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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Sep 17. 2018

매혹적인 뮤지컬 웃는 남자 속 원작과 다른 매력을 찾다


 

*작품에 대한 약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Intro



지난달 소설 ‘웃는 남자’를 재밌게 읽었다. (스포일러 없는 책 상반부 감상) 빅토르 위고의 3부작 중 ‘레미제라블’은 영화로 보고 ‘노트르담 드 파리’는 애니메이션과 뮤지컬로 만났는데 이 작품만 유일하게 원작을 읽었다. 책에서는 다양하게 나타나는 상반되는 짝들과 충격적으로 서술된 그윈플레인의 웃음이 인상적이었다. 혼자 상상만 하다가, 마침 EMK 컴퍼니에서 뮤지컬로 옮겨준 김에 보러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리뷰는 뮤지컬만의 평가, 원작과의 비교, 개인 감상 파트로 나누었다.




1. 뮤지컬로서의 작품성



원작이 있다고 해서 꼭 그것대로만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각색된 작품도 그것만의 매력이 있다. 책 속의 활자들이 뮤지컬 속에서 화려한 이미지로, 풍부한 소리로 살아나는 것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01 무대 디자인


뮤지컬하면 음악이다, 춤이다 좋아하는 포인트들이 각자 다르겠지만 이 뮤지컬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무대’였다.

   

메인 무대 디자인

 

마구잡이로 그은 것 같지만 조명과 어우러져 굉장히 섬세하게 극의 분위기를 조절했다. 섬뜩하게 웃고 있는 미소 한 줄기와 수많은 덩굴들은 무대 시작부터 극의 마지막까지 계속해서 등장한다. 플레이DB의 인터뷰에서 오필영 무대 디자이너는 무대의 키워드를 ‘상처’라고 말했다. (‘웃는 남자’ 무대의 6가지 비밀…관객의 시선 사로잡는 무대의 힘) -공연을 보러 가기 전, 이 인터뷰를 읽는 것을 추천-


“가난한 자들은 자신이 가진 상처를 드러내고 이를 서로 따뜻하게 보듬어주지만, 귀족들은 상처가 드러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해 화려한 장식과 과장된 화장으로 이를 철저하게 가린다. 이 개념에서 무대 디자인이 시작되었다”

 

콤프라치코스의 항해

 

바다를 표현하는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원작에서 거의 한 챕터를 소요하여 설명하는 콤프라치코스의 출항과 항해 장면을 진짜 바다가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그 비밀은 4개의 레이어로 나눠진 천과 제일 뒤쪽의 원형 세트에 있었다. 천이 흔들리며 파도를 그려내고 원형 세트는 원근감을 만들어냈다.

 

상원에서의 연설

 

2막의 클라이맥스에 해당되는 상원 회의 장면에서, 앤 여왕을 중심으로 하여 곡선을 그리는 의석배치는 위압감을 보여주기도 했다. 위쪽의 여왕, 귀족들과 아래쪽의 바닥이 입체감을 띄고 가장 낮은 곳의 그윈플레인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02 음악과 연출


가장 특이한 점은 바이올리니스트가 극 안에서 직접 드러나는 부분이다. 처음에는 가짜로 연주하는 우르수스 극단의 배우로 생각했지만 캐스팅보드를 보고 깨달았다. 이건 진짜다! 마치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등장하는 음유시인처럼 극의 실제 인물이자 동시에 극 바깥의 인물로 나타난다. 어느 뮤지컬에서도 본 적 없었던 신선한 연출이라 자꾸만 눈길이 갔다.


모든 넘버즈가 하나 같이 인상적이었지만, 책에서 특히나 기대했던 장면만 뽑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6번 '나무위의 천사'는 소설에서도 공들여 묘사했던 그윈플레인과 데아의 관계를 감미롭게 보여주었다. (감상은 여기에서)

    

“소년의 소녀의 눈이 되고, 소녀는 소년의 거울이었지” - 우르수스

 

15-2번 '1막 피날레'는 그윈플레인이 귀족이라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충격에 휩싸이는 장면을 너무나 멋있게 그려내었다.


23번 '아무말도'에서 조시아나는 자신만만하고 유혹적인 여공작이었다. 원작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


27번 '그 눈을 떠'는 그윈플레인의 상원 연설을 원작보다 감정적으로 들려주었다. 그래서 좋았다. 원작에서는 지나치게 말을 잘 해서 위화감이 느껴졌는데 노래하는 배우로서 호소하자 그윈플레인다웠다.

      

바다 속의 두 사람

 

30번 '2막 피날레'는 닥쳐온 불행을 10여초 동안 침묵한 뒤, 처절한 그윈플레인의 심정을 들려주었다. 그 침묵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은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운명의 장난이 아니었을까.



03 스토리와 연출


EMK 컴퍼니 공식 채널 웃는 남자 오프닝 스토리 영상은 여기


어쩌면 내가 가장 기대한 부분은 이 부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책을 어떤 식으로 뮤지컬로 바꾸었을지 말이다. 원작을 읽은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이 이런 기대를 품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쉬움 30% 만족 70%였다. 아쉬운 부분은 다음과 같다.


웃음의 역설이 덜 드러난 것

정치와 로맨스의 간극이 아쉬움

정복된 카오스 공연의 삭제

 

그윈플레인의 웃음은 “전대미문의 얼굴이 홀로 웃었다.”고 한다.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아버리는 수수께끼를 품고 있는 그 웃음은 그윈플레인의 슬픔을 덮어버린다. 그윈플레인이라는 존재 자체도 사라지고 오직 웃음, 그 하나만 남는다. 나는 그 순간을 뮤지컬이 어떻게 보여줄지 굉장히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이것은 뮤지컬화되지 못했다.


‘웃는 남자’는 정치적인 이야기이다. 부자들과 빈민들의 불평등한 분배에 대해 말하고 그것을 천한 광대와 고귀한 귀족을 하나로 품은 그윈플레인을 통해 보여준다. 공연의 메인 문구도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이루어진다.”인 만큼 관객에게 심어주는 기대가 여기에 있었다. 실제 극은 예상과 달리 그윈플레인-조시아나-데이빗-데아의 애정전선과 그윈플레인의 역전된 신분으로 인한 관계의 변동에 치중한 것 같다.


소설에서 공들여 묘사한 익살꾼 우르수스의 연극, ‘정복된 카오스’ 대신 애정극의 막이 올랐다. ‘정복된 카오스’는 어둠 속에서 짐승 같은 운명과 싸우는 인간과 그를 축복하는 순결한 여신, 찬란하게 드러나는 그윈플레인의 웃음으로 흐른다. 충격적인 이 등장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통속극으로 대체되어 정말 아쉬웠다.


총체적으로 원작을 최대한 반영하려는 노력이 보였지만 그것이 최선은 아닌 것 같다.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많은 장면이 잘렸어도 관객들이 쉽게 이해한 것처럼 할 수는 없었을까? 책을 읽은 독자로서는 비교하기 편하고 달라진 부분을 찾아내는 것이 재밌었지만, 책을 읽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접근이 아니었을까 싶다. 책 속의 정치성을 최대한 줄이고 사랑과 출생의 비밀로 많이 선회하여 스토리를 바꾸었지만 핵심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버릴 수는 없어 혼란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2. 원작 비교 포인트




01 캐릭터의 변화


소설이 뮤지컬로 바뀌는 과정에서 캐릭터들의 성격과 비중이 많이 변했다.



상향

   

여공작 조시아나

 

각색의 가장 큰 수혜자는 단연코 조시아나 여공작이다. 이전에 나는 소설 속 그녀의 속성을 짐승, 여신, 오만함, 사생아, 멋쟁이, 아름다움, 타락, 육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제 여기에 자유와 갈망, 그리고 인간을 추가하려 한다. 짐승 같은 욕망은 내면의 괴로움이 되었고 여신 같은 광휘는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바뀌었다. 한 마디로, 멋있어졌다.



하향


  

데이빗경

 

이전의 데이빗 경은 사생아답지 않은 품위와 귀족답지 않은 자유로움이 결합된 존재였다. 톰-짐-잭으로서의 그는 광대 그윈플레인에게 호의적이었고 귀족으로서의 그는 그윈플레인의 정의에 공감했다. 조시아나는 남편이 아닌 남자로서 그를 사모했다. 그러나 뮤지컬에서는 뚜렷한 악역이 필요했고, 데이빗은 치졸하고 비열한 인물로 떨어졌다.

 

페드로

 

페드로는 악역으로서의 면모를 대부분 데이빗에게 양도했다. 후면에서 사건을 만들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들었던 계략가는 사라지고 극의 진행을 이끄는 궁정인사 정도로 지분이 줄어들었다.



유지

 

그윈플레인, 데아

 

그윈플레인과 데아는 상상하던 모습으로 나타났다. ‘데아’ 자체를 보여주는 유일한 씬인 워터댄스 장면이 추가된 정도가 인상적이었다.



수평적 변동

 

우르수스

 

우르수스는 철학자이자 다재다능한 익살꾼의 면모가 줄어들고 극단을 이끄는 대장이자 그윈플레인과 데아의 아버지로서의 모습이 강조되었다. 묘하게 한국적인 느낌이 든다.



삭제

       

늑대 호모

 

원작에서는 극을 여는 두 가지 이야기 중 철학자 우르수스 편에서 중요하게 등장한 가족 같은 늑대가 사라졌다. 인간을 의미하는 명칭인 ‘호모’를 자신의 이름으로 가진 이 늑대는 극의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했었다.



02 19세기 빅토르 위고와 21세기의 로버트 요한슨


"운명에서 인간으로"


연출 로버트 요한슨은 ‘웃는 남자’를 빅토르 위고와 다르게 보여주었다. 뮤지컬로 만난 ‘웃는 남자’에서 운명은 인간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당시는 알 수 없는 시대적 한계가 오늘날에는 볼 수 있다. 19세기의 공화주의자의 사상은 21세기에 평범해졌다. 인물들 역시 좀 더 인간적으로 변했다. 그윈플레인의 28번 넘버인 웃는 남자의 가사와 조시아나의 변화, 데이빗의 적극적 선택 등에서 이 흔적을 느낄 수 있다.




3. 개인 감상 포인트




01 꼭 전하고 싶은 꿀팁


오페라 글라스를 빌리자. 단돈 3000원이다.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뮤지컬을 보면서 한 번도 이것을 빌린 적이 없었고, 이번 공연에서 이 선택을 후회했다. 같이 간 친구의 것을 빌려 조금 봤지만 그것으로는 정말 부족했다. 이 뮤지컬에서는 꼭 그윈플레인의 얼굴을 봐야한다. 매 장면 마다 그의 표정이 다채롭게 변하는데 맨눈으로는 한계가 있다. 뮤지컬 속의 연극 소품도 굉장히 섬세하고 여왕의 분장과 조시아나의 복장 역시 자세히 보면 볼수록 감탄이 일어났다.



02 앙상블 팀


‘노트르담 드 파리’의 아크로바틱 팀과는 다른 매력을 뿜는 ‘웃는 남자’의 앙상블 팀도 관람 포인트이다. 그들은 파티를 즐기는 방탕한 귀족이 되기도 하고, 극 속의 극의 관객이자 배우가 되기도 하고, 조롱하는 상원의원이 되기도 한다. 초반에 어린 그윈플레인이 눈 속을 헤맬 때 얼음으로 형상화되어 움직일 때는 얼마나 연습해야 저렇게 유연한 움직임이 나오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Outro



최근에 본 뮤지컬 중에서 ‘캣츠’ 만큼이나 인상적인 뮤지컬이었다. 창작 뮤지컬이 보여준 가능성에 기분 좋게 놀라기도 했다. 이전에는 오리지널 뮤지컬이나 라이선스 뮤지컬이 최고인줄 알았지만, ‘웃는 남자’가 이 생각을 부쉈다.


더불어 14일의 캐스팅에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한다. 배우들은 프로답게 깨끗하고 안정된 노래를 들려주었고 마치 그 캐릭터 자체가 된 것 마냥 연기했다. 이번에 처음 만난 그윈플레인 역의 박강현은 앞으로도 계속 만나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인 연기를 보여주었고 상원회의 장면에서 보았던 앤여왕 이소유의 우린 상위 일프로의 퍼포먼스는 공연다운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하단부터는 강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공연을 봤지만 아직 이해가 되지 않은 관객을 위한, 뮤지컬 스토리 정리



정당한 귀족의 후계자인 그윈플레인은 사생아 데이빗에 의해 콤프라치코스에게 팔린다. 운명은 뒤바뀌어 그윈플레인은 우르수스에게 주워진 후 광대로 살아가고 데이빗은 경의 칭호를 달고 조시아나와의 결혼을 조건으로 귀족 후계자가 된다.


데아와의 순수한 사랑만을 알던 그윈플레인은 자신의 얼굴을 보고도 원하는, 고귀한 유혹자 조시아나를 만나고 흔들린다.


그러던 어느 날, 눈물의 성이라는 악명 높은 감옥으로 끌려간 그는 페드로를 통해 자신이 정당한 귀족 후계자라는 비밀을 듣게 된다.


우르수스는 감옥에서 나오는 다른 시체를 그윈플레인으로 착각하고 심장이 약한 데아를 위해 한 편의 공연을 연기하지만 데아는 진실을 눈치 채고 만다.


감옥에서 기절한 후 자신의 성에서 눈을 뜬 그윈플레인은 페드로의 부추김에 이어 귀족이 된 자신에게 도취된다. 그러나 뒤바꾼 신분으로 인해 조시아나에게 거절당한 뒤, 상원으로 향하게 된다.


이곳에서 그는 평소 꿈꾸던 가난한 자들을 위한 정치를 상원 회의에 참석하여 역설하지만 모두의 비웃음을 사고 실패한다. 그는 진정으로 자신이 있어야 하는 곳을 깨닫고 데아에게 돌아간다.


극적으로 재회한 그윈플레인, 데아, 우르수스. 하지만 데아는 여러 번의 충격적인 일들을 견디지 못하고 죽고 만다. 낙심한 그윈플레인은 데아를 따라가기 위해 바다로 몸을 던진다.




 

 

글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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