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이번 여행의 시작과 끝, 로마(ROME).
다시 찾아온 꿈같은 휴가를 맞아 우리 부부는 이탈리아 남부와 몰타 여행을 계획했다. 어쩌면 유럽에서 가장 달콤한 도시로의 여행. '휴가'라는 단어와 가장 맞아떨어지는 지중해 해안으로 떠나기로 했다.
게다가 일정이 맞아 로마를 거쳐가는 행운까지 얻었다.
그래서 문득 그 유명한 말이 떠올랐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이었던 로마의 위용을 상징하는 이 말이 교묘하게 이번 여행과 맞아떨어졌다. 지금의 유럽이 있게 한 로마 제국의 중심을 방문하는 일은 제법 기대되는 일정이었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에 관심이 많은 나와, 로마에서 저렴하게 판매되는 명품 브랜드에 관심이 많은 아내가 잘 타협할 수 있는 여행지이기도 했고 말이다.
이번 유럽여행의 컨셉도 역시 '낭만 부부'였다.
낭비 없는 낭만은 없기에 마음껏 행복을 낭비하고 왔다.
지금은 좀 올드한 영화가 되었지만, '로마의 휴일'이라는 작품이 전 세계를 설레게 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도 제법 커서 그 흑백영화를 보게 되었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오드리 헵번'의 아름다움과 로마의 이국적인 풍경은 많은 이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로마는 사람들에게 달콤한 도시로 인식되었고, 그 영화를 보지 않았던 사람들도 괜스레 로마에서 낭만을 찾곤 했다. 물론 우리 부부도 덩달아 달콤해졌다.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가게에서 산 젤라또를 손에 쥐고, 예쁜 로마의 거리거리를 두 손 꼭 잡고 온종일 걸었다. 작은 일상도 마냥 추억이 되던 그때로 돌아가 마치 세 번째 신혼여행이라도 온 듯 설레는 로마의 휴일을 마음껏 만끽했다.
유럽 역사의 심장과도 같은 로마.
찬란했던 로마제국의 이름을 딴 이 도시는 이제 과거의 흔적들을 유산으로 한 관광도시가 되었다.
시저와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살던 곳.
유럽을 넘어 전 세계에 영향을 준 종교와 문화와 예술이 만들어진 곳.
오늘날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모티브가 되어준 문화유산 위를 오래도록 구석구석 걸으며, 마음속에 담았다.
#. 패션의 도시, 로마.
로마를 여행하면 어느 패션 잡지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로마 사람들은 유럽에서도 옷을 잘 입기도 유명한데, 덕분에 그들의 뛰어난 패션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여행이기도 했다. 왜 그들은 패션에 그리 집착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이탈리아 특유의 '장인정신'과 '예술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들은 장인을 좋아한다. 예전부터 장인의 한 땀 한 땀이 주는 가치를 사랑했으며, 그것은 이탈리아 패션 산업의 기반이 되었다. 쉽고 평범하게 만들어진 가방과 구두는 그들에게 큰 영감이 되지 못했으며, 무엇보다 정성이 들어간 제품들만이 그들을 만족시켰다. 그렇게 만들어진 비싸고 예쁜 패션 아이템들이 자연스레 그들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예술에 대한 관심과 감각은 그들로 하여금 평범하기를 싫어하고 개성과 다양성을 중요시하는 문화를 만드어 냈다.
지금도 많은 브랜드가 가족경영으로써 그 장인정신을 이어오고 있으며, 국가에서도 자국의 패션 산업을 위해 많은 정책으로 함께 노력해왔다. 현재 산업 종사자의 30%가 패션 관련 종사자일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가 흔히 아는 'made in Italy'가 우수하다는 것도 국가의 패션 마케팅 전략의 성공 사례이다.
덕분에 로마에는 그 유명한 명품거리가 즐비하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우리 부부도 마음껏 그들의 장인문화를 구경했고,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많은 쇼핑백이 우리 손에 들려있었다. 한국보다 저렴하다는 간단명료한 명분으로 저지른 우리의 쇼핑 만행을 반성했지만 자칫 다른 도시들은 돌아보지도 못하고 서울로 돌아갈 뻔했다.
#.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와 함께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스페인 광장의 풍경이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곳으로 더 유명해졌는데, 많은 여행자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9월 초의 태양은 아주 뜨거웠지만 그들에게는 햇살 가득 여유와 낭만이 내리쬐고 있는 듯 보였다.
#. 트레비 분수
로마의 대표 여행 스팟인 트레비 분수. 포세이돈과 그의 아들이 지키고 있는 이 분수에 동전을 한 번 던지면 로마에 돌아올 수 있고, 두 번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세 번 던지면 그 사랑과 결혼할 수 있다는 스토리가 있다. 누군가 재밌게 만들어낸 이 이야기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올 좋은 구실이 되고 있다.
저마다 행복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여행자들을 바라보며 나도 다시 모드를 직장인에서 여행자로 전환했다. 유독 푸르렀던 이탈리아 로마의 하늘 아래에서 또 문득 행복해졌다.
로마에서 하루가 다 지나서야 비로소 다시 떠나온 것을 실감했다.
오래된 중세시대의 건물들과 울퉁불퉁한 바닥이 주는 이국적인 향기 속에서, 늘어진 노천카페에서 즐기는 달콤한 커피의 나른함 속에서, 다시 서울에서의 바쁜 일상을 내려놓았다.
쉬지 않고 울려대던 스마트폰을 내려놓았고, 타인을 의식했던 하찮은 체면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동안 숨어있던 나를 되찾아왔다.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 멈춰 사진을 찍는 나를 찾았고, 많이 걸으며 오감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모습도, 생각과 행동의 자유로움도, 온종일 아내와 함께 하는 낭만의 시간도 되찾아왔다.
역시 이번에도 떠나오길 잘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