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수, 이노우에 코지 사진전
사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서 사진전을 자주 찾진 않는데, 서학동 사진관에서 괜찮은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고 해서 다녀왔다.
‘그들이 있던 시간’은 한국의 한영수 작가(1933-1999)와 일본의 이노우에 코지 작가(1919-1993)의 공동사진전이다. 공동사진전이라고 하면 두 작가가 함께 기획한 사진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두 작가는 생전에 만난 적도, 서로의 작품을 본 적도 없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 한영수 작가의 딸인 한선정 씨와 이노우에 코지 작가의 아들인 이노우에 하지메 씨가 우연히 서로의 아버지의 사진을 접하게 되고, 두 작가의 사진 속 공통점을 발견한 그들이 함께 이 사진전을 기획했다.
두 작가는 같은 시기(1950~60년대)의 한국과 일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 사람이 찍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겹쳐지는 두 작가의 사진들 속에서 우리는 전쟁 후 혼란한 시기에도 이어지는 하루하루의 생활을 발견한다. 그 시절의 한국과 일본에서의 시민들의 삶의 모습이 비슷한 것도 신기하지만, 사실 두 작가의 가장 의미 있는 공통점은 ‘시선’에 있다. 고달픈 삶의 모습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을 담백하게 담아내는 것은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로서 하기 쉬운 작업은 아니었을 것이다.
예술의 기능 중 하나는 ‘기록’이다. 우리는 과거의 문학과 미술작품을 보고 그 시기의 사회적 분위기와 중요시했던 가치 등을 찾아낸다. 큰 역사적 사건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두 작가의 사진처럼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도 기록으로서의 큰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두 작가의 자녀들이 그들의 아버지의 작품의 가치를 보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훌륭한 기획전시라고 생각한다.
마침 내가 방문했던 날에 한영수 작가의 딸인 한선정(한영수문화재단 대표)씨의 인터뷰가 있어서 사진전을 기획하게 된 이야기와 한영수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동시대 아시아 사진작가들에 대한 관심도가 낮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이 사진전을 기획한 의도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주류(mainstream)가 아닌 이상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기보다는 나서서 알리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데, 그런 의미에서 가치를 아는 사람들만이 가치 있는 것을 보존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이번 사진전의 기획 의도가 한영수 작가와 이노우에 코지 작가의 사진 속 공통점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각 작가의 사진의 특징을 알기는 힘들었다는 것이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었지만, 기획의도에 충실한 전시와 그로 인해 느낄 수 있었던 뚜렷한 목적과 의미만으로도 훌륭한 사진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