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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지협 Feb 24. 2024

짧은 머리카락은 작지만 위험해

커트 가격 할인의 최후

거울에 비친 제법 덥수룩해진 모습을 보더니 미용실을 가야겠다는 신랑. 한 달에 한 번씩 꼭 자르러 가는 편이다. 지난날에 미용실에 다녀오고는 한껏 속상한 감정을 실어 내게 이야기했던 게 기억이 낫다. 


커트비를 무려 5천 원이나 올렸더라~


넓고 쾌적한 시설로 2년 가까이 애용했던 미용실이 2~3천 원도 아닌 무려 5천 원을 갑자기 올렸다니... 믿기지 않은 물가를 체감한 우리는 새로 다닐 미용실을 물색하자고 약속했다. 하루 이틀 만에 신랑은 아주 들뜬 목소리로 내게 희소식을 전했다. "샴푸 안 하고 가면 3천 원을 할인해 주는 곳을 찾았어!"


생각보다 많이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고, 샴푸 안 하는 조건으로 할인도 꽤 많이 되는 셈이라 나쁘지 않았다. 3주가 지나 단번에 커트할 때를 예감한 신랑은 미용실에 다녀오겠다 했는데... 하필 영업시간이 앞당겨진 바람에 그날은 커트를 못하고 왔었다. 


퇴근이 빠른 날을 손꼽아 기다리다 부랴부랴 미용실에 방문하고서 개운한 목소리를 내며 집에 들어왔었다. 하필 나는 미세먼지 없는 날이라 모처럼 청소기를 돌리고 욕실 청소까지 하던 중이었던 터라... 그의 모습은 보지 못했었다. 


'아차!....'  나는 어릴 때 할머니와 엄마가 저렴하게 애용했던 동네 미용실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머리카락은 절대 얕보면 안 되는 존재다. 생각보다 꼭꼭 잘 숨었고 잘 찌르고 질긴 녀석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머리카락의 진실은 매우 두려운 존재인데 나는 신랑이 말할 때까지만 해도 가성비에 눈이 멀어 그 녀석의 실체에 대해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윗도리는 잘 뭉쳐서 빨래 바구니에 넣어두고 얼른 빨리 씻으러 들어가요." 내가 입구에 있는 욕실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랑은 늘 그랬듯이 곧장 안방 욕실로 들어갔는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당일 날 나는 머리카락의 존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지 않았다. 단지 빨리 급한 불을 꺼야만 했다. 


그가 흘리고 갔을지도 모를 머리카락을 찾아 뒤꽁무니 쫓듯이 서둘러 물막대걸레를 꺼내 닦기 시작했다. 그가 욕실에서 나와 휘젓고 다니다 발바닥에 붙기라도 하면... 전쟁의 시작일테니 그전에 처리하자는 심산이었다.


저녁식사를 위한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터라 당장 재료손질에 음식 하기 바쁜 1분 1초였지만 머리카락이 더 중요했다. 역시나... 고슴도치 가시처럼 얇고 새까맣고 뾰족한 머리카락이 붙어있는 물걸레 티슈를 보며 잘 닦았다고 긴급상황은 다행히 지나간 것 같다고 여겼다. 



가격 할인이 쏘아 올린 머리카락 전쟁이었다. 아주 자세히 살펴봐야 보이는 머리카락은 내게 매우 처리하기 힘든 청소 대상의 1호다. 


그는 내가 요리를 제쳐두고 바닥을 다 닦은 후에야 타이밍 좋게 나타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그에게 별말 못하고 바로 주방으로 달려가서 서둘러 밥을 먹기 위한 노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지친 하루의 끝에 머리카락과의 전쟁은 잠시 휴전이었다. 그가 출근하고 나서야 다시 불현듯 떠오른 머리카락의 존재는 나를 다시 숨 가쁘게 했다. 세탁기에 돌리기 전에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서 그가 미용실에 입고 갔을 옷과 내복을 경건한 마음으로 올려두고 돌돌이도 새 용지로 바꿔서 큰맘 먹고 밀어댔다. 



내복을 먼저 밀었는데, 겉옷보다 내복에서 더 많이 나온 걸로 보아 사태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 순간 욕실 흰 욕조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지던 짧은 머리카락들의 행열과 겉옷 내복 심지어 수건까지 아주 팍팍 털어대시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머리카락을 발견하자 나는 그냥 미용실에서 머리 감고 오라는 말을 그에게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하지만 차마 그에게 그렇게 얘기하지 못했다. 말한다고 해서 수긍하고 들을 것 같진 않았다. 그만큼 3천 원의 차이는 제법 큰 셈이다. 나 역시도 1~2천 원이었다면 큰 소리로 내가 지원하겠다고 말할 텐데...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머리 안 감는다고 3천 원이나 빼주잖아! 완전 대박이지? " 


신나서 말하던 그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 거렸다. 매달 갈려지는 머리카락 때문에 미용실에 가서 지출되는 커트 비용은 평소 본인에게만큼은 씀씀이가 인색한 그에게는 매우 아까운 금액일 게 당연했다. 



신랑처럼 짧은 머리를 고수하던 할머니가 내게 전에 "네가 커트만 할 줄 알아도... 네가 잘라주면 참 좋을 텐데..." 하셨던 게 생각났다. 할머니가 내게 했었던 말을 그에게 이야기해 주자 그 역시 매우 격하게 공감했다. 하지만 미용업계의 현실은 그러지 못하지 않은가. 내가 아는 미용학교는 커트뿐만 아니라 염색, 파마까지도 두루 배워야 하는 게 아닌가. 후각이 매우 뛰어난 나로서는 넘사벽의 레벨이었다. 


아무튼 씁쓸한 마음을 안고서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조용히 벌어질 나와 머리카락만의 은밀하고도 치열한 전쟁이 시작됐음은 사실이었다. 3천 원이 뭐라고... 추가 노동이 더 드는 것 같다. 깔끔한 모습으로 변신해 오는 그의 모습 뒤로 숨겨져 들어오는 아주 작고 치명적인 낯선 침입자, 짧은 머리카락과의 만남은 반갑지 않을 테다. 어쩌면 그가 샴푸값 대신으로 아끼는 3천 원은 내가 하는 숨은 심리전의 노동에 대한 대가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샴푸값을 대체할 수 있는 내 노동의 가치에 의미를 부여해 본다 조용히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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