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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Oct 05. 2018

출판저널이 선정한 편집자 기획노트 Vol.5



출판저널이 선정한 편집자 기획노트 Vol.5


선정 및 정보 제공 - 출판저널


<출판저널>이 선정한 [편집자 기획노트]는 편집자가 직접 들려주는 '기획노트'를 통해 책 기획 의도와 제작 후일담을 전합니다.

 

 

조선시대 제주도의 이상기후와 문화

영화장화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조선시대 제주도의 이상기후와 문화



기후변화가 만든 제주의 문화와 정체성
      

 

이 책의 저자는 제주도 토박이로, 제주시 세화고등학교의 교감이다. 저자가 출판사로 원고를 보낸 당시 지나치게 겸손했던 덕에 죄송스럽게도 별 기대 없이 원고를 봤음을 시인한다. 제목이 《조선시대 제주도의 이상기후와 문화》인 탓도 있다. ‘조선시대’도 그렇지만 ‘이상기후’도 너무나 흔해져 버렸고, 그나마 끌릴 만한 것이 ‘제주도’인데 여기에서도 나올 것은 다 나오지 않았나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지만 별 생각 없이 조판했다. 그 결과 초교 후 조판 시 흑백으로 전환했던 사진들을 모두 컬러 원본으로 되돌렸다. 단도로 발주했던 삽화들 또한 모두 컬러로 재작업했다. 무선으로 적어 놨던 사양을 양장으로 고쳐서 진행했다.


제대로 들여다보니 내용은 그동안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제주 이야기로 전체를 이루고 있었고 사진들은 모두 상태도 좋고, 흔하지 않은 것들로 개성이 있었다. 기후를 설명하기 위해서 제주도에 초점을 둔 것은 ‘신의 한 수’ 같았다. 삼다도(三多島)로 잘 알려진 제주도는 육지에서 떨어진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하여 전통시대의 기후문화가 잘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풍재(風災), 수재(水災), 한재(旱災)가 많은 삼재도(三災島)이기도 했다. 기후를 통해 문화와 정체성을 살펴보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일 수밖에 없었다.


제주도의 3대 기근으로 불리는 경임대기근1670~1672년, 계정대기근1713~1717년, 임을대기근1792~1794년은 각각 제주 인구의 20~30%를 사망에 이르게 했는데 당시 목사 노정이 현종에게 보낸 전문에는 “제주도에 굶어 죽은 백성의 수가 무려 2260여 명이나 되고 남은 자도 이미 귀신 꼴이 되었다…”고 꽤나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증보문헌비고》,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제주풍토록》, 《남명소승》 등의 사료(史料)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제주도의 이상기후 양상과 그에 대한 대응을 찾아서 정리해 놓은 부분은 마치 연구 방법론인 인터뷰를 연상시켰다.


제주도는 열대성 저기압인 태풍의 길목에 있고, 드넓은 해양과 높은 한라산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최다우지를 이루는데다,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지질 및 토양의 특성 때문에 투수성과 증발산량이 높아 땅은 쉽게 메마른다. 오랜 기간에 걸친 편년체 사료와 지리지, 중앙 관리이거나 제주도로 유배된 인물들의 개인 사료들을 꼼꼼하게 분석한 결과는 기후재해의 반복되는 경향을 보여 준다. 나날이 더워져 가는 오늘날 들려 줄 이야기가 아주 많을 것이다.


제주의 선인들은 바람을 막기 위해 돌담을 쌓았다. 가뭄에는 소나 말이 밭을 밟게 하고, 가로밭갈기로 폭우에 대비했다. 삼재의 거친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삶을 영위해 온 제주선인들의 지혜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제주도 토박이인 저자의 그 지나친 겸손함이 여기에서 나온 것 같다. 그리고 그 겸손함은 우리가 기후변화에 대해 고민할 때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글/ 이선주 (주)푸른길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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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장화



현재를 뒤흔드는 아주 현실적인 체험
  

 

책읽는저녁은 인문/사회를 주요 출판테마로 삼아, 동아시아의 사상적 궤적들이 분투하고 갈등하는 현장을 포착하는 책을 출판한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번역출판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부산과 동아시아의 속성을 모두 품은 책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으로 치환될 수 있다. 부산을 생각하니까 단박에 ‘영화’가 떠올랐다. 영화는 사상을 구현하는 주요한 매체/예술 중 하나이니 출판사의 모토와도 어울렸다. 그때 《영화장화》가 눈에 띄었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영화의 맨살》로 이미 한국에서도 유명했지만, 두 제자인 구로사와 기요시, 아오야마 신지 감독은 영화 외에 책으로는 소개된 바 없었다. 판단이 서자 곧바로 에이전시를 통해 저작권사에 판권을 문의했다.


판권이 유효해서 정식으로 오퍼를 넣었다. 그런데 일본 출판사와의 첫 거래는 상당히 지난했다. 초조한 기다림 끝에 오퍼에 대한 정식 승인이 났고, 《영화장화》는 번역, 교정, 인쇄 과정을 거쳐 독자에게 선보일 수 있었다. 출판과정 중에 가장 만족했던 부분은 앞표지이다. 이 책 표지에 쓰인 세 사람의 사진은 원작에서 간지로 쓰였던 것인데, 그 사진을 보자마자 꼭 표지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영화장화》의 내용을 한눈에 보여주는 표지라 생각한다.


《영화장화》는 제목 그대로 영화에 관한 세 사람의 긴 이야기이다. 그러나 긴 이야기라고 해서 독자에게 지루함을 주지는 않는다. 가볍게 접근하면서도 우리의 무릎을 치게 만드는 재기 발랄함이 숨어 있다. 이 책은 세 사람의 관계에서 시작한다. 세 사람의 모임 자체는 이미 격렬한 사건이기도 하다. 세 사람은 영화를 매개로 구성되고 관계하며 운동한다. 그렇다고 세 사람의 영향, 모방의 문제를 다루는 책은 아니다. 다만 영화의 가능성, 구체적으로 장면을 만들기가 불가능한 시대에 대한 징후를 세 사람의 대화에서 읽을 수 있다. 또한 이 책의 미덕은 단지 영화만을 목적하지 않는 데 있다. 영화가 하나의 텍스트라면 또 다른 텍스트와의 결합을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종의 콘텍스트와의 내적 긴장이 분명 이 책의 이면에 흐른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말한다. “‘아는 사람은 안다’란 언젠가는 이해하는 사람과 만날지도 모른다는 로맨틱한 몽상이 아닙니다. … 알려고 하지 않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알게 되는 순간은 살아있는 현재를 뒤흔드는 아주 현실적인 체험인 것입니다. 그것이 영화에는 있어요.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그건 어느 순간에 사건처럼 일어납니다.” 현재를 뒤흔드는 아주 현실적인 체험으로의 영화, 어느 순간에 도래하는 혹은 도달하는 “아!”라는 외마디 탄성. 그래서 영화는 여전히 늘 매력적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발견하시리라. 《영화장화》에서.


글/ 책읽는저녁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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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11년째 동네 헌책방을 운영하는 작가
                               

 

“사실 내 인생은 대부분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된 결과이다.”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 에서 발췌한 글로 책 첫 페이지에 나오는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이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를 가장 잘 표현한 듯하다. 인생에서 적절한 순간, 적절한 사람에 대해 이 책은 잘 담고 있기 때문이다.


윤성근 작가는 은평구에서 ‘이상한나라의헌책방’을 운영하는 책방 대표이다. 비가 쏟아지는 날, 미팅을 위해 책방을 찾았다. 이미 글로 만난 책방이지만 내가 예상했던 책방 내부보다 훨씬 정갈하고 깔끔했다. 오히려 외국 고서점 같은 고풍스러운 느낌이 났다. 작가가 읽고 선별해둔 책들이 위풍당당 서재에 꽂혀 있었고 은은한 차향 책방을 따뜻하게 데우고 있었다. 11년째 동네에서 헌책방을 운영하기 위한 작가의 고민과 노력의 흔적을 곳곳에 찾아볼 수 있었다.


작가는 헌책방을 운영하기 전 IT기업에서 일했는데 일상화된 야근과 개인 시간 없이 오로지 일에 매여 살아야 했다. 과도한 체중 증가와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몸의 균형은 헝클어졌고, 급기야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른다. 방황하던 끝에 우연히 만난 이반 일리치의 책들을 읽고 ‘생활’의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멀리 떠나지 않고 헌책방을 운영하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 시스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자립할 수 있을지 궁리하며 자신만의 생활 리듬을 만들어 간다. 회사를 다닐 때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생활리듬에 찾은 것에 만족한다. 저자가 행한 이반 일리치의 사상은 일상이 파괴되고 몸의 리듬을 무시한 채 일에 매달려 사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된다.


처음 작가가 제안한 제목이 길어 독자들에게 쉽게 기억될지 이반 일리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지 걱정이었다. 다른 제목으로 논의해봤지만 다시 곱씹어 보니, ‘동네 헌책방’이란 말과 ‘이반 일리치를 읽다’가 의미 있게 다가왔다.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의 등장으로 동네 책방들이 많이 사라졌다. 최근 들어 개성 있는 동네 서점들이 다시 생겨나고 있지만 책방 운영이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동네 헌책방에서 헌책을 살 수 있고 인근 주민들에게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었다. 다시 이반 일리치를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무시한 채 노동하는 시대와 타인의 규율에 얽매여 사는 생활과 이제 작별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책의 제목을 곱씹으면서 경쟁하며 보여주는 생활이 아닌 자신의 리듬대로 생활하며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작가가 오랜 방황 끝에 이반 일리치를 만난 것처럼, 누군가에게도 이 책이 삶을 변화시키는 적절한 순간되길 바란다.


글/ 윤은미 산지니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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