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 안에 있던 사진을 정리하던 중 새 한 마리가 우두커니 서 있는 사진을 발견했다. 얼마 전 산책을 갔다 우연히 보게 된 새였는데 “(얼음)땡!”을 해 주고 싶을 정도로 미동도 없이 가만 있는 모습이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우연이 겹친 건지 pc에 백업해 둔 사진들 속에서도 같은 새 사진을 몇 장 더 발견했다. 녀석의 이름을 당장 알아야 했다. 이리저리 검색한 끝에 알게 된 이 생명체의 이름은 ‘왜가리’.
뭔가에 꽂히면 질리도록 하나만 파는 기질이 이럴 때 빛을 발한다. 머릿속에 왜가리라는 키워드가 입력되자마자 홀린 듯 새를 캐기 시작했다. 처음엔 백과사전에 검색한 결과로 정보를 모으다 그걸로는 성에 차지 않아서 새가 직접 나오는 영상을 하나 둘 챙겨 봤다. 청계천에서 밥 먹는 왜가리 쇼츠 영상이 그 시작이었다. 사람들이 물고기 사냥에 성공한 왜가리에게 환호를 보내는데 정작 새는 별 반응 없이 무덤덤하게 있는 것이 호감 포인트다.
흘러 흘러 과학 이야기 채널에 당도한 나는 보석 같은 콘텐츠를 만나게 된다. 유튜브 채널 ‘보다 BODA’의 <왜가리가 하천의 최고 포식자가 된 이유>라는 영상이다. 이 안에는 평소에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왜가리 관련 희귀 정보가 고농축으로 담겨 있다. 설명을 듣고 있으면 우리나라 생태계를 수호하는 이 신묘한 존재가 정말 말도 안 되는 능력치를 갖춘 전설 속의 포켓몬처럼 느껴진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띠부씰을 교환하다가 그토록 갈망하던 포켓몬이 내게로 왔을 때! 딱 그때처럼 가슴이 두근대는 것이다.
녀석의 비범함에 도파민이 터져 버린 나는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이 올라운더형 조류의 면면을 자랑해 볼까 한다. 흥미로울지도 모르니 한번 들어 보셔라. 일단 태생 스토리부터 가자. 공룡의 멸종 후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를 거친 새들이 대거 등장했던 5천만 년 전, 개중에 하나였던 왜가리 역시 공룡의 DNA를 이어받은 무적의 후예다. 한 성깔 할 것 같은 맑은 광인의 눈빛, 혼자 있어도 주위를 압도하는 카리스마 등이 왜가리의 첫인상인데 조상이 공룡이라니 그게 다 납득이 간다. 서식 환경을 크게 가리지 않아 강가, 해안, 논, 육지 어디에서든 유연하게 잘 지내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녀석이 아무 곳에나 있는 것도 아니다. 물이 맑으면서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곳에 주로 있다 보니 왜가리는 건강한 생태계를 의미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이 늠름한 공룡 후예에게는 독보적인 사냥 스킬이 있다. 기술 하나하나가 전부 사기처럼 느껴질 만큼 신박해서 약간 벙찌는 데가 있다. 첫 번째 기술로는 ‘관망 사냥’. 꼼짝도 안 하고 몇십 분을 가만히 있음으로써 먹잇감을 안심시키다가 눈 깜짝할 사이 신속·정확하게 타깃을 낚아채는 사냥법이다. 무방비 상태에 놓인 물고기들은 0.05초도 안 되는 시간에 봉변을 당하는 꼴이다. 관망 사냥이라는 단어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됐는데 별표를 세 개나 쳤다. 돌아가는 상황을 잘 지켜보다가 적기라고 생각할 때, 그 순간을 기민하게 포착하는 능력은 새겨 두면 써먹을 일이 많을 것 같다.
두 번째는 ‘시야 굴절을 보정하는 능력’이다. 정말이지 포켓몬 도감에나 나올 법한 스탯 아닌가! 물속에 굴절되어 보이는 물고기도 잘만 잡아먹는 왜가리다. 녀석에게 자연의 섭리는 딱히 문제가 되지 않나 보다. 굴절을 보정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심지어 ‘무소음 보법’까지 갖추고 있다. 이동할 때조차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충격적인 건 다른 동물들이 녀석의 체취를 잘 느끼지 못할 만큼 냄새마저 풍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모든 생물이 다 낚일 수밖에 없는 생태계 포식자가 맞는 듯하다.
머리도 얼마나 똑똑한지 학습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혹시 실패로부터 배움을 얻는 새를 보셨는지. 왜가리는 사냥에 실패했던 구역을 기억해 다시 오는 일이 없다고 한다. 실패한 기억을 활용하여 다음 사냥터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자주 까먹고 실수하는 이를 은근 새대가리라고 치부하는데 그러면 듣는 왜가리가 상당히 치욕스러울 것 같다. 새대가리 리스트에서 녀석은 빼야겠다.
자랑을 늘어놓다 보니 배울 면모도 보인다. 왜가리에게 높이 사는 부분은 인내심과 유연성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늘 최선을 다하는 것, 넓은 시야를 가지고 때를 기다리는 것, 타이밍이 왔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 비밀스런 능력을 속에 감춘 채 평화롭게 서 있는 왜가리가 어쩐지 더 강해 보인다. 고고한 외관 뒤로는 저만 아는 치열함이 있을 테다. 그 은밀한 노력이 이 새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며칠 전 산책을 갔다가 허탕을 쳤다. 녀석을 볼 수 없었다. 최근 나의 산책 루틴에 하나 더 추가된 것이 왜가리 체크다. 내가 녀석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이유는 이 새가 사냥하는 모습을 아직까지 내 눈으로 본 적이 없어서다. 관망 사냥에 성공하는 그 생생한 순간을 꼭 라이브로 직관하고 싶다. 보게 된다면 얼마나 웅장할지. 보지 못한 장면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또 들뜬다. 요즘은 통 소식이 없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어디서든 건재하게, 착실하게 살아갈 존재라 믿는다. 왜가리는 왜가리대로, 나는 나대로 잘살고 있으면 조만간 서로 반갑게 만나는 날이 올 거다.
밖에서 우연히 혼자 있는 녀석을 보게 된다면 여러분도 함께 반가워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