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나도 어려서, 엄마와 화해할 수 없는 걸까요
가정법원에서 시민모니터단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얼마 전 위촉식에 참가하게 되었다. 우연히도 위촉식 전날 '엄마 반성문'의 저자 이유남 선생님의 특강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같은 테이블에서 점심을 함께 했던 판사님과 조사관님께서 정말 인상 깊은 강의였다고 말씀하시면서, 소년부에 재판을 받으러 오는 학생들 중 70% 이상은 가정에서의 제대로 된 보호나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해주셨다. 문득 흥미가 생겨 책을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아직 나는 엄마가 되어본 적도 없고, 엄마가 될 날도 멀었다는 생각이 들다 보니 상대적으로 '내가 엄마라면'을 가정하기보다 '우리 엄마는 어땠는가'를 반추해보게 되는 책이었다. 솔직히 엄마가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하셨는지,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마음 졸이며 하루하루 분투하셨는지를 알고 있었음에도 늘 엄마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생각한 사랑은 '부족함 없이 지원해주는 것'보다도 '힘들 때 옆에 있어주는 것' 혹은 '아무도 내 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조차 내 편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과 같은 정서적인 것이었다. 우리 엄마는 그런 면에서는 솔직히, 나를 사랑해주시지 못했다.
이유남 교장 선생님의 반성을 읽으며, 자꾸 엄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딸이 초등학교 받아쓰기 시험에서 30점을 맞아온 다음부터 받아쓰기 시험 전날 밤새 딸을 혼내며 연습시켜 80점을 받아오게 한 일화, 그리고 80점을 받은 딸이 엄마에게 칭찬받고 싶어 자랑을 했음에도 '그게 뭐 그리 높은 점수냐'고 딸을 깎아내렸던 일화는 눈물이 나서 잘 읽을 수도 없었다. 딸이 왕따를 당했을 때 옆에 있어주지 못했다는 이유남 선생님의 회한을 보면서는, 초등학교 3학년에 전학을 간 내가 화장실 거울과 벽에 온통 빨간 글씨로 'XXX 죽어'라고 도배되어 있는 것을 보고 집에 온 날 - 엄마가 '애들이 그럴 수도 있지, 너가 친구들한테 더 살갑게 해'라고 대답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 반성문'의 마지막은, 저자가 코칭 기법을 배우면서 아이들을 다른 마음가짐으로 대하기 시작한 이후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희망적 묘사들로 끝이 났다. 실제로 이유남 선생님이 얼마나 마음을 다잡고 노력하셨는지가 글 곳곳에 묻어나서 마음이 아렸다. 전교 1등, 2등을 다투던 딸과 아들이 동시에 자퇴를 선언했을 때의 하늘이 노래지는 충격을, 자신이 반성하고 변화하는 계기로 삼으신 것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의 아픔은 딸과 아들을 종종 찌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씁쓸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청소년기를 생각하면 자꾸만 눈물이 난다. 다음날 학교를 가야하는데도 새벽 네다섯시까지 강박증에 시달리던 내 모습, 기숙사 학교에서 주중에 내내 긴장한 채 지내다가 주말에 집에 와서는 부모님의 타박을 듣던 내 모습, 강박증이 심해져 신경정신과에 찾아가봐야 겠다고 스스로 판단을 내리기까지 그 누구로부터도 제대로 된 조언을 듣지 못했던 그 여중생의 모습이 불쌍하다. 물론 우리 엄마아빠도 어려운 형편에 내 학비를 대시느라, 본인들의 삶을 영위하느라 하루하루 힘겹게 버텨내셔야 했지만 - 그럼에도 나는 그 때 내 옆에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 원망스럽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의 나라도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그 아이를 위로해주고 싶다.
책을 덮고, 어쩌면 이 책은 읽지 않는 편이 좋았을 뻔했다고 생각했다. 괜시리 아직도 그다지 변하지 않은 우리 엄마가 미워지기만 했다. 내가 예전에 이렇게 상처받았었다고 말을 꺼내면, '과거 얘기 하는 사람은 재수 없다'며 말을 끊어버리는 엄마가 그 날따라 유독 미웠다. 언젠가는 엄마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엄마가 내게 상처줬던 것보다, 엄마의 젊은 날을 나를 위해 희생했던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잘 모르겠다.
동시에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기도 했다. 엄마에 대한 미움이 올라올 때마다 늘 '나는 엄마 같은 엄마는 절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빠는 요즘에도 자꾸 '네가 대학을 간 건 너희 엄마 덕분이다, 솔직히 네 엄마처럼 희생적인 엄마가 어딨냐'고 말씀하시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일절 대꾸하지 않는다. 내가 원한 건 엄마의 희생이 아니었다. 나 때문에 청춘을 잃어버린 엄마도 불쌍하지만,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다 본인 인생의 자랑거리로 바라보는 엄마 옆에서 따뜻한 보살핌 없이 자라나야 했던 내가 더 불쌍하다. 그렇기에 늘 자식을 낳는다면, 내 잣대에서 아이가 원하는 것을 평가하지 말고 그 아이의 존재 자체를 사랑해줄 것이라고 다짐해왔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일이 생각보다도 더 힘든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머릿속으로는 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으니까, 서툴었고 부족했던 거라는 것을.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자꾸 '그래도 그렇지'라는 마음이 더 커진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 어리고 연약한 아이에게 그리도 모질었을 수가 있어. 나를 진짜로 사랑한 게 맞다면, 그렇게 잔인하지는 못했을 거야. 온전히 엄마와 화해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최상이겠지만, 그런 날이 올 거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저 엄마아빠로부터 독립하고 나서, 간간이 두 분을 찾아뵙고 웃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글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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