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시각을 자극하는 색과 문구의 이미지를 보고 이 페이지에 들어왔는가? 과장된 단어들과 시선을 모으는 강렬한 색상 및 글자체가 난무하는 섬네일(thumbnail)*,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콘텐츠에 호기심을 가지게 하여 콘텐츠를 소비하게 하기 위해 흔히 쓰이는 방법이다. 이 방법이 부당한 것은 아니지만, 본 내용의 중요성을 과도하게 부풀려 필요 이상의 불안을 불어넣고 더 나아가 콘텐츠의 본질을 흐리는 식의 선전이 건전하다고 할 수는 없다. 콘텐츠가 휘두르는 힘이 폭력에 가깝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반겨지지 않고 ‘찌라시’만이 대중을 자극할 수 있는 플랫폼은 정상적인 광장이 아니다.
해당 섬네일은 '유튜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극적인 섬네일을 따라한 것이다. 지상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유튜브는 자극의 폭력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섬네일(thumbnail) 작은 크기의 견본 이미지
유튜브는 전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무료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누구나 손쉽게 동영상을 올리거나 시청할 수 있어 별다른 장벽 없이 가장 많은 사람을 향유자로 끌어모으고 있다. 스마트폰 보급 및 사용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활성화되어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유튜브는 애플리케이션의 형태가 되어 단순 플랫폼의 의미를 넘어 그 자체로 거대한 문화가 되어 일상을 지배한다. 학생들은 검색 엔진이 아닌 유튜브에서 정보를 탐색하며 가치관을 형성하고, 영상을 소비할 뿐 아니라 자신만의 영상 콘텐츠를 개발하기도 하며 개개인이 적극적인 플랫폼 사용자가 된다.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지 않았던 노년층 역시 시각적인 파악이 쉬운 영상을 보고 온라인의 담론을 쉽게 접한다. 바야흐로, ‘1인 1계정 시대’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유튜브에 접속하면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일이 많다. 자극적이고 선정적 콘텐츠가 범람하기 때문이다. 애플리케이션을 키면 가장 먼저 나오는 홈 화면은 물론 인기 동영상 추천란도 자극적인 섬네일과 제목의 영상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섬네일을 누르기만 하면 누구나 제한 없이 그 영상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내용과는 무관하게 조회수 등 양적인 가치에서 우세한 영상이 진열대에 오르게 되는 방식은 콘텐츠의 내용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선전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현상을 가속했다.
여기서 기인하는 가장 큰 문제로 청소년 문화에의 악영향과 정치적 프로파간다의 폭력적 주입을 지적하고 싶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유튜브는 한국 청소년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가지각색 다양한 콘텐츠로 무장한 크리에이터들은 청소년에게 다양한 문화를 제공하며 그들의 문화 감수성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
그러나, 인터넷 방송 플랫폼 ‘아프리카 TV’에서 점화된 1인 미디어 문화가 유튜브에서도 활성화되면서 생긴 변화는 긍정적인 것만 있지 않았다. 선정성을 제재하지 않는 환경에서 시청자가 방송인에게 사이버 캐시를 지급할 수 있는 아프리카 TV의 시스템은 쉽게 악용되었는데, 상업성에 종속된 방송인들은 더욱 자극적인 콘텐츠로 시청자를 모으고자 했고 시청자들은 콘텐츠가 아닌 방송인 개인을 돈을 주고 샀다는 저열한 인식을 견지했다. 유튜브로 그대로 전이된 이러한 문화는 마찬가지의 악영향을 발생시켰다. 시청자가 실시간으로 방송을 하는 스트리머에게 사이버 캐시를 지급할 수 있는 상업적인 환경 속에서 자극적인 콘텐츠들은 난무하고 청소년들은 그대로 노출되었다. 청소년들은 불건전한 의도를 담은 유행어를 인사말처럼 쓰고 그 안에 담긴 폭력성과 혐오주의를 체화한다.
정치적 이념을 폭력적으로 주입하는 프로파간다의 기능은 주로 노년층을 타깃으로 작동한다. 글을 읽는 데에 어려움을 겪어 신문을 읽지 못하거나 정보를 비교적 많이, 오래 전달하는 뉴스 등의 언론을 통해서 정보를 얻기 어려워하는 노년층에게 유튜브는 최적의 조건을 가진 플랫폼이다. 시사보다는 가십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흥미를 자극하는 정보를 글이 아닌 영상으로 축약한 콘텐츠를 정치적 선호에 따라 간편하게 취사선택할 수 있다. 누구나 어렵지 않게 정치적 담론에 접근할 기회를 주는 것은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지만, 왜곡과 과장으로 점철된 ‘가짜 뉴스’가 빈번한 것이 문제이다. 정보를 얻을 기회가 적은 사람들에게 왜곡되고 부풀려진 정보만을 제공하며 불안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담론을 형성하는 것은 사실상의 선동에 가깝다. 그러나 실상은 이러한 정치 콘텐츠가 언론보다 더 신뢰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참고 기사 "아들아 뉴스말고 XX채널 좀 봐라".. 세대갈등 온상지 된 유튜브
사실 이러한 문제는 미디어와 네트워크가 발달하면 으레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필요악의 문제이다. 제재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서 요구되는 것은 비판적인 시각이다. 나름의 비판의식을 견지한다면 앞에서 지적한 문제는 어렵지 않게 해소될 수 있다. 문제는 다름 아닌 유튜브가 대중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그것은 영상 매체의 특성에서 연유한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영화의 등장과 관련하여 움직이는 영상이 관객을 몰입하게 하기보다 분산적으로 지각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들이 더욱 객관적이고 영리해지리라 전망했다. 그러나 매체에 숨은 이데올로기는 곳곳에 퍼져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고 오히려 그들을 체제 순응적으로 만들었다. 또한, 많은 정보를 촘촘하게 함축시킨 영상 매체는 정보의 빈 공간에서 능동적으로 새로운 의견을 창출해낼 수 있는 능력을 퇴화시켰다. 유튜브는 이러한 영상 매체의 역기능을 그대로 답습한다.
영상 매체의 보편적 특성뿐 아니라 유튜브가 제공하는 고유한 서비스도 수동화의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사용자가 시청한 영상을 기반으로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하여 관련된 영상을 추천하는 시스템이 그러하다. 사용자의 취향을 파악하여 콘텐츠를 추천하는 방식은 다른 플랫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아이디어다. 그러나 유튜브 사용자는 이 시스템 아래서 특히 수동적이다. 영화 추천 서비스 애플리케이션 ‘왓챠’의 경우, 수많은 영화를 제시하고 영화에 평점을 매기게 하여 취향을 섬세하게 파악한 후 그에 맞는 영화를 추천한다. 반면 유튜브는 단순히 자주 보는 동영상과 관련된 영상을 추천한다. 사용자는 능동적인 과정 없이 감각과 본능이 반응하는 대로 시청한 영상에 의해 취향을 ‘파악당한다’. 추천받은 콘텐츠를 향유하고 취향을 굳히는 과정에서 사용자는 온전히 수동적이다.
깊이 없는 자극으로 잠식된 매체는 수동적인 대중과 만나 폭력성이 극대화되었다. ‘하위문화’라고 이르며 간과했던 플랫폼이 점점 그 크기를 불려 삶의 내밀한 곳에 침투하기까지 우리는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온라인 콘텐츠와 밀접하게 닿아 있는 청소년에게 어른들은 무엇을 했는가? 컴퓨터를 강제로 끄고 휴대폰을 압수하는 데 급급했지 하나의 세상이 된 인터넷에서의 윤리의식이나 다원적인 문화와 예술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대다수의 사람이 재생 버튼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사회에서 ‘하위’로 취급되어 드러나지 못했던 매체의 불편한 진실에 관한 공론이 필요하다. 비판의식의 신장과 더불어, 건강하지 못한 자극에 열광하는 현 세태의 모습에 대해서도 성찰할 필요가 있다.
“Broadcast yourself(당신을 방영하라)." 유튜브의 표어이다. 화려한 프레임의 움직임이 오감을 자극하는 세상에서 그에 현혹되지 않고 친숙한 매체를 향해 날을 세우는 방법을 체득해야만, 진정한 ‘myself’로서 플랫폼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글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조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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