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을 주는 스타일을 찾아서_13
현재의 트렌드는 과거의 패션 유산과 직간접적인 영향 아래 있습니다. 트렌드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흐름이 과거와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패션 트렌드 사이클의 흐름과는 다르게 빠르게 나타나고, 사리지는 마이크로 트렌드도 많이 생깁니다. 한편에서는 과거의 패션 아이템 또는 스타일을 복각하여 즐기고자 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레트로'라는 용어는 이제 너무 익숙한 트렌드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80년대, 90년대 등 반복적으로 과거의 문화를 가져와 지금에 맞게 소비자에게 제안합니다. 이러한 제안은 소비자의 감성적 니즈와도 맞기 때문이겠죠!
과거의 패션 유산을 시기별로 다시 조명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1990년대 패션 유산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복고와 혁명의 시대
1990년대의 패션 문화는 '복고와 혁명'의 시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로 상반된 개념의 패션이 충돌하고 절충하면서 패션이 소비되었다고 합니다. 베르사체, 뮤글레와 같은 글래머스한 인공미 그리고, 이에 맞춰진 슈퍼모델이 등장하는가 하면, 한편에선 마크 제이콥스, 안나 수이와 같은 그런지 스타일이 부상하였다. 1990년대 패션쇼는 마치 록 콘서트를 연상케 할 정도로 활기가 넘치고 자극적이었습니다. 이 당시 패션쇼는 소수의 전문가 집단에서 보이는 쇼를 넘어서 대중문화의 하나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모델 기획사들은 글래머스하고 환상적인 몸매의 몇몇 슈퍼모델을 통해 패션을 대중화된 이벤트로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주도한 다섯 명의 모델이 있었는데, 린다 에반젤리스타, 크리스티 털링턴, 신디 크로퍼드, 클라우디아 쉬퍼, 나오미 캠벨이다. 한편 미국에서는 이러한 글래머스하고 자극적인 모델의 사용을 극대화한 브랜드로 빅토리아 시크릿을 들 수 있다. 이 브랜드는 1995년부터 패션쇼를 통해 '자신감 있고 당당한 여성의 이미지'를 란제리 아이템으로 선 보이면서 급성장하였다.
커트 코베인은 얼터네이티브 록을 대표하는 너바나의 리더이면서, 그런지 룩을 대표하는 팝 아티스트로서 영향을 주었다. 그는 지저분한 헤어 스타일과 중고 가게에서 구입한 듯한 너저분한 패션 스타일은 반항스러운 모습만큼이나 패션에 개의치 않는 태도처럼 보였다.
쿨 브리태니아
90년대는 전통적인 프랑스, 이태리 패션 문화에 맞서 영국에서는 '쿨 브리태니아'를 외치며 혁신을 도모하였다. 쿨 브리태니아는 1990년대 활기찬 영국 문화를 말하는 것으로, 1960년대 비틀스가 미국으로 진출했을 당시의 거대한 변화와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파이스 걸즈, 오아시스, 블러' 등 지금도 이야기되고 있는 영국 팝 그룹들이 바로 90년대 등장하여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이 당시 영국은 7,80년대 우울했던 시기를 거친 후 1997년 토니 블레어의 총리 당선으로 젊은 영국으로 변화하였다. 패션에서는 런던 패션 위크를 통해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신진 디자이너들을 육성하고 선 보였다. 교육에서는 CSM(센트럴 세인트 마틴)과 RCA(로열 컬리지 오브 아트)를 통해 젊고 유능한 디자이너들을 배출하였다. CSM 출신으로는 스텔라 매카트니, 매튜 윌리암스, 알랙산더 맥퀸, 존 갈리아노 등이 있었다.
영국의 패션은 당당하고 상업에 굴복하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끊이지 않는다
- 알랙산더 맥퀸 -
1990년대 패션 위크의 중심지는 파리였지만, 주요 디자이너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은 상당수 영국 출신 디자이너 몫이었다. 존 갈리아노는 지방시(1995~1996년)와 디올(1996년~2010년), 알렉산더 맥퀸은 지방시(1997~2001년), 스텔라 맥카트니는 끌로에(1997~2001년) 등을 각각 이끌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까지 유명한 패션 브랜드들은 경쟁적으로 영국 출신 디자이너들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하려고 힘썼다. 이러한 흐름은 1990년대 새로운 환경 앞에서 과거의 관습적인 디자인의 접근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는 판단으로, 패션 브랜드들은 영국 출신 디자이너들을 통해 좀 더 신선하고 창의적인 디자인 접목을 시도했던 시기였다.
1990년대 프라다는 이태리 패션 브랜드의 부상을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과거 빈티지에 대한 감성을 이해하였고, 여기에 미니멀리즘으로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였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프라다가 올려놓은 성과는 모더니티가 다른 원천에서도 올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조합
이태리 패션 하우스에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변화를 시도하였다. 구찌는 미국인 톰 포드를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하였다. 그가 90년대 구찌에서 보여 준 이미지는 파격적이었다. 앞서 언급한 글래머스한 이미지를 추구하였던 베르사체, 뮤글레와는 다르게 도발적이었고, 좀 더 자극적이었다. 톰 포드의 영입은 전통을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90년대는 파리의 콜레뜨(Colette), 밀라노의 10 꼬르소 꼬모(10 Corso Como), 런던에 오픈한 꼼데가르송의 도버 스트리트 마켓(Dover Street Market) 등 90년대 변화된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준 편집 샵이었다.
힙합이 만들어 놓은 대중화 패션
펑크와 로큰롤의 뒤를 이어 1990년대에는 힙합이 새로운 문화의 주류로 떠올랐다. 힙합은 음악뿐만 아니라 태도와 패션도 지켜야 할 기준들이 만들어졌다. 1990년대에는 레이어드 스포츠 웨어가 점점 더 배기 스타일로 변하면서 위협적이고 거대한 실루엣으로 변했다. 바지를 낮게 입고 속옷의 밴딩이 나오도록 입었다. 커다란 아우터 재킷과 주얼리 등 전체적으로 과장되고 오버 사이즈를 주로 입었다.
힙합 트렌드를 영리하게 비즈니스로 활용한 브랜드는 미국의 타미 힐피거였다. 1994년 스눕 독은 <SNL>에 출연해 ‘Lodi Dodi’를 선보였다. 이때 그가 남긴 가장 큰 인상은 음악뿐만 아니라 그의 의상이었다. 공연 전, 스눕독은 타미 힐피거에게 자신과 그의 팀이 입을 옷을 특별 요청했다. 이 일을 계기로 프레피 룩의 대명사로 여겨지던 타미 힐피거가 ‘쿨한’ 아메리칸 클래식 브랜드로 새롭게 자리 잡게 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이 <SNL> 공연 당시의 셔츠는 매우 희귀한 컬렉팅 아이템으로 남아 있다.
90년대 힙합은 트렌드의 중심이었다. 야구모자, 스포츠웨어, 레이어링, 신발 등 대중들은 힙합 씬에서 시작된 아이템과 특정 브랜드를 찾았다.
스포츠웨어는 힙합과 만나서 캐주얼하게 레이어드 되었다. 주목받았던 브랜드로는 타미 힐피거, 폴로 랄프 로렌, 푸부(FUBU), 보스 진(BOSS JEANS) 등이 있었다.
패션 산업으로 발전된 힙합
90년대 힙합 패션 중 주목할 것은 패션 산업으로 발전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1980년대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힙합 뮤지션과 협업을 통해 상업적으로 활용되었지만, 90년대가 주목받는 이유는 힙합 뮤지션들이 스스로 브랜드를 론칭하고 비즈니스로 성장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미주 지역의 젊은 아프리칸 흑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힙합의 미학을 새롭게 써 내려갔고, 이를 비즈니스로 성장시켰다. 대표적으로 데이몬드(Daymond John)의 후부(Fubu), 러 셀 시몬(Russell Simmon)의 팻 팜(Phat Farm)은 이 시기 대표적인 디자이너 힙합 브랜드로 힙합 음악을 통한 마케팅과 미디어 기술을 이용하여 성장하였다.
SPA 브랜드의 시작
1990년대는 갭, H&M, 톱숍(TOP SHOP), 유니클로, 자라 등 다국적 SPA 브랜드들 트렌드 한 디자인의 저렴한 가격의 옷들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시장에 내놓은 시기였다. 이들 SPA 브랜드들은 2000년대 급부상한 패스트패션의 틀을 90년대 이미 구축해 놓았다. 패스트패션은 디자이너의 역할과 소비자의 의류 구매 내용을 바꾸어 놓은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패션쇼에 나오는 디자인을 제3세계의 값싼 노동력과 대량 생산으로 저렴하고 빠르게 내놓은 패스트패션의 시스템은 소비자의 구매 사이클을 단축시키고, 옷에 대한 개념도 바꾸어 놓았다. 소비자들은 값싼 SPA 제품 앞에서 구매를 위해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고, 1~2 시즌 입고 버리는 방식을 택했다. 이로 인해 윤리적인 문제도 함께 대두되었다.
그렇다면, 90년대 패션유산이 현재의 패션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대표적으로, 90년대 힙합 패션에서 시작한 새깅 패션을 들 수 있겠네요. 새깅룩은 바지를 허리선 아래로 내려 속옷 밴드나 이너웨어를 일부러 드러내는 스트리트·힙합 스타일입니다. 1990년대 미국 힙합 문화에서 시작되어 2000년대 초반 저스틴 비버 같은 팝스타가 즐겨 입으며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2025년 Y2K 열풍과 함께 다시 돌아왔고, 제니·카리나·타잔 등이 무대·화보에서 선보였습니다.
미니멀리즘도 90년대 패션 유산의 산물입니다. 미니멀리즘은 1960년대 추상주의에 반대하여 시작된 미술 사조이지만, 패션 디자인에서는 1990년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최소한의 디자인, 과도한 장식이나 무늬의 배재, 절제된 실루엣과 색채가 특징입니다. 대표적인 디자이너로는 질 샌더, 캘빈 클라인, 프라다 등이 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