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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Sep 27. 2018

수상한 나무들이 보낸 편지

 

  

최근 일감이 몰려서 번아웃 증후군 Burnout Syndrome에 시달렸다. 스스로 나를 컨트롤하지 못하고 자책과 죄책으로 휩싸이니 좋아하던 책도 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제 와서 말하자면, 이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펼치기 전까지 꽤 오랜 마음고생을 했다.


마음이 복잡해지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산책과 사유와 사색이었다. 그저 걷고 쉬고 생각을 하다 보면 나아질거라는 희망사항이 나를 위로해 줄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한동안 걷기만 했다. 걷다 보면 날 붙잡아두던 긴장감이 다소 사라지고 불안했던 마음도 조금 누그러졌다. 추석 연휴 산책한 시댁 뒷산에서 문득 스쳐간 생각 하나. 그제서야 조금 내 주위를 둘러보았다. 동서남북 나를 감싸고 맴돌았던 건 다름 아닌 ‘나무’였다.


나는 꽤나 ‘나무’에 관심이 많았던 아이였다. 산 속에 자리한 관사에 살아온 주변 환경 탓도 있겠지만, 도심에 살고 있어도 잊지 않고 싶은 가장 본질적인 요소에는 늘 ‘나무’가 있었다.



에코백에 정성스레 가져온 화분 하나, 첫 직장 생활 기념으로 사올 때부터 지금까지 묵묵히 잎을 내고 제자리를 지키던 ‘산호수’. 작지만 앙증맞은 산호수 화분만은 내 신혼집에 들고 들어왔다. ‘강원도 출생이라 숲과 나무를 좋아해요’라는 농담은 지나치지 않다. 제 아무리 도심에 살아도 피톤치드 가득한 숲길을 걷는 건 연어가 강으로 회귀하듯, 나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나무에 관심이 많고 남들보다 이름을 좀 많이 아는 편이다. 지나다가 아는 나무를 마주치면 옛친구 만나듯 반갑고, 또 자주 드나드는 카페 앞에 씨를 뿌린 오동나무도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무엇보다 작지만 큰 행복, 소확행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내 가까이 있음을 나무에서 느낄 수 있다. - Preview 중 -


 

길가를 걷다 보면 잎과 가지의 모양새가 특이하거나 눈길을 끄는 나무들이 간혹 있다. 예전에는 그 나무를 알고 싶으면 나무백과를 검색하고, 비슷한 나무를 비교하게 시간을 들일 일이 많았지만, 세상 참 좋아졌다. 요즘에는 인터넷에 사진을 찍기만 해도 그 나무를 알 수 있으니, 조금은 더 나무를 알아가기 좋은 세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 넓은 지구에 대지에서 터를 잡고 자라는 나무들을 모두 다 알 수 있을까? 내가 이 땅을 벗어나지 않는 한 이름 모를 나무들도 많을 터. 종종 아마존이나 아프리카를 TV에서 만나면 그 궁금증이 조금 짙어졌다. 특히 어린왕자 속 바보밥나무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무가 들려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었다.


그러던 와중 만난 <BIZARBRES 수상한 나무들이 보낸 편지>는 어른아이가 된 내가 동심으로 돌아가게 한, 나무들의 진솔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해 준 동화책이다. 전세계 가장 희귀하면서도 이색적인 열여섯 그루 나무친구들의 이야기를 엮은 이 책은 쉽게 지나쳤을 나무들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책이다.

 

 

 

 

사실 나무는 ‘학명’이라 불리는 세계 공통의 이름이 있다. 나무에 이름을 짓는 과학자들의 약속을 지키는 이름들이 있다. 이렇듯 근본적으로 통용되는 이름이 있긴 하지만, 쉽지 않은 이름 탓에 우리는 나무를 이해하는 데 조금은 어려운 감이 있었다.


이 책은 ‘초콜릿’나무, ‘비’나무, ‘유령’나무, ‘유리병’나무, ‘빵’나무, ‘무지개’나무, ‘목졸라’나무, ‘꼬마’나무, ‘거꾸로’’나무, ‘소뿔’나무, ‘소시지’나무, ‘걷는’나무, ‘다이너마이트’나무, ‘껌’나무, ‘금화’나무, ‘거인’나무 등 실제 나무의 특성과 특징을 이름에 매치하여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였다. 특히 나무를 그린 일러스트가 소개 글과 짝을 이루어 남녀노소 구분 없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게 이 책의 매력이다. 맨 아래 팁처럼 알려준 정보는 교양으로 알아두기 좋은 점들로 구성되어 있는 점도 덧붙인다.


그중 요즘 내가 길가에서 많이 보는 은행나무를 소개한 ‘금화나무’편을 소개해볼까? 최근 은행열매의 야릇한 냄새 덕에 미움을 받고 있긴 하지만,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가로수 중 하나다. 어릴 적엔 낙엽을 말려 책갈피로 쓰기도 하고, 어제는 시댁 식구들과 갈비찜에 열매를 넣어 배부르게 먹은 고마운 나무다. 이 은행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함께 귀기울여 보자.



나는 아주 귀한 나무예요. 나를 발견하면 부자가 된답니다! 어떻게 찾는지 가르쳐 줄게요. 

 

내 사랑스러운 연둣빛 잎들은 부채 모양으로 생겼어요. 어떤 사람들은 나비나 오리발 같다고 하지요. 내 잎은 낙엽으로 떨어지기 전에 찬란한 황금빛으로 변해요. 그래서 ‘금화나무’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중략)

 

식물학자들은 아직까지도 나를 신기해 해요. 내 조상은 오래전인 2억 4천만년 전에 지구가 나타났고, 나와 같은 과에 속한 식물 가운데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종은 오로지 나 혼자뿐이에요. 쥐라기 (약 1억 8천만~1억 3천 5백만 년 전)에 살앗던 공룡 디플로도쿠스가 내 잎을 몽땅 먹어 치우지 않는 덕분에 아직까지 살아 있나 봐요. - 금화나무 中-


 

쥐라기부터 지금까지 살아 우리 곁에 있어준 은행나무, 금화나무의 생명력! <수상한 나무들의 편지>에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이제 막 30여년 넘게 살아온 내가 고개를 숙여야 할 내가 금화나무에게 고마움을 전해야 할 것만 같다. 수많은 위기와 역경에서 뿌리 내리고 잎을 내고 열매를 맺고 살아온 금화나무는 어떻게 그 시간들을 인내했을까?


그렇다면, 껌나무 이야기를 들어볼까?



경고: 이 내용은 특급 비밀입니다.

 

사람들이 즐겨 씹는 껌의 원료는 과일나무인 사포딜라, 바로 나에게서 나와요. 그렇다면 껌은 사실 과일일까요? 그건 아니에요. 하지만 내 열매도 제법 맛있어요. (중략)

 

껌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사람들은 잘 모르더라고요. 내가 그 비밀을 가르쳐 줄게요.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내 몸통 껍질에 상처를 내서 흘러나오는 수액을 모았어요. 고무 재질의이 수액을 ‘치클’이라고 불러요. 사람들은 존득한 치클을 껌처럼 씹었어요. (중략)

 

그로부터 100년이 지나서 껌을 만드는 회사들은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냈어요. 치클은 수확하기 어려우니 화학적으로 합성한 물질로 껌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 껌나무 中-


 

열여섯 그루가 찬찬히 알려주는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신비로운 나무의 속내를 알려 주었다. <수상한 나무들이 보낸 편지>는 식물성 콩기름 잉크와 친환경 무알콜 인쇄 방식으로 제작되어 나무를 사랑하는 출판사와 작가의 씀씀이까지 알 수 있었던 고마운 책이다.

 

 

 

 

가을이다. 온 가족이 모여 음식을 장만하고 차례를 지내는 뜻깊고 기쁜 연휴, 추석도 거의 끝나간다. 결실을 맺은 열매들을 수확하고 나무들은 다시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가을, 이 가을의 풍요로움이 어디서 왔는가 생각해 보니, 그 답에는 ‘나무’가 있었다.


수상한 나무들이 보낸 편지라는 이름과는 달리, 친구 같고, 가족 같은 나무들이 보낸 편지라 해도 무색할 이 책을 읽으며 추석을 보냈다. 언제나 푸르르고 제자리를 지키는 나무처럼,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생각하며 말이다. 그 편지에 답장을 해 줄 날을 기다리며 이번 가을을 보다 더 의미 있게 보내야 겠다 생각하며 이 책을 덮어 본다.

 

 


 

 

글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오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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