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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Feb 15. 2024

정서적 성취를 무시하고 있었다,

1인 가구, 혼삶의 평가지표

바쁜 아침 시간에 빠듯하게 집을 나섰는데 ‘도시형 야생동물’을 마주치고 말았다. 지하철 역 출구 바로 앞을 점령한 비둘기들, 조찬 모임에라도 온 것처럼 여유로워 보이는 걸 보면 나를 위해 길을 비켜줄 것 같지는 않군.  잠깐을 우두커니 서 있다가 결국 한숨을 내 쉬며 지하철 역 안으로 되돌아 들어갔다. 용돈 뺏는 일진이라도 마주친 듯 패배감에 휩싸인 채 다른 출구로 돌아 나와서 그들을 피해 가는 약자의 심정이란.

조류공포증이 회사에 지각한 정당한 사유로 인정되지는 않겠지. 아침부터 이렇게 비둘기에게 에너지를 뺏긴 날에는 사무실에 들어가서도 한동안 심호흡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다스려야 했다.

비둘기들을 마주치고도 의연하게 지나가고 싶어서 이런저런 방법을 참 많이 시도했다. 누군가가 팁을 알려주기도 했다. 마치 익룡이 된 것처럼 양손을 벌려서 날갯짓하면서 비둘기를 놀라게 하면 그들이 푸드덕 도망간다고. 물론 나도 시도는 해 봤다. 하지만 나의 페이크 동작 따위에 속기에는 요새 비둘기들이 너무도 강인했다.

이런저런 방법들을 써 봤지만 의외로 가장 증상에 도움이 되었던 건 ‘스테이크’였다. 치이익- 스테이크가 구워지는 소리를 떠올리면 자연히 그 육즙과 식감, 향기가 함께 떠올랐다. 그 상상 속에 비둘기가 끼어들더라도 그저 닭꼬치 같은 모습으로 함께 그릴 위에 올려질 뿐이었다. 이젠 저 멀리에 비둘기들이 보여도 심장이 쫄아들지 않는다.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머릿속으로 스테이크를 굽기 시작하면서 나는 깨달았다. 일생 동안 짊어졌던 어떤 것을 드디어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연말이 되면 한 해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성취와 성과들을 차분히 정리해보곤 한다. 경제적인 성취와 직업적인 인정, 인간관계, 체형과 체중의 변화 같은 것들이 성과를 채점하는 기준이 되곤 한다. 사소한 일이라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도전했던 경험이 있으면 큰 성과로서 스스로를 인정해 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한 가지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더 이상 비둘기를 피해 다니지 않게 되었다는 것. 나도 모르게 스스로의 내면적 성취를 가볍게 여겼던 것인가. 정량적인 성취로 가득한 우리 삶의 채점표에도 새로운 항목을 넣어야 한다. 내면의 성장, 즉 정서적인 성취를 인정하자.

우리는 가끔 ‘무뎌졌다’는 쉬운 말로 스스로의 내면적 성장을 뭉뚱그려 묻어버리기도 한다. 누군가가 의미 없이 휘두르는 공격에도 비교적 의연해질 수 있고, 소소하게 신경질 나는 상황 속에서도 상대와 상황을 이해할 길을 찾는다. 식당 안에서 아기가 시끄럽게 울면 ‘저 부모님 난감하겠다’ 하고 생각할 수 있고, 상사의 못된 말을 들어도 내가 고쳐야 하는 상황인지 아니면 저 사람이 괜히 마음이 급해서 그런 건지 구분할 수 있다. 불쾌할 수 있는 상황들을 참아 넘기느라 스스로의 마음과 기분이 희생되지는 않았는지 들여다볼 줄도 안다. 조금씩 훈련하고 깨달으면서 갈고닦은 나의 내면은, 그저 “나이 드니까 괜찮아져”가 아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런 성취는 시간이 지나면서 누구나 자연스럽게 쌓이는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항목으로 누군가의 삶을 평가하는가. 삶을 한두 가지의 키워드만으로 평가하는 것 자체가 무섭기도 하고, 삶이라는 것을 꼭 평가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직업, 경제력과 같은 지표로 삶을 평가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가족’이라는 지표를 평가항목에 포함시키기 시작하면 인생은 더 피곤해진다. 사회에서의 성취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그래도 나는 벌써 아이도 이만큼 키웠잖아’라는 형태로 자신을 다독이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가족이 그만큼 소중한 가치인 것은 맞지만, 가족과 함께 잘 지내야만 ‘나’라는 사람도 비로소 가치 있어진다는 뜻은 아니기에.

가족이라는 핑계조차 없는 혼삶은 그만큼 사회에서의 성취에 목매는 경우가 있다. 일반적으로, 결혼을 선택한 삶이 1인 가구에 비해서 더욱 풍성하고 의미 있는 경험을 하면서 살 것이라는 인식이 있기도 하지 않은가. 한 명의 배우자와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일, 한 생명을 낳고 기르는 소중한 경험, 그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일들 말이다. 이렇다 보니 혼삶은 인생에서 이런 특별한 경험이 제외된 삶, 의미 있는 경험이 결여된 버전의 삶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낀다. 이런 관점으로 1인 가구의 인생을 바라보면, 결혼해야만 할 수 있는 경험의 빈자리를 대신할 어떤 다른 특별한 가치를 ‘추가적으로’ 찾아내야만 결혼한 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인생이 의미 있어지는 것처럼 잘못 생각하기 쉽다.

혼삶의 성취는 가정을 이루거나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벌써 학교에 들어가고 이런 것들과는 다른 것들로 매겨져야 한다. 나는 무엇으로 자기 자신을 평가할 것인지, 나 스스로에게 인정받기 위한 나만의 인생 지표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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