없이 왜 시작한 건지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네. 그래도 운동신경이 못 쓸 정돈 아니어서 웬만한 운동은 꽤 중간 이상은 했었던 거 같은데 클라이밍은 그저 모든 것이 두려움 천지였다. 디뎌야 할 돌은 갈수록 작아지며 가끔은 발로 써야 할 홀드(돌)이 없기도 한다. 어떤 순간에는 몸을 날려 한참 위쪽에 위치한 홀드를 잡아야 한다. 좀 더 지나면 박자까지 타서 '코디네이션'이란 걸 해야 한다. 공중에서 어떻게 리듬을 타라고. 공중에서 어떻게 손을 바꾸라는 건데. 사실 이건 지금도 할 수 없는 때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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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때문인지 나는 놀라우리만치 천천히 늘었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던 친구들이 금방 늘거나 나보다 높은 레벨로 진출할 때도 나는 천천히 한 레벨에 머물렀다. 가장 큰 건 아마도 나에 대한 신뢰 부족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저 동작을, 저 반동을, 저 점프를 버텨낼 수 없는 몸을 갖고 있다는 믿음. 그로 인해 비롯된 두려움.(지금도 몇 가지 무브가 생각나는데 그 즉시 손에서 땀이 나고 있다)


조금만 더 뻗으면 조금만 더 용감해지면 닿을 수 있는 것들을 놓치고 나면 투지가 들끓는 게 아니라 자잘하게 실패담과 좌절감이 깔렸다. 깔린 것들을 밟고 올라가면 계단이 될 줄 알았는데 그냥 속도를 늦추는 장애물밖에 되지 못했다.


친구들이 앞서갈 때마다 기준이 그들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을 되새겼다. 나는 그저 취미 운동인일 뿐이고 이것으로 경쟁해서 나한테 득 될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도 조급해지거나 속상해지는 일을 피할 순 없었다. 아무도 내게 뭐라 하지 않았고 압박하지 않았음에도.


그저 그들은 그 벽에서 더 이상 풀 수 있는 문제가 없어서 옆쪽으로 건너가고 싶어 했을 뿐인데 나는 혼자 나에게 실망해야 했다. 그 벽에 혼자 남아 풀리지 않을 것만 같은 문제에 덤비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면 나는 내 짐을 조용히 싸서 그들의 옆에서 또 다른 문제를 맞이하는 것으로 앞에 닥친 시련을 외면했다. 호전적인 스타일은 아니어도 뭔가 회피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자신감 저하의 문제점은 아무래도 도전하지 않는 것이 큰 듯하다.


얼마 전 친해진 지영과 그런 이야기를 했다. 처음으로 클라이밍장에서 보라색 그레이드(나에겐 영원히 닿지 않을 거 같았던 난이도) 2개를 풀고 나서 도파민과 햄버거의 혈당이 같이 치솟아 조금 몽롱한 기분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같이 시작한 친구들이 너무 빨리 들어서 속상하고 기죽었던 시기가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지금도 쉽사리 없어지진 않았다. 지영도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둘이 나란히 오래 고민하던 문제를 풀고 햄버거를 먹으면서 했던 이야기들은 부끄럽거나 후회되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클라이밍을 하면서 계속 두려울 것이다. 어떤 무브 앞에서는 여전히 망설이고, 누군가는 쉽게 넘는 그레이드 앞에서 한참을 서성일지도 모른다.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감각은 달리기 외엔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그 모든 망설임 속에서 아주 가끔은 몸을 날려 잡은 홀드 하나가 오랜 기간 나를 붙들어 줄 것이라는 확신 정도는 생겼다.


극적인 시작도, 눈부신 성장 곡선도 없지만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조용하고 느릿한 나만의 방식으로, 오래 좋아해 온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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