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뮤지엄 'Weather: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 세이수미
전시(exhibition)에 OST가 있다면?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전시 OST는 국내에서는 최초로 시도된 기획이었다. 뮤직 크리에이티브 그룹 스페이스 오디티와 디뮤지엄이 함께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OST가 있는 전시를 기획했다. 많은 이들의 인스타그램 혹은 카카오톡 배경화면을 세게 치고 있는 바로 그 전시, ‘Weather: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다.
조금씩 공개된 OST 음악이 너무 좋아서 전시까지 관심이 닿았다. 대체 뭘 보고 이렇게 좋은 음악들을 만들어낸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 마침 전시 – 공연 – 캔들 만들기까지 함께 준비된 세트 티켓이 있길래 얼른 예매하고 다녀왔다. 후기가 2주나 늦어 지금은 꽤 쌀쌀하지만, 여름의 끝자락 9월 1일에 있었던 세이수미 공연과 전시를 리뷰한다.
대림미술관 디뮤지엄은 한남동의 주택가 안에 있다. 말레이시아 대사관과 서울독일학교 뒤, 엄청나게 큰 아파트단지를 마주하고 서있다. 한남역에서도, 한강진역에서도, 옥수역에서도 애매하게 먼 위치의 디뮤지엄은 대림미술관 20주년 때 지어져 국내 젊은 아티스트들의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위치가 애매하다고 필요 없는 구박을 한 이유는 내가 바보같이 경복궁역까지 갔다가 돌아갔기 때문이다. 대림미술관에 간다면 그것이 대림미술관인지, 디뮤지엄인지 헷갈리지 말 것!
9월 1일의 날씨는 더웠다. 딱 15일 지난 지금은 저녁이 되면 으슬으슬 추워서, 언제 그리 더웠는가 싶지만 9월 1일의 한낮은 셔츠 안의 몸통이 땀으로 범벅이 될 만큼 더웠다. 옥수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중간에 내려서 한참을 걸었다. 날씨가 무척 좋았다. 서울의 높은 동네에 오면 이렇게 오밀조밀 붙은 집들이 보이는 것이 좋다. 다소 험난한 오르막을 지나 조금 헤멘 뒤 디뮤지엄에 도착했다.
‘Weather: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전시를 위해 만들어진 전시 OST는 총 4곡이다. 일단 참여 아티스트 라인업이 무척 신선하면서도 좋은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로 구성되었다. 세이수미(Say Sue Me), 오존, OLNL&히피는 집시였다, 이진아가 참여했다. 각각 전시 작품들 속에서 ‘햇살’, ‘달빛’, ‘비’, ‘파랑’이라는 키워드를 뽑아, 여기서 받은 영감을 음악으로 풀어냈다.
여기서 ‘무척 신선하면서도 좋은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라는 주관적 평가에 살을 붙여보자면,
세이수미는 국내 뿐 아니라 영국 등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밴드다. 오존은 입소문을 타고 유희열의 스케치북 ‘너의 이름은’에 출연하여 대중들에게 소개되었고, OLNL과 히피는 집시였다는 힙합-알앤비 뮤지션으로 히피는 집시였다는 올해 15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알앤비&소울 음반 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진아는 SBS 로 알려져, 유희열이 이끄는 안테나에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로 팝과 재즈를 넘나드는 유려한 건반 연주가 인상적인 아티스트다.
그리고 이 전시와 연계하여, 디뮤지엄과 스페이스 오디티는 전시 OST 콘서트 [여름의 끝 THE END OF SUMMER]을 기획했다. 9월 1일부터 2일까지 양일간, 전시 OST 음반 발매 콘서트를 개최하며 아티스트의 공연, 전시 관람, 그리고 ‘여름의 끝’과 연결 지을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를 엮었다. 캔들을 만들어보거나, DJing 파티를 즐기거나, 어울리는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나는 9월 1일 첫 순서였던 세이수미의 공연과 여름 바다를 담은 캔들 만들기 세트 티켓을 구매해서 다녀왔다.
디뮤지엄에 도착한 뒤, 전시보다 먼저 캔들을 만들러 라운지로 갔다. 제임슨 진저 에일과 탄산수를 섞은 칵테일 한 잔이 무료로 제공됐다. 탁자에는 양초를 만들 재료가 끓고 있고, 모래와 조개, 작은 불가사리 모형 등 바다를 나타낼 수 있는 작은 오브제들이 있었다. 일행과 사진을 찍고 나름대로 섬세하게 자리를 잡아 바다를 만들었다. 무색 투명한 양초가 굳기를 기다리며 1차 잡담, 그리고 파랑 색소를 섞어 위층을 만들고 구석에 양초를 둔 뒤 전시를 보러 갔다.
토요일 낮의 디뮤지엄은 사람이 정말 많다. 주의! 사람이 많으니 사람 많은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일정을 다시 잡으시오! 페스티벌과 콘서트를 사랑하는데 사람이 많은 걸 싫어한다면 조금 이상하지만 전시는 여유롭게, 나만의 속도로 보는 것을 좋아한다. 이 전시에서는? 주말에는? 절대 그럴 수 없다. 스마트폰을 들어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에서 슉슉 지나가는 수밖에 없다.
특히 초반부에서 사진들은 지나치게 다닥다닥 붙어있고, 사람들은 이것이 설치물인지 발인지 알 수 없는 사진들을 휘저으며 전시실 내부를 서성인다. 그런 상황에서 여유롭게 가이드 혹은 음악을 들으며 전시를 보는 것은 몹시 힘든 일이었다. 정말 예쁘고 특이한 사진들도 많았지만 꽤 평이한 작품들도 많았다. 일상 사진으로 감탄을 자아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첫 부분을 넘어가면 사정은 좀 나아진다. 그제서야 제 속도를 찾은 관람객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때문이다.
[웨더] 전은 단순히 사진을 배치, 나열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관람자가 사진 속 상황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비, 안개, 천둥 등을 표현하기 위해서 안개를 뿜어내는 기계를 도중에 설치하고, 동시에 차단막을 두어 사진은 제습기를 통해 보호했다. 몸에 흐르는 전류를 이용한 것으로 추측되는 참여형 설치미술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다른 손을 벽의 일정 위치에 대면, 앞에 있는 모니터에서 번개가 치는 것도 재미있었다. 우리의 일상 배경에 기본으로 깔려 있는 날씨를 주제로, 맨 앞으로 이끌어와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 신선했다.
전시는 그럭저럭, 모두가 기다리는 줄을 지나 인생샷을 하나 건지고 돌아왔다. 상업적인 전시란 이런 것이다 – 보여준 듯한 느낌. 토요일, 공연이 있는 날이 아니라면 좀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이 전시에 오게 된 이유, 기다리고 기다리던 세이수미의 공연! 세이수미는 2집 [Old Town] 때 알게 되어 팬이 된 밴드다. 세이수미는 부산 광안리를 기점으로 출발한 서프록 밴드로 영국 인디 레이블 댐나블리(Damnably) 등과 계약을 맺고 해외 공연도 펼치고 있다. 쟁글쟁글한 기타 소리와 과거를 추억하는 듯한 아련함, 향수, 그리고 밀려오는 바다와 맥주의 향기가 음악에 담겨 무척 매력적인 밴드다.
캐주얼한 차림으로 무대에 오른 세이수미는 여름을 연상시키는 ‘But I Like You’의 기타 리프로 ‘여름의 끝’ 콘서트에 어울리는 시작을 선보였다. 뭉개져 들렸던 보컬과 기타 솔로를 생각하면 사운드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세이수미가 가진 아련한 바다의 느낌을 막지는 못했다. 각자 편안한 통이 넓은 바지에 스니커즈, 노란색 티셔츠, 나사(NASA) 로고가 그려진 티셔츠 등을 입고 멤버들은 편하게 음악을 들려주었다.
첫 곡이 끝나고 세이수미는 부산 출신 밴드라는 소박한 소개와 함께 인사를 전했다. 양초는 잘 만들었냐며, 자신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나는, 만약 그랬다면 머리가 아파 무대를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마음속으로만 말했다. 공연장은 양초 녹이는 냄새 때문에 매캐했기 때문이다. 환기가 되고 있다고 하지만 분명 건강이 안 좋아지는 느낌의 공기였다. 머리가 아파 도중에 나가는 사람들도 보았다.
세이수미는 그 뒤로도 ‘Old Town’, ‘I Just Wanna Dance’, ‘Sumer Nights’, 그리고 최근 발표한 신곡 ‘Just Joking Around’를 들려주었다. ‘Just Joking Around’는 지난 [우.사.인]에서 8월의 트랙으로 선정해서 소개하기도 했다. 이 날 가장 좋았던 곡도 이 곡이다. 3단계에 거쳐 고조되며 변하는 연주, 잔잔하게 사람을 울리는 듯한 보컬과 기타가 뭉개지는 사운드 위에서 더 절절하게 들렸다. 가사가 전부 영어라서 직관적으로 들어오지 않아도 보컬과 악기들이 전달하는 감정이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관객들은 각자 바닥에 준비된 매트에 앉기도 하고, 소파나 간이의자에 앉아 공연을 봤다. 다같이 서서 봤다면 더 힘들었겠지만 공연 내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안 친한 사촌의 결혼식 축가를 보듯 경직되어 있어서 아쉬웠다. ‘I Just Wanna Dance’라는, ‘나는 그냥 춤추고 싶어’라는 이 댄서블한 곡을 가만히 앉아서 보는 건 정말이지 고문이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열심히 몸을 좌우로 흔들며 ‘나는 이 곡에서 춤을 추고 싶어요! 밴드 혼자 신난게 아니에요!’라고 말하려 했다. 전달되었는지는 자신이 없다.
부족한 전시의 느낌 혹은 무척이나 상업성이 두드러졌던 전시의 느낌은 세이수미의 아련함으로 마무리되었다. 6곡이라는 짧은 셋리스트가 정말 아쉬웠다. 세이수미의 공연은 좋은 음향이 있는 곳에서 더 길게 만나고 싶다.
이번에 발매된 OST 앨범은 특별히 LP로 제작되어, 투명한 케이스 안에 쨍한 파랑색의 LP로 만날 수 있다. 실물을 정말 사고 싶었지만 아직 턴테이블도 여유로운 통장 잔고도 없어서 꼭 안고 기념품샵을 두 바퀴 돌아다닌 뒤 내려놓았다. 실물이 정말정말 예쁘고, 담긴 음악도 정말 좋으니 LP에 관심이 있는 소비자라면 반드시 참고할 것. 세이수미의 ‘We Just’도 좋지만 공부나 작업을 할 땐 이진아의 재즈곡 ‘Always With Us’도 좋다.
음악이 리스너를 전시로 이끌었고, 전시는 관람객을 음악으로 이끌었다. 전시와 음악은 동떨어진분야처럼 보였지만, 이 마케팅은 전시를 만난 사람들이 새로운 뮤지션과 음악을 접하며, 스스로의 경험을 넓혀 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스페이스 오디티가 보여주는 음악 마케팅은 매번 기대하게 되고, 이번 전시로 인해 나는 스페이스 오디티의 완전한 팬이 되었다. 전시만큼 (혹은 전시보다 더!) 좋은 전시 OST, 궁금하지 않은가.
글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김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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