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선한 취지로 탄생한 1퍼센트법, 그 현실은?
망치질을 하는 사람의 옆모습, 빨간 사각 틀을 사이에 두고 손끝을 맞대고 있는 두 명의 사람들, 그리고 여러 단면이 중첩된 거대한 인물상. 각각 광화문 근처의 흥국생명 빌딩, MBC상암 신사옥,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에 설치된 조형물들이다. 서울에 산다면 누구나 알법한 이 조형물들은 거대한 규모 덕에 눈여겨보지 않아도 눈에 잘 띄지만 이밖에도 우리 주변에는 크고 작은 조형물이 셀 수 없이 많다.
빌딩숲 사이를 걷다 보면 건물들마다 크고 작은 조형물이 하나씩 들어앉아 있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그냥 건물주가 미술을 좋아하겠거니 생각하고 넘어가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 뒤에는 1995년부터 시행된 일명 ‘1퍼센트법’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9조 (건축물에 대한 미술작품의 설치 등)
①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종류 또는 규모 이상의 건축물을 건축하려는 자(이하 "건축주"라 한다)는 건축 비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회화ㆍ조각ㆍ공예 등 미술작품의 설치에 사용하여야 한다.
② 건축주(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제외한다)는 제1항에 따라 건축 비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미술작품의 설치에 사용하는 대신에 제16조에 따른 문화예술진흥기금에 출연할 수 있다.
③제1항 또는 제2항에 따라 미술작품의 설치 또는 문화예술진흥기금에 출연하는 금액은 건축비용의 100분의 1 이하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④ 제1항에 따른 미술작품의 설치 절차 및 방법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정리하자면, 1만 제곱미터 이상의 건축물을 지으면 공사비의 1퍼센트에 해당하는 금액을 미술작품 제작 및 설치에 할애하거나 문화예술진흥기금에 출연하도록 하는 법이다.
그러나 법이라고 해서 항상 잡음 없이 잘 지켜지는 것만은 아니다. 건물주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어마어마한 건축비의 1퍼센트나 되는 비용을 들여가면서 ‘쓸모없는’ 조형물을 만드는 것이 아까울 법도 하다. 그래서인지 한 지역에서는 작가가 작품 제작비용의 절반을 건물주에게 돌려주는 것이 관행이란다.
그리고 작가와 건물주 사이를 연결해 주는 중개자가 수수료처럼 건축비를 떼어 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1퍼센트법을 아는 이들이라면 익숙한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공공조형물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보다 부정적인 인식이 더 앞서고 있는 것은 비단 1퍼센트법 때문만은 아니다.
누구나 지역 특색을 살린다는 목적으로 설치된 온갖 조형물들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자체에서 설치한 조형물들은 미적 경험을 안겨주는 예술품보다는 그저 과시용의 장식물로 여겨졌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시민들의 부정적인 감상평은 결국 ‘우리 세금을 왜 낭비하느냐’, ‘저게 얼마라고? 돈 아깝게…’라는 식의 결론으로 맺어졌다.
그랬기 때문에 도시에 위치한 공공 조형물은 그 자체만으로 자리차지, 세금낭비와 같은 부정적인 인식을 뒤집어쓰게 됐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세금으로 설치되지 않은 조형물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조형물이 누구의 돈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떠나서 그 자체만으로 좋은 인상을 준다면 불평과 비판의 소리들은 당연히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왜 수많은 시민들은 도심 속의 조형물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는 것일까? 아마 주변 환경의 부조화가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주변의 분위기와 조화되지 않는 조형물은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흐리게 만들고, 결국 없느니만 못한 것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조형물의 설치 과정의 모든 단계에 대한 방임은 이러한 문제의 시발점이 될 수밖에 없다. 작품의 의미가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지는지 등에 대한 검토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최대한 빠르고 저렴하게 설치를 끝내려 하는 현 상황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조형물 설치가 건축주들에게는 그저 귀찮은 숙제가 되어 버렸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형물 설치 과정에는 지자체의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 각 지역의 문화기구에서 건축물들의 특성을 검토한 뒤 예산 심의, 주변 환경과의 조화에 대한 시민 대표와의 논의 등의 과정을 거쳐 적정한 조형물을 선정하는 등의 체계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공공의 미술을 위해 힘써야 하는 책임감을 의무화한 이상, 지역사회는 그 과정과 항상 함께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 작품들의 취지다. 공공조형물은 결국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모두가 만족할 만한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그 지향점에 최대한 가까워지기 위한 고민의 과정만큼은 반드시 중시되어야 한다.
도심 속 설치미술은 결코 쉽게 생각할 것이 아니다. 하물며 몇 달에 거쳐 진행되는 전시회도 길고 긴 시간의 기획 과정을 거치는데, 한 번 설치되면 철거가 어려운 조형물이라면 어떻겠는가.
글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유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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