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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괴물 Apr 24. 2017

에어비앤비로 유럽 한 달 살기

동유럽 4개국 10명의 호스트,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 프롤로그


휴직을 하고, 한 달 동안 동유럽 4개 나라를 여행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떠나는 목적은 '관광'이 아닌 '여행'이었다. 짜여진 일정 없이 숙소에서부터 마음 가는 대로 시작하는 여행. 그래서 우리는 늘 유명한 관광 명소 보다 그 나라의 골목에 집착했다. 일부러 찾아가기 어려운 곳의 숙소를 예약했고, 그들이 일상에서 먹는 음식을 맛보았다. '낭만부부'의 사명을 걸고, 그렇게 현지인 10명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이 글은 여행의 풍경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그들의 집에 대한 이야기이다. 에어비앤비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 원한다. 




#1. 오스트리아 빈, Theo의 집


대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다들 가는 미국이나 캐나다 말고 유럽으로 교환학생을 가보고 싶었다. 사실 학교나 공부는 뒷전이었고, 주말마다 유럽여행을 다닐 요량으로 말이다. 그래서 실제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교환학생으로 두 학기를 머물면서 정말 많은 곳을 여행했다. 내가 가장 해보고 싶은 '진짜 그곳을 살아보는 여행'을 말이다. 현지 사람들이 자주 가는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그 사람들이 사는 공간에서 자는 것. 그 당시에는 에어비앤비 같은 서비스가 그리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나에게 그것은 그리 어려운 미션이 아니었다. 내가 갔던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 한국 사람이 내가 유일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다른 유럽 국가에서 온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었고 학기 중이나 방학 때면 그 친구들 집에 놀러 가곤 했다. 그래서 그 유럽 현지 친구들의 집에서 같이 자고, 친구의 엄마가 해주신 '집밥'을 먹고, 더불어 골목골목을 여행하며 돌아오곤 했다. 그때의 기억이 참 아련했었는데, 6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에어비앤비'로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Theo의 집에 왔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하철을 갈아타고 역에 내린뒤, 집을 찾아가는 길. 
3일동안 머물렀던 우리의 침실. 오랜 비행시간에 지친 우리에게 포근한 잠자리를 제공했다.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오스트리아 빈의 풍경.


이번 여행의 숙소를 고를 때, 다른 게스트들이 먼저 남겨놓은 후기뿐 아니라 호스트가 직접 작성한 본인의 소개글도 유심히 봤다. 놀러 가는 친구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당연한 일. 우리와 비슷한 또래였던 호스트 Theo는 심리학을 공부한 심리상담사였다. 비교적 저렴한 주택 렌트 가격 덕분에 대학원을 다니며 에어비앤비로 용돈을 벌고 있었다. 반갑게 반겨준 Theo와 이런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여행의 긴장감을 풀 수 있었다. 그는 멀리서 유럽까지 여행 온 젊은 부부가 어떤 것들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몹시 배가 고프다는 것.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레스토랑보다는 가성비가 좋은 로컬 레스토랑의 정보가 필요하다는 것. 현지의 젊은 친구들이 가는 '핫 플레이스'에 대한 팁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오래 이 부부를 잡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의 첫 여행지인 오스트리아 빈에서의 숙소는 성공인 듯싶었다. 


이번 여행 동안 앞으로도 9번의 에어비엔비 예약이 남아있다. 모쪼록 의도했던 그런 생생한 여행이 되길 바랄 뿐이다. 짧은 여행이지만, 그래도 여행은 살아보는 거다.





#2. 헝가리 부다페스트, Dani&Dori의 집


두 번째 우리의 여행지는 내 마음속 가장 로맨틱한 도시, 부다페스트였다. 오스트리아 교환학생 시절 세 번이나 갔다 왔을 정도로 애정이 깊었던 도시. 이 아름다운 부다페스트 현지인에게 이 도시는 어떤 의미일까? 부다페스트의 우리 호스트는 Dani&Dori라는 부부였다. 공대 교수이자 아마추어 테니스 선수인 남편 대니와 경제학자라고 소개한 도리는 정말 귀여운 부부웠다. 에어비앤비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숙소의 설명이나 이름보다 '호스트의 이름'이 메인에 떠있다는 것이다. 그 호스트의 도시에 놀러 가는 듯한 기분이 들도록, 관광지가 아닌 친구의 집에 놀러 가는 것 같은 설렘이 생기도록 말이다. 


이국적인 모습의 부다페스트 주택가.
열심히 집을 찾아 갔더니, 뭔가 영화에서만 보던 그런 대문이 나왔다. 


한 없이 고풍스런 건물들 사이를 지나, 심상치 않은 대문 앞에 멈춰 섰다. 그러고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니 3층에서 데니가 노란 티셔츠를 입고 손을 흔들다. 저기 3층이 바로 우리의 집! 우선 부다페스트의 숙소는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영화 속에서만 보던 장소에서 살아보는 기분이랄까! 이미 유럽 자체가 이국적인 풍경이지만, 이 곳은 그중에서도 최고였을 거다. 게다가 우리를 친절히 맞아주는 부부 또한 마음에 쏙 들었다. 우리가 입구에서 살짝 주춤거렸더니 도니가 웃으며 말했다. "From now on, this is your house!" 이게 에어비엔비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고풍스러운 외관과는 달리 아주 모던하고 깔끔한 인테리어 디자인이 돋보였던 곳. 남편과 꼭 함께 보고 싶었던 세체니 다리의 야경을 보고 나서 돌아온 숙소는 참 따뜻하고 아늑했다. 그렇게 우리는 부다페스트에서 3일을 살아본 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로 떠났다. 


로멘틱한 부다페스트 세체니 다리의 야경.





#3.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Antonija의 집


크로아티아는 꼭 가고 싶은 나라였다. 6년 전에는 <꽃보다 누나> 같은 프로그램도 없었고, 아시아인 관광객이 드물어 겁이나기도 했었다. 남들이 아직 잘 모르는 여행지를 먼저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 소망은 6년 뒤에나 이루어졌다. 물론 덕분에 보름이라는 시간을 크로아티아에서 보내게 되었지만 말이다. 


자그레브에서는 집을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바가지요금을 받은 택시기사를 만난 것부터 속이 상했고, 구글맵에 주소를 찍고 도착한 장소에는 사진 속의 숙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호스트는 직장에서 업무 중이어서 소통도 원활하지 않았다. 버스를 5시간 타고 국경을 넘어왔기 때문에 더 지쳤던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한참을 헤맨 뒤에야 아파트로 보이는 건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파트로 추정되는 건물과 아파트 대문으로 추정되는 그래피티 가득한 하늘색 현관.

자그레브의 날씨가 끝내주게 좋았기 때문에, 숙소에 도착함과 동시에 우리의 피로는 모두 사라져버렸다.


이런 게 또 에어비엔비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현지인의 집을 찾아가는 그 설레는 길이 쉽지 않아야 더 많은 추억이 쌓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자그레브에서 3일을 머무르는 동안 특별한 불편 사항도 없었지만,  또 이 집 만의 특별한 무언가도 없었던 것 같다. 인테리어도 무난, 가격도 무난했다. 알고 보니 이 집의 호스트는 6개의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있었고, 평일 낮에는 은행원으로 일하는 자그레브 대학 졸업생인 엘리트였다. 한 도시에서 6개의 숙소를 관리하면서 게스트들과 원활히 소통할 수 있을 리가 없을터. 자그레브의 아름다운 하늘 풍경이 없었다면 더 신경 써달라고 솔직한 후기를 남겼겠지만, 마음이 약한 나는 와이파이가 살짝 약했다 정도로 작성을 마무리했다. 하하. 여행은 살아보는 것인데, 사는 건 언제나 희로애락이 공존하는 게 아니었던가. 자그레브 공원의 풍경 덕분에 모든 게 용서되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왔다. 


집 앞 공원에서 본, 문제의 그 풍경. 나에게 자그레브는 이 사진으로 기억될 것 같다. 





#4.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Ivana의 집


다음 여행지는 자연이 준 선물이라 불리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이었다. 자다르와 자그레브의 중간 지점으로 거쳐가는 곳이다 보니 숙소를 뛰어넘는 여행자가 많은 곳인데, 우리는 이 예쁜 숙소를 보자마자 너무 머물고 싶어 졌다. 예쁜 동화마을에 나오는 별장 같은 곳. 자연 속의 작은 쉼터 같았다. 실제로 자그레브에서 렌터카로 열심히 달려와 발견한 우리의 숙소는 그야말로 퍼펙트! 뜨거운 태양과 자연 속 푸른 하늘, 그리고 그 속에 아기자기하게 자리 잡은 우리의 집을 보자마자 탄성을 질렀다. 일단 집이 깔끔했고, 와이파이도 가장 빨랐으며(산 속이었는데도), 집 마당에는 자연을 즐기며 쉴 수 있는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점은 [플리트비체 국립공원]까지 걸어서 5분 거리였다는 것과 너무나도 친절한 호스트 Ivana 아주머니가 계셨다는 것이었다. 멀리서 여행 온 아시아인 게스트 부부를 한껏 배려해주신 사랑스러운 크로아티아인이었다. 플리트비체를 거쳐간다면 꼭 추천해주고 싶다. 






#5. 크로아티아 자다르, Ana&Tony의 집


자다르에는 만난 호스트는 정감이 넘쳤다. 마음씨 좋은 옆집 아저씨랄까나. 목소리도 크고 더불어 키도 참 컸다. 무엇보다 악수를 참 좋아하며(마주칠 때마다 손을 내밀었다) 늘 함박웃음으로 우리를 반겼다. 심지어 우리가 여행지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마주쳤는데 원래 친했던 사이라고 할 만큼 너무 격하게 반겨주시기도 했다. 물론, 우리도 덩달아 좋았고 말이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숙소에 대한 만족도는 그 주인이 남겨준 인상을 따라간다고. 아무리 시설이 깔끔하고 좋은 숙소도 호스트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웠다면 크게 좋은 인상을 갖지는 못하는 것 같다. 반대로 숙소가 평범한 곳이어도 호스트가 너무 친근하게 다가온다면 만족도는 크게 올라가게 된다. 에어비앤비는 '사람 대 사람'의 비즈니스를 하는 느낌이다. 호텔에서는 비싼 숙박비 때문인지 내가 대접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반면, 에어비앤비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우리가 조금 양보하게 된다. 특히 게스트인 나에 대한 후기가 있기 때문에 집을 떠나기 전에 나도 모르게 숙소를 정리하고 나가게 된다. 일종의 초상권에 대한 책임감이랄까? 덕분에 우리는 많은 호스트들에게 극찬을 받는 게스트가 되었다. 아무튼 토니 아저씨 감사해요! 



초등학교 맞은 편에 있는 지극히 평범한 주택이 이번 우리의 숙소.
가장 아름답다는 크로아티아 자다르의 일몰 한 컷 :)





#6.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Bozo의 집


스플리트는 가장 기대되는 여행지이자 숙소가 있는 곳이었다. 마치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의 성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벽돌로 된 집. 물론 집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스플리트의 매력을 그대로 옮겨놓은 멋진 곳이었다.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작고 아담한 골목을 한 참 걸어가야 발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고, 걸어서 10분이면 로마 황제가 사랑에 빠졌다는 스플리트의 궁전으로 갈 수 있었다. 


오늘날 유럽은 관광이 주 수입원이 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조상들 덕에 먹고 산다고 할 정도로, 고풍스런 건물들과 아기자기한 골목, 찬란했던 로마시대의 유물들을 바탕으로 수많은 여행자들을 불러오고 있다. 그러기에 에어비앤비도 자연스레 발달하게 되었다.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예약하려 했던 사람들은 모두 느꼈을 것이다. 작은 동네에도 수 십 개, 많게는 수 백개의 호스트가 존재한다는 것을. 여행자를 위해 자기 집 한편을 내어 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그들. 조상들이 만들어 준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활용할 줄 아는 그들이 괜시리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쳐진 개발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서 전통에 대한 배려 없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이게 성장해왔던 우리나라는 이제서야 옛것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뒤늦게 관광의 중요성을 깨닫고 우리나라를 찾는 많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멋'을 주려 노력하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만의 멋'을 좀 더 지켜나가야 하지 않을까.


독채의 집이었고, 복층 계단을 올라가면 아담한 침실이 있었다. 햇살이 너무 좋아서, 빨래를 마당에서 말릴 수도 있었다.
스플리트는 전 세계의 여행자들이 모이는 '자유의 도시' 이다. 





#7. 크로아티아 흐바르, Ive Gilve의 집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비욘세와 제이지가 휴양을 위해 찾았다는 지중해의 숨겨진 보물섬, 흐바르. 이 곳에서의 숙소는 노년부부와 아들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1층은 본인들의 집이었고, 2층에 있는 두 개의 방을 게스트룸으로 쓰고 있었다. 복도와 방 곳곳에 호스트의 가족 소개 글과 사진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호스트에게 신세 지게 된 여행자의 상황이 더욱 실감 났다. 너무나 친절했던 그들. 자다르에서부터 페리를 타고 온 우리를 위해 선착장으로 마중까지 나오며, 넉넉한 미소와 함께 집구석구석을 설명해주었다. 지중해의 푸르른 바다를 만끽하며 살고 있는 이들의 삶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도심의 빌딩 숲 속에서 쫓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조급한 마음을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이 곳에서 머무는 며칠 동안, 흐바르의 행복을 가득 안고 떠나리라 다짐해봤다. 


섬이었기 때문에 해안가를 따라서 주택들이 형성되어있었다. 덕분에 오션뷰를 만끽했다. 
숙소 바로 앞에서 본 풍겸. 작은 골목과 언제라도 바다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있는 꼬마와, 그 뒤를 따르는 강아지, 그리고 낭만의 상징인 자전거가 있었다. 마음의 평화를 주는 풍경.
게다가 집 앞에 바로 해수욕장이 있었다. 지중해의 숨겨진 보물섬, 흐바르.





#8.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Teresa의 집


크로아티아 여행의 꽃이라 불리는 두브로브니크. 자유를 지키기 위해 쌓았던 성벽이 그대로 남아있는 아름다운 항구도시. 크로아티아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할 이 곳의 숙소는 마치 피날레와 같은 감동을 선사해줬다. Teresa아주머니의 안내를 받아 올라간 3층의 우리 방. 뜨거운 햇볕을 맞으며 한참을 걸어오느라 녹초가 된 우리 부부에게는 두브로브니크의 구 성곽과 항구가 한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3일 동안 우리가 테라스를 통해서 보게 될 풍경은 아마 평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셋 째 날 아침, 테라스에서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는 아내의 모습. 이 풍경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9. 체코 프라하, Jan의 집


크로아티아에서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체코 프라하의 숙소는 처음부터 뭔가 달랐다. 보통의 여행자들은 비싼 음성 로밍비 때문에 기본적으로 에어비앤비 호스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wifi나 데이터를 이용한 에어비앤비 앱의 채팅을 통해 진행한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도 한 번도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웠던 적이 없었는데, 이번 프라하 호스트는 우리 부부가 집 근처 트램 정류장에서 내릴 때까지도 아무런 답이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로밍비를 감안하고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자기는 지금 잘 기다리고 있다고 태연히 이야기한다.(다행이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ㅠ) 집 앞으로 갔더니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Jan 아저씨.(나중에 알고 보니 핸드폰에 에어비앤비 앱이 없었고, 오직 이메일로 소통하는 호스트였다. 보통 에어비앤비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면 이메일로 알람이 오는데 그걸 이용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은 왜인지 이메일이 누락된 듯..) 아저씨의 인상을 볼 새도 없이 그냥 여태까지 연락이 전혀 안 되었던 것에 대한 원망이 먼저 들었다. 아저씨를 만나게 되어 다행이지, 혹시라도 집 앞에서도 연락이 안 되었다면 정말 당황했을 것 같다. 혹시 모를 이 상황이 바로 낯선 현지인의 집이 주는 작은 리스크일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안도한 마음으로 아저씨를 따라 오래된 엘리베이터(30년이 넘었다고 했다.;)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사실 나는 프라하의 이 집에 머물기를 너무 기대했었다. 내가 늘 꿈꿨던 원목을 소재로 꾸민 루프탑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주인아저씨가 문을 열자마자 우리 부부는 "와...!!" 하고 감탄했다. 너무 적절한 색의 나무들로 꾸며진 집. 생각보다 넓고 아늑한 집. 모든 게 있어야 할 자리에 조화롭게 있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묵었던 집들 중에 가장 예쁘다고 했더니, 아저씨는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하지만 뭔가 그 웃음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 듯한 여유로운 웃음이 아니었다. 나는 사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게 얘기해줘서 고맙다는 듯한 겸손한 웃음. 심지어 아저씨는 본인이 슈퍼 호스트가 된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아저씨는 집 소개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본인 이야기도 함께. 예전엔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살았지만 지금은 보다시피 혼자라고 했다. 순간 나는 머릿속으로 '아, 이혼하셨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더 나누다 보니 이혼이 아닌 사별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에어비앤비를 시작한 이유가, 아내 없이 혼자 살면서 예쁜 집이 망가져 가는 게 싫었고, 집을 어지럽히며 게으르게 살게 되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면서였다고 하셨다. 그래도 집을 숙소로 제공하고 게스트들과 교류를 하려면 청소도 하고 정리를 해야 하지 않냐며, 그래서 다시 예전처럼 예쁜 집에서 살고 싶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둘러본 집은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그런 소중한 집이랄까. 나는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혼자 숙연해졌다. 갑자기 겪게 된 배우자와의 사별은 어떤 느낌일까 라는 상상을 하게 되면서..

'동유럽의 파리'라고 불리는 로맨틱한 도시 프라하의 숙소는, 이렇게 다른 의미에서 가슴속 깊이 뜨겁고, 로맨틱했다. Jan아저씨는 분명 게스트들이 숙소를 이리저리 걸어 다닐 때, 부엌에서 요리를 하거나 소파에서 수다를 떨 때, 때로는 아내를 기억하기도 하리라. 숙소를 사용하게 되면 에어비앤비에서는 숙소의 여러 항목을 평가하게 한다. 사진과 실제 집의 비슷함의 정도, 청결도, 도심과의 거리, 가격 등의 항목 등등.. 하지만 이 집은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힘든, 그런 아름다운 집이었다. 그저 감사히 묵었던 그런, 참 예뻤던 집. 내 집처럼, 아니 내 집보다 더 소중히 여기며 생활하게 된 3일간의 현지 숙소. Jan 아저씨가 늘 지금처럼 밝고 씩씩하게 살아가길 바라며 집을 나섰다.



앞으로 낭만 가득했던 프라하의 사진을 볼 때면 아저씨의 수줍은 듯한 웃음이 함께 떠오를 것만 같다. 얀 아저씨 파이팅! 프라하에 또 가게 되면 꼭 아저씨를 다시 찾을게요!!





#10. 오스트리아 비엔나, Carina Lagun의 집


우리 부부가 각 에어비앤비 숙소에 도착할 때마다 이게 있으면 저게 없어서 불편하고, 저게 있으면 다른 게 없어서 불편하고의 연속이었다. 예를 들면, 따뜻한 차를 마시고 싶은데 포트가 없는 집이 있다거나 조식이 없으니 아침을 숙소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요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거나 하는 것들이었다. (물론, 대체로는 만족할만하다. 완벽한 집이 없었을 뿐.) 그렇게 아홉 개의 숙소를 지나 열 번째 숙소에 도착했을 때 우린 더 이상 ‘여긴 이래서 좀 아쉬웠고 여긴 저래서 불편했어’가 아니라 ‘이젠 아무래도 좋아’가 되었다. 사실 그렇다. 숙소에 커피 포트가 없다는 걸 알았다면 하루의 끝에 숙소 근처의 카페에서 차를 한 잔 테이크 아웃하면 될 일이고, 요리할 여건이 안 되는 곳이라면 빵집에서 샌드위치 2개를 사서 다음 날 우리만의 특별한 조식을 준비하면 될 일이다.
 
‘에어비앤비’는 나에게 그랬다. 단순히 특별한 숙박 경험이 아니라 다시 한번 ‘사람의 마음’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 기회였다.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늘 어떤 현상에서 이뤄지는 사람들의 패턴에 대해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데, 에어비앤비를 연달아 아홉 번 경험하다 보니 이제 숙소는 나에게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즐김의 대상이었고, 호스트에 대한 후기는 이런저런 점수를 매기기 위한 대상이 아니라 호스트에 대한 나의 인상과 분위기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해주는 장치가 되었다. 뭔가 각 숙소가 모두 다 하나의 인격체처럼 느껴졌달까. 단순히 호스트의 이미지가 덧입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숙소의 특징들과 분위기가 하나로 어우러져 하나의 성격이 탄생한 듯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냥 우리 부부에게 에어비앤비란 몸과 마음의 쉼터이다. 여행에서 쌓인 피로를 풀어주고 이렇게 글을 끄적거리면서 마음을 쉬게 해주는 쉼터 말이다. 다시 출발지인 오스트리아 빈으로 돌아온 우리는 그렇게 이번 유럽여행의 끝을 느긋하게 만끽했다.


창 밖으로 이렇게 빈의 평범한 거리 풍경을 볼 수 있다. 
다시 찾은 오스트리아에서는 집 앞의 City Bike를 빌려타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마치 그 곳이 우리 동네인 것 처럼.





#. 에필로그

우리 부부는 한 때(?) 세계일주를 꿈꿨다. 낯설고 먼 곳으로 여행한다는 것이 너무나 낭만적일 것 같다는 환상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 환상을 떨칠 수는 없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서 이국적인 풍경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아닌, 진정한 여행자의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숨 쉬고 일하고 사랑하는 바로 이 곳 서울에서 여행자의 삶을 살 수는 없을까. 나는 그 해답을 '타인에 대한 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여행자의 자격"에서 찾아보았다. 결국은 그것이 모든 걸 바꾸는 것 같다. 내면의 솔직한 목소리를 듣는 사람,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 주변의 아름다움을 지나치지 않고 만끽하는 사람. 그것이 바로 여행자의 삶이 아닐까.


이번 여행은 걷기로 시작해, 걷기로 끝난 여행이었다. 마치 걷기 위해 여행을 온 것 같은 그런 기분. 에어비앤비 호스트들은 하나 같이 우리에게 걷기를 권유했다. 구시가지가 좁으니 걸으면 된다고, 바다가 가까우니 걸어가라고. 골목골목이 예쁘니 천천히 걸어 다니며 보라고. 다리를 건너보고, 성을 올라보라고. 그러다 보니 하루 대여섯 시간을 기본으로 걸어 다닌 것 같다. 사실 한국에서는 걸어 다닐 일이 많이 없다. 교통이 너무 편리하다는 이유, 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이유, 때로는 걷기에는 멀다는 이유를 대며, 가끔 걷게 될 때도 스마트폰의 화면과 함께하며, 운동을 위한 자기 합리화 정도로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걷는다는 행위의 아름다움에 대해 배웠다. 천천히 걸어 다니며 주위를 둘러보는 시간 속에 여행자의 너그러움이 숨어있었다. 주변을 여유롭게 둘러보며 낯선 풍경들을 이끌어낼 때, 그때 비로소 일상이 영감을 주는 축복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효율이 가장 중요해져 버린 자본주의와 비즈니스 세계에서 강조하는 딱딱한 '이성'이 아닌, 내 두 다리로 지구와 하나 되어 걸어가는 원초적인 비효율의 인간미가 주는 '감성'을 쫓을 때 일상을 여행자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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