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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Sep 05. 2023

혼삶이 무서워져도 쪼그라들지 않도록.

폭력 앞에 불안한 1인 가구, 혼삶의 자신감 지키기

주말마다 서울에서 전주까지 가서 운동을 한지도 벌써 꽤 되었다. 중학생 때부터 다니던 합기도 도장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여름방학이 되면 남는 시간에 왠지 학원에 다니게 될 것 같다는 '공부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여서 급하게 무언가를 찾아 헤매다가, 당시에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던 반 친구를 따라서 도장에 한번 놀러 간 것이 계기가 되었다.


가끔 도장에서 긴 시간 동안 수련하다 보면 여러 세대의 관원들을 보면서 흥미로울 때가 많다. 싱글 생글한 초등학생들은 어떤 무술을 배우든 겁 없이 몸을 날리고 대와 거침없이 뒤엉키기도 한다. 중학생 정도가 되면 무술의 일부 요소에 꽂히는 경우가 많다. 동작과 액션에 집중해서 주로 운동의 멋을 추구하거나, 본능적으로 파워에 몰두해서 더 크고 더 무겁고 더 센 쪽에 끌리기도 한다. YouTube 등을 통해 봤던 특정 기술을 연마하는 것에 꽂히기도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서서히 운동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입시와 진로를 위해 운동할 시기도 지나가기에 기본적으로 신체 건강과 활력을 위해 수련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남는다. 반드시 시간이나 나이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시간이 갈수록 무술과 수련 자체의 의미에 대해 종합적이고 다양한 측면에서의 의미를 탐구하려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운동 배워서 학교를 좀 주름잡아(?) 보려는 생각을 하는 건 하수다. 고수가 될수록 폭력과 거리를 두기 위한 운동, 더 나아가서 그에 대비하고 대응하기 위한 운동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오랜만에 방검술(劍術, 칼 든 상대를 막기 위한 호신술) 연습해 볼래?"

고수를 넘어서 무도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나의 원대한 철학이 무색해지는 요즘이다. 내가 처음 무술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 자신을 학교 일진이나 술 취한 행인들로부터 보호해야겠다는 정도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소녀에서 여인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는 슬프게도 '호신'의 목적이 '성범죄로부터의 자기 보호'에 치중하게 되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 이건 뭐, 뒤에서 달려드는 칼도 막아야 한다고? 믿기 어려운 폭력 사건 소식을 접하게 되는 요즘, 그토록 몸과 마음을 수련했건만 나는 일단 가해자를 한 대 패주고 싶다는 생각부터 든다. 멀었다, 난.


"혼자 남미 여행? 요즘 같이 험한 때에?"

서울에 와서 독립한 지도 꽤 되었으니 진작 다른 도장으로 옮길 생각을 했을 법도 한데 굳이 전주까지 기차를 타고 오가며 옛 도장을 계속 찾는 것엔 이유가 있다. 나랑 합을 맞춰서 진도를 함께 나갈 수 있는 내 팀도 그곳에 있고, 평일 내내 비즈니스에 몸을 푹 담그고 하이힐에 올라탄 삶을 사는 내 몸을 단시간에 바로 선수 모드로 돌려놓을 수 있는 오랜 스승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남미로 떠나는 짧지 않은 해외 일정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도장에 들렀던 주말. 한동안 못 뵙게 될 스승님께 인사를 드린다. "무사히 살아 돌아올게요."하고 너스레를 떨자, 잘 다녀오라며 "아직 네가 총은 못 이길 텐데 말이다." 하며 농담이 오간다. 음으로 배낭여행을 시작했던 학생 시절에는 소매치기나 인종차별을 염려하는 말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걱정의 키워드가 사뭇 무섭다. #홈리스 #마약 #총 과 같은 단어들을 동반한 피해 사례를 듣다 보면 '수련'을 통해서 '폭력'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오 나름의 라임??) 그동안의 노력이 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뭐든 '혼자 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최고조로 올라가고 있는 요즘이 아닌가 싶다. 너무도 자연스러웠던 혼자 하는 일상들이 어느새 '이래도 괜찮나?' 하는 불안감을 한번 견뎌야 해낼 수 있는 일들로 바뀌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새벽녘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혼자 산책하는 일. 적한 등산로를 전세 내듯 혼자 점유하는 신나는 기분을 느끼는 일. 혼자이기에 더욱 개운 산뜻할 수 있었던 내 아깝고도 귀한 일상.


허리를 드러내는 차림을 좋아하는 나는 '맹장'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인데, 아니 세상에 갑자기 몇 건의 범죄 때문에 자기 옷을 집어 들다 말고 망설이게 된다. 가벼운 차림으로 나서고 싶을 때 혹여라도 내가 공격 타깃이 될 가능성을 괜히 높이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이게 맞는 건가?


폭력에 대비하고 대응하는 것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목숨이 걸린 정도가 아닌 경미한 폭력과 관련된 경우에도 그러하다. 하지만 '안전'을 준비하는 것과 '안전감'을 쌓아나가는 일은 각각 별개의 영역으로서 다뤄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기에, 이 거칠고 혼란스러운 사건들 앞에서도 조금 더 의연하고 강인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 가벼운 차림을 하고 다니는 누군가에게 "너 그렇게 입고 다녀도 되겠어?" 하는 세상이 아니라, 수상하게 어두운 욕망을 키우다 용감하게도 실행까지 꿈꾸는 누군가에게 "너 그렇게 죄지어도 되겠어?" 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렵게 이루어 놓은 지금의 분위기, 지금의 관대함을 다시 꽁꽁 싸매고 두려움에 벌벌 떨며 과거로 회귀해 버리는 건 왠지 억울하다.  대 맞았다고 후퇴해 버리는 그런 게임만 하고 싶지는 않다. 혼자 하는 삶에서의 내가 1인 가구로서의 라이프 스타일을 지키며 더욱더 자신감 있는 삶의 모습을 많이 드러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 예전처럼 살아도 괜찮겠지?' 하며 불안해할 또 다른 누군가가 나를 봐주길 바라며.


1인 가구의 연대라는 것은 그렇게 생각보다 복잡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닐 수 있다. 이런 문화적 영향력으로 느슨하지만 탄탄하게 얽히고 엮이게 될 우리들의 연대를 믿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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