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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Nov 30. 2019

음미하지 않는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 카페 소사이어티

음미해버린 인생과 음미하는 인생 그 중간 쯤


*

영화 속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늘 후회에 관해 이야기한다.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 드는 오늘 하루의 아쉬움, 몇 년 전의 일들, 노인이 되어 가장 후회하는 것 들. 후회는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매 순간 매 초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 위에서 벌거벗겨진다. 당장 씻고 준비함에 있어서도 이를 먼저 닦고 머리를 감을지, 머리를 감고 이를 닦을지 따위의 소소한 선택마저 얼마 뒤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들은 그것을 꽤나 잘 알고 있다. 인생이 어려운 것은 이러한 선택지가 너무나 많아서일까?


양보하고 또 양보해서 인생에 단 두 가지의 선택지만 존재한다 가정해보자. 그럼에도 사람들은 후회할 것이다. 후회는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라 하지 않았는가, 선택지가 제아무리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하더라도 선택 받지 못한 또 다른 길은 영원히 알 수 없어진다. 그 알 수 없음이, 그 미지의 세계가 불쑥불쑥 들이닥쳐 ‘혹시나’하는 생각에 불을 지핀다. 불의 크기의 차이만 있을 뿐.

 

 

<카페 소사이어티>는 후회와 미련에 관한 영화이다. <카페 소사이어티>의 감독은 우디 앨런으로 입양한 딸을 성추행 했다는 논란으로 말이 많은 감독이다. 그 뿐 아니라 지금의 아내인 순이는 전처가 입양하여 우디 앨런과 부녀관계였다는 사생활은 늘 화젯거리에 오르곤 했다. 또한 이 영화의 내용 전반에 걸친 사랑 이야기가 ‘불륜’을 다루고 그것을 아름답게 미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불쾌감을 느끼는 듯 하다. 다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작품 내부와 외부의 도덕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이 글에서만큼은 작품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만 논해보려 한다.

 

평범한 뉴욕 남자 ‘바비’는 성공을 꿈꾸며 할리우드로 입성한다. 잘나가는 연예계 관련 회사를 운영하는 삼촌 필 덕분에 그는 비록 잡일이지만 자리를 잡아간다. 그러던 와중 필의 비서인 ‘보니’를 만나고 화려함의 끝인 할리우드에서 허영과 사치에 물들지 않은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버린다.

 

그러나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바비는 잠시 포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남자친구에게 차였다는 말을 듣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보여준다. 그런 한결 같은 모습에 보니도 마음을 열고 둘은 만나게 되며 함께 뉴욕으로 떠날 계획을 세운다.

 

 

행복함도 잠시, 아내와 헤어지지 못하겠다며 떠났던 보니의 유부남 전남자친구가 이혼하겠다는 마음을 굳히며 다시 돌아오게 되고 바비는 그가 바로 자신의 삼촌 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보니는 필을 선택하게 되고 바비는 홀로 뉴욕으로 돌아온다.

 

그 이후 형의 나이트 클럽이 점점 커져 입 소문이 나게 되며 바비의 입지도 커져감에 따라 그 또한 인연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 사업차 뉴욕에 방문한 필과 보니 부부를 마주치게 된다.

 

영화 속 바비와 보니는 결국 이어지지 못한 엇갈린 인연이었다. 수 많았던 인연의 갈림길에서 각자는 각자의 선택을 내리고 그 결과 둘은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며 맺어지지 못했다.

 

 

본디 가장 애절하고 잊지 못할 세기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라 했다.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은 아닌가 보다. 이런 아련함과 향수는 영화 내내 흩뿌려져 있다. 아마 영화의 배경이 다른 시대였다면 재미가 덜 했을 것이다. 더 옛날은 향수를 느끼기엔 너무 먼 고리타분한 시대이고 더 가까이는 너무 익숙하고 밋밋하다. 딱 1930년대의 뉴욕과 할리우드, 우리들이 직접 살아보진 못했지만 접해 본 자유와 화려함이 극치인 시대. 그에 따뜻한 노란 빛 색감을 입혀 어딘지 몽글몽글한 아련함을 화면을 통해 보여준다.

 

“어떤 감정은 평생 잊혀지지 않는가 봐요”

 

둘은 다시 만나서도 서로를 향한 마음이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비록 서로의 배우자에 대한 마지막 양심 때문인지 더욱 깊은 관계로 발전하진 않지만 서로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 그리고 연민이 뒤섞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아련함은 이 두 사람이 진짜 인연이라 그런 것일까? 뒤틀리고 가혹한 운명의 장난질에 놀아난 연인이라 그랬던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바비와 보니가 결혼을 했더라면 보니는 필에게 이러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가보지 못한 길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절절하게 원했던 것이라도 손에 넣은 뒤까지 절실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그제서야 당시에는 보이지 않던 다른 선택지가 눈에 밟힌다. 내가 저걸 선택했더라면, 어쩌면 나와 더 잘 맞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불쑥 밀고 들어온다.

 

 

그렇지만 아쉬움은 아쉬움일 뿐 그들 자신이 이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다. 영화 속에서 바비의 아내가 바비가 그의 전 여자친구와 바람 피는 꿈을 꿨다고 말하자 바비는 ‘꿈은 꿈일 뿐이야’라고 말한다. 그 말은 마치 스스로에게 말하는 듯 하다. 지금의 감정은 꿈 같은 것이고, 꿈은 현실이 아닌 꿈일 뿐이라고 말이다.

 

때로는 이런 사실만 잘 알고 있다면 이런 꿈들은 우리의 삶에 활력을 넣어주기도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꿈꾸는 듯한 눈빛을 한 두 사람을 마지막으로 끝난다. 파티 속에 있지만 그들의 눈빛은 다른 곳을 꿈꾸고 있고 그것은 지루한 현실을 버티게 해주는 활력이 되어준다.

 

 

“음미하지 않는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 근데 음미해버린 인생은 딱히 매력이 없지”

 

서로의 배우자는 이미 음미해버린 인생이지만 서로에게 서로는 여전히 열심히 음미 중인 인생이다. 살 가치가 없는 인생이 아닌 아름다움을 만들어 주는 것은 어쩌면 환상 같은 꿈의 음미일 것이다. 서로에게 이미 사랑의 의미이기 보다는 자신의 매력 있는 삶을 위한 음미 정도의 이용가치를 지닌 지도 모르겠다. 다시 만났을 때 서로를 사랑에 빠지게 했던 모습은 모두 사라지고 정 반대의 사람만 남아있었음에도 그들이 또 다시 ‘사랑’을 느낀 건 이런 이유였을까. 아마 음미하던 껌의 단물이 다 빠질 때쯤이면 음미하고 곱씹을 또 다른 껌을 찾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에 곱씹는 꿈 하나쯤은 품고 살아간다. 이들의 목적은 길게 음미할 수 있는 것이기에 이룰 수 있는 꿈보다는 영원히 이룰 수 없던 꿈이 더 적합해 보인다. 영원히 이루지 못할 꿈, 평생을 아쉽고 또 아련할 그 꿈 덕분에 지루한 삶 속에서 꿈꾸는 눈을 할 수 있다면 그런 꿈도 허상이 아닌 의미를 가질 것이다. 때로는 고통스럽겠지만 그 때마다 이 사실을 떠올리자. 우리는 지금 인생을 음미하고 있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글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김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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