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뒤편을 들여다보면

by 아트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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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감각을 경험하고 다양한 감정의 파도 속에서 산다. 그 중 ‘슬프다’, ‘기쁘다’처럼 언어의 힘을 빌려 우리의 의식 체계에 명확히 새겨지는 것은 한정적이다. 대부분은 파악하기도 전에 지나가버릴 것이다.


하지만 언어화되지 않는다고 없었던 것이 되지는 않는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이 감각과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뾰족한 이유 없이 울적해지거나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예술은 달의 뒷면처럼 우리가 볼 수 없는 마음의 뒷면에 쌓여가는 것을 조명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4월 13일부터 19일까지 갤러리 비브에서 진행된 이종희 작가의 개인전 <구름 그림자>도 작가의 마음속 어딘가에 안개처럼, 구름처럼, 그림자처럼 도사리고 있는 것들을 포착한다. 구름은 시시각각 변하면서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 구름의 그림자라면 더욱 희미할 터. 이종희 작가는 이처럼 일부러 붙잡지 않으면 남지도 않을 것들을 그림에 붙들었다.


오일파스텔과 아크릴물감을 두껍게 올린 작품들은 가벼운 분위기의 ‘구름 그림자’라는 전시 제목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두터운 물감이 표현하는 것이 완결되지 않은, 계속해서 변하는 이미지라는 걸 알고 나면 왜 전시 제목이 ‘구름 그림자’여야 했는지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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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에 들어서면 왼쪽 벽면에 손톱, 입술과 같은 신체 부위를 크게 그린 그림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각각 ‘고민’, ‘충동’, ‘관찰’, ‘침묵’이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들은 파란색과 노란색 서로 반대되는 두 색이 어우러져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왜 손톱과 입술이어야 했을까 생각하다가 감각은 손가락, 혀, 입술처럼 신체 말단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떠오른다. 불안할 때 손톱을 물어뜯거나 입술을 깨무는 것처럼, 나 자신도 미처 파악하지 못한 나의 마음 상태가 무의식 중에 신체로 먼저 표출되기도 한다.


이 작품들에는 재미난 디테일이 숨어 있기도 하다. 캔버스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찢긴 듯한 부분이 보인다. 실제로 작가가 습관적으로 손톱을 뜯는 행위에서 착안해 캔버스를 손으로 뜯어내는 방식으로 작업한 것이다. 오일파스텔도 작가가 손으로 문지르며 캔버스를 채워나갔다. 다른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직접 남긴 흔적에서 관객을 좀 더 가까이 만나고자 하는 이종희 작가의 의지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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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벽에는 앞서 본 것들과는 사뭇 다른 그림들이 반긴다.


그중 ‘순수한 공허’는 가로 세로 길이 1미터가 넘는 캔버스를 노란색으로 가득 채웠다. 환히 떠오른 태양을 연상시키는 이 그림을 가까이에서 보면 수십, 수백 번 겹쳐 그린 원들이 보인다. 무언가를 반복하는 행위는 일종의 의식(리추얼)이 되고, 의식이라는 건 자연스레 신성함을 띤다. 그러나 의식이 강박과 불안으로 치닫는 것도 한순간이다. 밝은 색감이지만 이 작품에서 어딘가 불안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닐까. 반복해 그려낸 원들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작가의 집요함이 엿보인다.


오른쪽 벽면에는 더 다채로운 색감과 복잡한 형태의 그림들이 자리해 있다. 중첩된 이미지는 만들어졌다가도 사라지고, 사라졌다가도 다시 생겨나는 마음속 수많은 감각과 감정을 떠오르게 한다. 앞서 본 작품들이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파악하려는 시도라면 오른쪽 벽면의 이 그림들은 애초에 그것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음을 깨닫고 혼란을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 보이는 일련의 흐름은 작가가 최근 ADHD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과 연결해 이해할 수도 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나 자신의 마음을 불안해하고 궁금해하다가 이제는 그 불가해성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나아간 것이다.


마지막으로, 눈에 띄는 작품이 하나 있다. 어느 벽면에도 설치되지 않은 입체 조형물이다. 왼쪽 벽과 중앙의 벽이 만나는 모서리쯤 덩그러니 서 있는 이 작품은 유일하게 회화가 아니다. 전시 작품인 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는 이 작품은 관객을 혼란에 빠뜨리는 동시에 전시의 흐름을 깨뜨리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다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언제나 모르는 것이 있고, 우리의 감각이란 언제나 분석을 비껴가는 법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렇게 <구름 그림자>는 마침표를 찍는 대신 말줄임표를 제시하며 여러 가능성을 열어둔 채 관객을 배웅한다.


*사진: 김단야 큐레이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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