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아닌 원룸살이 4개월 계약
결혼 전, 나는 돈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었다. 집에 돈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부족함 없이 키우려고 물심양면으로 애써주셨던 아버지 덕분에 크게 돈 걱정하지 않고 살았던 터라 나는 지방의 사립대를 겁도 없이 다녔고 아르바이트도 경험 삼아 한 번 해 본 게 다였다. 더구나 직장을 선택할 때도 얼마나 더 벌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보다 해보고 싶은 일에 대한 열망으로 무작정 시작했고 다녔었다. 버는 쪽쪽 밥값이나 택시값, 옷 값으로 나가다 보니 돈이 모일리도 없고 혜택 못 받는 체크카드 한 장으로 주야장천 써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철딱서니 없이 살았구나 싶었다. 요즘 세대들은 피해 보는 일 없이 아주 아무 딱지게 실속 있게 산다고 한 던데 그런 거 보면 나름 젊은 세대 축에 끼면서도 어리석게 살았던 그때 그 시절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결혼 후 나의 가치관이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코딱지만 한 심장이라 여전히 주식에는 발도 들이지 못하고 푼돈살이로 부동산은 들여다보지 못하며 겨우 신혼 때 얻은 전세 보금자리로 만족하며 살고 있는데 하루빨리 집사라는 성화에 시달리고 견뎌내며 아직도 '집을 사야 하나? 언제 사야 하나?' 그런 고민의 지렛대에 놓이곤 한다.
다만 우리 부부는 빚지며 살진 말자는 신념으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이런 생각이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린 불안과 만족 그 사이에서 나름 평점을 맞추고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
모든 일에 장단점이 존재하듯이 우리가 집을 쉽게 살 생각을 하지 않고 쳐다보지 않는 이유도 이와 같다. 어느 세월에 집을 살 수 있을지 장담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집에 대한 생각조차 달랐다. 나는 작은 평수를 원하는 반면 신랑은 큰 평수를 원했고 인프라가 갖춰진 구식의 아파트도 괜찮다 한 반면 신랑은 재테크로도 손색이 없는 잘 지어진 집을 원했다.
대출을 받았다면 우리는 결혼할 때 집을 살 수 있었다.
부동산 매물이 가장 하락가를 쳐서 가장 저렴할 때로 추정되는 우리의 첫 신혼집을 구할 당시 타지에 집을 구하는 게 불안해서 2년만 한 번 살아보자는 심정으로 구했던 전셋집이 이렇게 발목을 잡을 줄이야. 알고 보니 전셋집을 구할 당시가 바로 집을 구입하기에 가장 최적의 시기였었다. 1~2년이 지날 때까지만 해도 속상했던 마음이 컸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나마 자연스레 실수도 상황도 모두 받아들이게 됐다.
대출받아 집을 사도, 내 집이 있는 게 제일이지.
아직도 다 큰 자식의 보금자리가 걱정된 시부모님이 이런 말씀을 종종 하시는데... 큰돈 벌 수 있는 사업가도 아니고 그렇다 해서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숫자가 찍히는 직장인도 아닌 신세인 줄 뻔히 아시면서도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게 이해가 되다가도 서운해지는 게 못난 자식의 마음인가 싶다.
부모님 마음 편하게 해 드리려고 집을 마련하고 자식 낳아볼까 하는 게 과연 행복하고 마냥 옳은 일일까 싶은 사십 대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드는 생각이다. 물론 옛말 틀린 게 없다 싶을 때가 많고 내가 아직 인생 덜 살아서 하는 말이지만 말이다...
남들처럼 생활하기 위해서 주말에도 벌어야 하는 프리랜서에겐 피도 눈물도 없이 매달 날아오는 은행 이자 독촉장은 대출과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가 될 테고 돈을 벌지 않는 상태에서 머무는 집은 감옥이나 마찬가지로 느껴지지 않을까?
우리 원룸에서 시작할까?
이런 말을 신랑에게 한 적이 있었다. 신혼집을 마련할 때 자금 때문에 고민하던 그에게 내가 건넨 말이었다. 힘든 시절을 겪은 만큼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할머니는 사람 됨됨이를 더 중요하다 여기며 내게 늘 해주셨던 말이라서 그녀의 가치관이 나도 모르게 뇌리 속에 박혔던 건지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됐다.
남들 눈이 뭐 그렇게 중요한가? 평수 넓은 아파트보다 옵션 잘 갖춰진 원룸이 더 나은 게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집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 그런지 아님 정말 남들 눈치를 보려 하지 않았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원룸에서 활하는데 원룸이 뭐 그렇게 불편할까?" 싶은 마음은 확실히 들었었다.
오피스텔 원룸에서 머물다.
신랑이 업무상 갑자기 다른 지역에서 머물게 됐다고 했다. 같이 지낼 수 있다길래 냉큼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티끌 모아 태산이랬나. 한 방 가득 채워진 짐들. 미니 이사가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조금씩 3주간 챙긴 짐을 한 차 가득 실고 내려가게 됐다. 냄새나고 퀴퀴한 원룸촌까지 생각했는데 신축 오피스텔에서 생활하게 됐고 우린 결혼 5년 만에 신혼집으로 생각했던 원룸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결혼 5년, 10년 정도 되면 남들은 자기 집 한 채 마련한다지만 우린 원룸 살이를 자처한다. 남들이 봤을 땐 형편이 더 어려워서 저러는구나 싶겠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일주일 정도 살아보니 공간이 정해져 있는 만큼 딱 필요한 만큼의 물건과 식품을 사게 된다는 아주 큰 장점이 있었다.
물론 나는 살림에 진심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짐을 싣고 오는 바람에 두고 온 옷가지와 물품, 식품들로 인해 오십만 원을 들여 일주일간 계속 사고 택배를 까고 들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득 차버린 공간을 바라보며 가끔 다시 비워내기 위해 수시로 생각하고 고민하곤 한다. 이게 바로 공간 다이어트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원룸 생활을 시작하게 됐고, 남들과는 다른 역주행을 도전하게 됐다. 도로 위 역주행은 아주 위험하고 있어서는 안 될 충격적인 일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역주행은 새로운 도전이자 신선한 경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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