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무도'라는 제목은 원래 생상스의 곡이다. 해골들이 자정이 되면 묘지에서 일어나 춤을 춘다는 내용의,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음악이다. 김연아가 2009년 이 곡으로 쇼트 프로그램을 구성했을 때, 세계는 그녀의 무대에 놀랐다.
Creat With Gemini
그리고 지난 6일, 같은 곡이 전혀 다른 형태로 다시 무대에 올랐다. 이번엔 스케이트화 대신 토슈즈를 신고, 빙판 대신 조명이 쏟아지는 발레 무대 위로 여왕이 돌아왔다. 구글 코리아가 공개한 캠페인 영상 '아워 퀸 이즈 백(Our Queen is Back)'은 단순한 광고 이상의 기획이다. AI 기술이 창작의 현장에서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시도이자, 구글이 한국 시장에 던지는 하나의 화두다.
이 캠페인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소재 선택에서부터 시작된다. '죽음의 무도'는 김연아의 수많은 프로그램 중에서도 전 세계 피겨 팬들이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작품이다. 그 프로그램을 발레라는 전혀 다른 장르로 재해석한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하나의 도전이다.
안무가는 제미나이로 동선을 설계했고, 무대 디자이너와 의상 팀도 AI와의 작업을 거쳐 각자의 결과물을 완성했다. 발레리나 강수진이 최종 검수를 맡았고, 김연아 본인도 연습 과정에서 제미나이를 통해 자신의 동작을 분석하고 교정했다. 영상을 본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AI를 활용했다기에 어색한 결과물을 예상했지만, 오히려 현실처럼 구현됐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이는 이번 제작 과정이 상당한 치밀함과 완성도를 갖추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돌고래 유괴단 _ 신우석 감독
이 프로젝트의 연출을 맡은 신우석 감독은 광고 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가진 인물이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산하 광고 제작사 돌고래유괴단을 이끄는 그는, 브랜드 메시지를 단순히 전달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사건으로 만들어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가 연출하면 광고는 광고처럼 보이지 않는다.
구글이 신우석 감독을 선택한 것은 이 캠페인의 방향성을 잘 드러낸다. 제미나이의 기능을 설명하는 대신, 그 기술이 실제 창작 과정에 어떻게 녹아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 영상을 통해 돈도, 시간도, 경쟁도, 그 어떤 것도 누군가의 잠재력을 막을 수 없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피겨 선수가 발레 무대에 서는 일이 가능한 세계를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 세계를 구현하는 데 AI가 실질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이 캠페인을 단순한 스타 마케팅과 구분 짓는 지점이다.
많은 AI 광고들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기술을 스펙으로 팔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 AI는 이런 것도 할 수 있어요"라는 식의 설명은 사람들의 감성에 닿지 않는다. 이번 영상은 그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발레 무대가 완성되는 과정을 먼저 보여주고, 그 안에 AI가 있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기술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로 무언가를 해내는 것을 보여주는 것. 신우석 감독은 그 방식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고, 구글은 그에게 충분한 판을 깔아줬다.
제미나이 vs 챗 gpt?
'잘 쓰는 사람’이 결과를 만든다. 현재 한국 AI 시장에서 제미나이의 존재감은 챗GPT에 비해 상대적으로 옅다. 이유는 성능의 문제라기보다 감성의 문제에 가깝다는 분석이 많다. 사용자들은 정보를 얼마나 정확하게 주느냐 이전에, 그 AI와 대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운가를 먼저 따진다. 말투, 리듬, 공감의 깊이 등이 그 예다. 한국 사용자들은 이 부분에 예민하다. 구글은 이 사실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Our Queen is Back'을 비롯해 변우석·장원영·카리나를 내세운 별도 캠페인까지, 최근 구글 코리아의 행보는 기술보다 이미지를 앞세우는 방향으로 수렴한다. AI라는 차가운 이미지를 인간적인 이야기로 희석하려는 시도다.
캠페인의 완성도는 탁월하다. 그러나 광고가 아무리 좋아도, 실제 서비스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인식은 오래가지 않는다. 구글이 한국 시장에서 제미나이의 입지를 실질적으로 바꾸려면, 이미지 전략과 함께 한국어 감성에 맞는 서비스 경험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창작과 AI, 그리고 그 경계
김연아는 영상 속에서 발레리나가 됐다. 피겨 선수로서 수십 년간 다져온 몸이 전혀 다른 언어로 움직이는 장면은 그 자체로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 AI가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가 창작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불러온다. AI는 예술가를 대체하지 않는다. 적어도 이 캠페인이 보여주는 방식에서는 그렇다. AI는 전문가들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옆에서 작동했고, 그 결과는 어느 한쪽만으로는 나오지 않았을 무언가였다.
결국 우리는 AI와 어떻게 협업할 것인가. 그리고 그 협업을 통해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가? 구글과 신우석 감독은 그 질문에 하나의 답을 내놨다. 나머지는, 이제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