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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 기억을 만든다

1인 가구 혼취미➁ 나만의 순간을 수집하는 ‘기록의 취미'

by 야인 한유화

“취미활동 하는 거 있으세요?”
새로운 사람과 교류할 때 의외로 자주 듣는 질문이다. 이렇다 할 거창한 취미가 없어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당신, 이미 너무도 의미 있는 취미활동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골프나 테니스가 아니더라도, 독서나 영화감상이 아니더라도, 혹시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출근길에 찍은 하늘 사진, 퇴근 후 좋아하는 찻잔을 찍는 루틴. 또는 자기 전 음성메모로 혼잣말을 녹음하는 습관까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기록도 좋지만, 혼자만 보려고 남기는 기록은 그야말로 진솔하다. 기록하고 모으는 것은 나를 더 잘 알기 위한 고요한 대화이자, 삶을 수집하는 행위다.





혼자일 때 비로소 가능한 기록의 진정성

혼자 사는 사람의 삶은 늘 단순하고 조용할 것 같지만, 사실 그 안에는 많은 ‘말 없는 이야기’가 흐른다. 그 이야기를 잡아두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기록이다.

혼자만을 위한 기록은 SNS에 올리는 기록과 다르다. 거창한 콘텐츠가 아니어도, 내 일상을 무던히 담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공개되지 않는 만큼, 마음도 검열 없이 담긴다. 나를 위한 글쓰기, 사진 저장, 사적인 다이어리 앱. 그 안에는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애정이 있다.

누군가의 피드백이나 ‘좋아요’가 붙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혼자이기 때문에 더 솔직하게,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오늘 하루가 유난히 허전했다’는 고백, ‘지하철에서 우연히 들은 말이 나를 웃게 했다’는 메모. 이런 소소한 기록들은 그날의 내가 나에게 보낸 마음의 편지다.

타인의 시선에 갇히지 않은 기록은 오히려 내 감정의 진짜 결을 남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그 안에서 내면의 진심을 포착하고자 하는 본능이 기록으로 이어지는 것 아닐까.

사실 기록은 삶을 수집하는 과정이다. 지금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아주 작은 순간조차도 내 삶의 일부로 정리해두는 것. 그래서 기록은 곧 자기 존중이다.






작고 조용한 습관이 나를 회복시킨다

1인 가구의 일상이 오랜 시간 지속되면, 가족 형태의 변화 없이 반복되는 삶을 자칫 지루하거나 가치 없는 것으로 느낄 수 있다. 이럴 때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좋아하는 시 구절 필사하기 같은 취미를 통해 소소한 하루하루를 귀중한 삶으로 완성할 수 있다.


다이어리에 마스킹테이프를 붙이고, 색색의 펜으로 문장을 적고, 스티커를 붙이는 행위. 누군가에게 보여줄 것도 아닌데 가장 예쁜 글씨로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내는 행위. 그 안에는 ‘오늘 하루를 소중하게 다룬다’는 마음이 담긴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정성 들이는 기록. 이런 일상 속의 명상 활동은 혼자인 삶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만든다.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보여주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 있는 나의 혼삶.

나를 위한 기록은 단단한 내면을 쌓는 반복 훈련이자, 혼자 살아가는 나를 격려하는 일상의 의식이 된다. 결국 기록은, ‘내가 여기 있었고, 잘 살고 있다’는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이 조용한 습관들이 모여 삶을 회복시키는 근거가 된다.






기록이 기억을 만든다

여행지에서 찍은 아무도 모르는 골목 사진, 카페 다니면서 모아둔 플레이리스트. 당장은 사소하고 무의미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작고 사적인 기록들이 내 삶의 진짜 앨범이 된다. 과거의 내가 무엇을 좋아했고, 어떤 풍경에서 머물렀는지를 보여주는 선명한 자화상이 된다. 글이든 사진이든 소리든, 남겨진 기록은 결국 나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혼자의 시간은 그래서 더 깊이 남는다. 기록은 사라지지 않기 위한 몸짓이자, 혼자 사는 삶을 가볍게 되새기는 방식이다.

기록은 감정을 저장한다. 사진 한 장에 담긴 빛의 온도, 메모 속 문장의 리듬, 목소리의 떨림까지. 그 어떤 글보다 정확하게,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는 것을 믿는다. 그렇기에 기록하는 것은, 이미 지나버려서 손 쓸 수 없는 과거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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