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오디션의 흥행과 시장의 확장
최근 지하철역에서 보기 드문 광경을 목격했다. 지하철 광고판에 트로트 가수가 등장한 모습이었다. 그동안 아이돌 가수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지하철 광고판에 임영웅, 이찬원과 같은 트로트 가수가 등장했다. '미스트롯'부터 이어진 '미스터트롯'의 높은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트로트 가수가 지하철 광고까지 등장한 데에는 홍보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경연 프로그램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트로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시장이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스트롯'은 최고 시청률 18.1%를 기록하였고, 뒤이어 '미스터트롯'은 32.7%까지 기록했다. 프로그램의 인기의 힘입어 트로트 시장은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트로트의 높은 인기는 프로그램 밖의 다양한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장년층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지던 트로트는 멋지게 변신해 뉴미디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미스터트롯'의 공연 클립들은 공식 계정을 통해 업로드되었고, 특히 '보랏빛 엽서'의 경우 하루 만에 80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미스터트롯'의 시청자들은 유튜브 영상에 활발하게 댓글과 좋아요를 누르고 좋아하는 가수를 응원했다.
'미스터트롯'의 공연도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방송 이후 예정된 '내일은 미스터트롯' 서울 콘서트는 예매 오픈 전 좌석인 2만 석이 10분 만에 전부 매진되었다. 또한, 프로그램 이후의 음원, MD까지 다양한 상품이 인기를 끌며 트로트 시장의 확장 가능성 또한 보여주었다. 이처럼 트로트의 인기는 방송 프로그램 밖으로 점차 커지고 있었다.
'미스트롯'과 송가인의 흥행은 '원 히트 원더'가 아니었다. '미스터트롯'의 성공은 트로트 오디션 포맷의 지속 가능성을 보여줬다. TV조선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이후로 흥행 가능성을 확인한 타 방송사들도 '나는 트로트 가수다', '트로트 퀸' 등의 경연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트로트 스타에게도 팬덤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미스트롯' 이후 송가인 현상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점은 팬덤 활동이었다. 송가인의 팬덤은 큰 규모의 활동이 이루어지며, 장년층들은 신세대적 팬덤 활동에 참여했다. 팬덤 전용 컬러와 단체복을 맞추기도 하며, 멜론 사용 방법을 매워 스밍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현상은 '미스트롯'과 송가인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미스터트롯'의 지하철 광고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트로트 가수들의 활동에는 팬덤 활동이 동반되기 시작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가수들에게 팬덤이 모이고, 가수는 그들과 함께 활동했다. 이러한 스타시스템은 이전의 트로트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 '미스트롯' 이후로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2000년대 이후로 트로트는 과거의 음악이자 장년층의 전유물이었다. 이런 트로트가 어떻게 부활할 수 있었을까?
과거의 트로트는 명실상부한 대중음악이었다. 1930년 일제강점기에 일본 엔카의 영향을 받은 트로트는 1970년대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긴 시간 동안 대중음악의 중심에 있었던 트로트는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며 대중들의 정서를 반영했고, 깊은 서정성과 함께 한국의 정체성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의 트로트는 대중성을 점차 잃어갔다. 1970년대의 포크음악이 유행하기 시작하고, 이후 유재하,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트로트는 발라드와 댄스음악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가요 프로그램에서 트로트가 등장하는 빈도는 점점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대중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게다가 음악산업의 변화로 인해 트로트는 대중들과 더욱 멀어졌다. LP와 CD 판매 중심의 음반시장이 디지털 스트리밍으로 건너가면서, 트로트는 기술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2017년대까지는 스트리밍 전체 음악 감상 비중에서 1% 정도밖에 차지하지 못했고, SNS에서도 트로트 관련 콘텐츠의 비중이 전체에서 0.5%에 불과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며 대중가요의 청중들은 다음 세대로 교체되었다.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주요 연령층은 트로트를 접하기 어려웠던 밀레니얼 세대로 바뀌었고, 트로트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점 희미해졌다. 결국 트로트는 전통가요, 트로트, 성인가요, 뽕짝 등의 장르 구분이 희미해졌고, 대중들의 인식 속에 고속도로 성인가요 테이프 정도로 남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로트는 계속 변화했다. 2000년대 이후의 트로트는 '세미트로트'라는 장르를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댄스 음악과 EDM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사운드를 시도했으며, 장윤정의 '어머나', 박현빈의 '샤방샤방',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 등의 히트곡은 변화하는 대중들의 취향에 맞추어 트로트의 명맥을 이어갔다.
트로트는 음악적 변화뿐만 아니라, 새로운 미디어에도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애란의 '백세 인생'의 경우 인터넷 밈이 되어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했고, 김연자의 '아모르파티'는 SNS상에서 퍼지며 차트 역주행 현상을 만들었다. 이러한 계기는 젊은 층의 트로트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이고 친숙하게 만들 수 있었다.
트로트 시장은 분명히 매력적인 시장이었다. 트로트의 4대 천왕이라고 불리는 전설적인 가수들의 콘서트는 2020년에도 꾸준히 개최되고 있었다. 게다가, 장년층의 소비력을 통한 시장의 잠재력은 트로트를 블루오션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게 했다. 이러한 트로트 시장은 새로운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19년, 트로트는 '미스트롯'을 통해 소위 대박을 터트렸다. "음악시장은 '미스트롯' 전과 후로 나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스트롯'은 트로트뿐만 아닌 음악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미스트롯'은 '가요무대', '전국 노래자랑'이 전부였던 음악프로그램에 새로운 포맷을 제시했다. 또한, 송가인이라는 초대형 스타를 탄생시켜 스타시스템의 가능성을 확인시켰고, 장년층의 수요를 단번에 끌어올리고 팬덤 문화까지 정착시켰다.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이 이러한 기회를 잡아 트로트를 부활시켰던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 서바이벌 오디션 포맷의 긍정적인 효과였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동안 대중음악시장의 개척에 있어서 '큰 손'의 역할을 수행했다. 대표적인 서바이벌 오디션인 '케이팝 스타'는 아마추어 아티스트들이 프로 아티스트로 데뷔할 기회를 제공했다. 또한, '쇼미 더 머니'는 폐쇄적이었던 힙합씬을 대중들에게 소개하며 다양한 힙합 아티스트들의 이름을 알릴 기회가 되었다. 게다가 '팬텀 싱어'는 대중에게 생소했던 크로스오버 음악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며, 비주류 장르의 시장 개척 기회를 만들었다.
'미스트롯' 또한 장르와 스타를 동시에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진선미의 순위를 두고 무대로 겨루는 서바이벌 오디션 포맷은 음악과 참가자들을 동시에 조명할 수 있었다. 송가인은 7년간의 무명시절을 겪었지만, '미스트롯'을 통해 트로트 스타로 급부상할 수 있었다. 또한, 송가인이 부른 노래들은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미스터트롯' 또한 조명받지 못하던 아티스트들에게 기회가 되었다. 임영웅은 발라드 가수를 거쳐 트로트 활동을 하면서 '미스터트롯'을 통해 가장 큰 관심을 받기도 했다.
다음으로, 변화한 장년층의 미디어 이용 방식이 트로트의 부활을 도왔다. 장년층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점차 증가하고, SNS와 뉴미디어의 활용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장년층은 디지털 콘텐츠의 새로운 수요로 떠올랐다. 2016년 중장년층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93.6%에 달했다. 또한, 중장년층의 스마트폰 활용 능력도 향상되어 스마트폰 미디어 활용이 본격화되었다. 와이즈앱에 따르면, 50대 이상의 유튜브 사용자와 사용 시간이 모두 증가해 2018년 대비 2019년의 사용자는 24%로, 시청 시간은 78% 급증했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으로 장년층은 디지털 환경에서도 자연스럽게 트로트를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TV에서 방영된 '미스터트롯'의 무대는 유튜브에서 하이라이트 클립으로 업로드되었다. 또한, 네이버 밴드와 같은 SNS를 통해 가수들의 팬클럽이 형성되고, 팬 활동이 이루어졌다. 게다가 장년층은 스마트폰 환경에 익숙해져 멜론을 이용한 '스밍'도 새롭게 배워 팬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트로트는 중장년층과 젊은 세대 모두에게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기존 트로트를 향유하던 장년층은 젊은 감각을 가진 포맷에 새로운 매력을 느꼈다. '미스터트롯'은 10대부터 40대까지의 다양한 연령대의 참가자가 등장했고, 2030 방청객들을 자주 화면에 비추었다. 또한, 패널은 중장년층에게 인기가 많은 연예인들보다는 젊은 층에게 익숙한 사람들로 구성해 젊은 느낌을 강조했다. 이러한 젊은 감각의 프로그램은 기존 트로트에서 느낄 수 없었던 에너지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젊은 층들 또한 트로트의 새로운 모습을 접했다. 이전까지 전통가요, 트로트, 성인가요의 구분이 불분명했던 젊은 세대들에게 트로트는 뽕짝이나 흥이 넘치는 전통 음악 정도로 인식되곤 했다. 하지만 송가인의 '한 많은 대동강', 임영웅의 '보랏빛 엽서'를 통해 서정성 짙은 트로트의 모습이 방영되었고, 이러한 무대는 젊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트로트는 새로운 매력이 가득했다. 이러한 영향 덕에 '내일은 미스터트롯' 콘서트의 예매자 중 40% 이상이 20대일 정도로 젊은 층에 큰 인기를 얻었다.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은 서바이벌 오디션 포맷을 활용해 장년층과 젊은 층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장년층은 늘어난 스마트폰 활용능력을 기반으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팬덤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트로트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블루오션을 개척했다. 특정 세대에 한정된 장르를 벗어났고,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도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과거 어두웠던 트로트 시장은 새로운 부활의 기회를 얻었다.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다양한 콘텐츠들이 등장하고 있다. '놀면 뭐 하니'의 유산슬은 트로트의 인기에 힘입어 등장했다. 또한, 올해 3월에는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의 출연진들이 등장하는 국내 최초 트로트 뮤지컬인 '트롯연가'의 공연이 예정되어있다.
트로트 시장의 기회는 이제 시작이다. 탄탄한 관리와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트로트는 '미스터트롯' 이후로도 지금의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트로트의 인기가 지속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트로트를 향유하고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