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을 가는 종이?
우리나라 종이인 "한지"는 예로부터 중국에서도 높이 평가할 만큼 명성이 자자했으며 질이 좋기로 유명했다고 해요. 이러한 종이 제조 기술은 고려시대에도 이어져 11세기 후반부터는 많은 양을 중국으로 수출했다고 전해지는데요, 중국이나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닥나무는 섬유질이 약해 품질이 떨어지며, 일본 닥나무는 석회질에서 자라 질기지 않고 오래가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닥나무
줄기를 꺾으면 '딱' 소리가 나기 때문에 닥나무라고 합니다. 암수한그루로 5월에 잎과 더불어 수꽃이삭과 암꽃이삭이 동그랗게 달리며, 수꽃 화피조각과 수술이 각각 4개가 있습니다. 열매는 핵과로 표면에 갈고리 모양의 가시털이 있고 6~7월에 둥글고 주홍색으로 익는데요, 볕이 잘 드는 양지를 좋아하고 추위에 강해 중부 내륙지방에서도 잘 자랍니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루브르 박물관이 고미술품이나 고가구를 복원하고, 십여 세기 전의 고서들을 상하지 않게 보관하는 마법의 재료로 "한지(韓紙)"를 찾고 있다고 합니다. 승리의 여신상, 다빈치의 모나리자, 구텐베르그의 성경, 렘브란트의 드로잉, 백자 등도 천연 종이를 이용한 복원사들의 섬세한 손길을 거쳐 다시 멋진 생명력을 얻었다고 하는데요, 루브르의 베테랑 복원사들로부터 ‘고품격 복원지’란 평가를 받은 우리의 전통 한지! 어떤 이유로 사랑 받고 있는걸까요?
"한지(韓紙)"는 한지는 닥나무 껍질로 만든 순수한 한국 종이를 일본의 화지, 중국의 당지, 서양의 양지와 구분하여 칭하는 말이며, 닥종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특히 닥나무는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 단단하게 자라고 통풍이 되어 습도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에 썩지 않는 장점이 있어 문화재 복원에 쓰이기도 합니다. "비단은 500년을 가고, 한지는 1,000년을 간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보존성과 내구성 통풍,제습 효과를 자랑합니다.
*絹五百 紙千年 (견오백 지천년)
비단은 500년을 가고, 한지는 1,000년을 간다
한지와 일반 종이의 가장 큰 차이는 재료의 차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한지는 닥나무, 종이는 여러 목재가 섞인 섬유 집합체로 만들어집니다. 닥나무는 섬유 조직이 길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한지를 자세히 보면 표면에서 그 재질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천연 분산제 역할을 하는 닥풀(황촉규)이 종이의 산화를 막아줍니다. 전통 한지로 만들어진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이라는 사실! 불순물(당분,기름기 등) 제거에도 천연 재료인 잿물을 사용하는데요, 전통 한지의 제작 과정에는 모두 천연재료가 사용됩니다.
*닥풀
황촉규(黃蜀葵)라고도 불립니다. 중국이 원산지이며 밭에서 재배하는데요, 전체에 털이 있고, 줄기는 둥근 기둥 모양이며 곧게 서고 가지를 치지 않으며 높이가 1∼1.5m입니다. 잎은 어긋나고 잎자루가 길며, 잎몸은 손바닥 모양으로 5∼9개로 깊게 갈라지는데, 닥풀은 닥나무로 한지를 만들 때 점성을 주기 위해 쓰인다.
한지와 일반 종이의 차이점 중 독특한 부분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이 "닥풀"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주로 뿌리에서 추출한 것을 사용하며, 닥풀을 사용하지 않으면 종이 생산시에 여수(濾水)가 지나치게 빨라서 섬유가 응어리져 엉기게 됨으로써 균일한 지질을 얻을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또한 닥풀을 사용하면 습지가 서로 붙지 않게 되어 편리하다고 하는데요, 이 밖에 닥풀의 사용 방법에 따라 한지의 강도·굳기·광택 등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에서 발견된 너비 약 8㎝, 전체길이 약 620㎝, 1행 8~9자의 두루마리 모양 인쇄물로, 통일신라 때인 751년경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목판 인쇄물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재 국보126-6호로 지정되어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닥 섬유를 두드리는 과정인 전통방식 '고해'는 섬유에 손상을 주지 않고, 두드릴수록 질겨지고 부드러워지는데요, 또한 셀룰로스가 친수성(물 분자와 쉽게 결합되는 성질)을 갖게 되면서 종이가 질기고 견고해집니다.
*고해
불순물 등이 제거되어 하얗게 된 닥 섬유의 물기를 뺀 다음 돌에 올려놓고 나무방망이로 두들겨서 찧는 것을 고해(叩解)라고 하는데요, 대체로 두들긴 섬유의 부피가 처음보다 두 배 정도 늘어나면 과정이 끝납니다. 닥 섬유에 물을 뿌렸을 때 뿌옇게 분산되어 확 풀어지면 고해가 잘 된 것이라고 합니다.
국가무형유산
한지장 (韓紙匠) 류행영 보유자의 고해 과정
*셀룰로스
식물이 외부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벽, 종이를 만드는 펄프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성분인데요, 셀룰로스는 지구 상에서 가장 풍부한 유기 화합물입니다. 식물은 해마다 1014 kg의 셀룰로스를 만들어내는데, 이는 지구상의 유기화합물들 중 가장 많은 양으로, 면 섬유의 셀룰로스 함량은 90%이고, 목재의 셀룰로스 함량은 40~50%이며, 주로 판지 및 종이 제조에 사용됩니다.
일본식인 제작 방식인 쌍발뜨기는 한쪽 방향으로만 결이 생기는데 비해 한국 전통 제조 방식인 '외발뜨기'(흘림뜨기)는 가로,세로 방향으로 모두 교차하는 우물정(井) 모양으로 뜨기 때문에 종이의 질이 높아져 세계에서 인정받는 우리나라 전통 종이가 되었습니다. 공정상 쌍발뜨기가 더 빠르지만 더욱 견고한 것은 한국 전통 방식인 외발뜨기라는 점!
외발뜨기란?
우리 선조들이 쓰던 전통 방식으로 발틀의 외곽에 턱이 없는 것이 특징.
앞물을 떠서 뒤로 버리고 다시 오른쪽에서 물을 떠서 왼쪽으로 흘리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물을 흘려서 2합음양지로 제조한다. 앞물질 한번에 옆물질의 반복으로 가로,세로 모두 교차하기 때문에 섬유가 우물정 (#) 형태이다.
장점: 강도가 높고 윤기있는 양질의 한지 제조 가능
단점: 생산성이 떨어지고 기술을 습득하는 기간이 오래 걸림
쌍발뜨기란?
일제 때 일본에서 들어온 방식으로 발틀의 외곽에 턱이 있는 것이 특징.
발틀 안에 고여 있다가 섬유질만 남기고 물이 밑으로 빠져 나가 종이면이 형성되는데 물질은 한번 떠서 앞뒤로 흔들면 물이 밑으로 빠져나가 한장의 종이를 완성시키며, 섬유에 일정한 형태가 없다.
장점: 기술습득이 외발보다 쉬우며 생산성이 높으며 큰 종이를 뜰 수 있다.
단점: 종이가 질기지 않으며 가로와 세로의 강도차이가 큼
동양에서 종이는 서기 105년 한대에 "채륜"에 의해 시작 되었다고 하는데요, 나무 껍질,삼베,그물 등을 찧어서 얇게 펴 말린 종이에 본인의 이름을 따 "채후지"라 부른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이때의 종이는 닥나무 종이가 아니라 삼베나 모시를 원료로한 "마지"였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4세기경 제지술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고려시대부터 제지술과 인쇄술의 발달로 질 좋은 "한지"를 제작하여 수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채륜
후한의 환관으로 최초로 종이를 발명한 인물. 채륜 이전에도 원시적인 형태의 종이가 존재했지만, 이때의 종이들은 포장지의 개념으로 문자를 기록할 수 있는 종이는 아니었다고합니다. 채륜이 처음으로 발명한 것은 제지법 중 혼합재료를 섞어서 펄프로 압축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인데요, 단순 "종이"의 발명이 아닌, 문자를 기록할 수 있는 "종이"를 개발한 것입니다. 이후 채륜의 제지법은 종이를 만드는 표준 방법이 되었고, 세계 각지로 전해졌습니다.
한지의 생산은 동양의 회화 양식을 바꾸어 놓는 큰 계기가 되었어요. 한지는 먹의 스며듦과 번짐이 좋아 수묵화를 발전시키게 됩니다. 당시 동양의 그림은 비단이나 불화,벽화, 채색화가 주를 이루었다가, 고려시대 후기부터 활발한 한지의 생산으로 수묵화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한국화와 뗄 수 없는 4개의 재료들이 있습니다. 바로 문방사우라고 불리는 [종이, 먹, 붓, 벼루]인데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때의 4가지 친구, 즉 곁에 늘 두게 되는 문구들을 뜻합니다. 한국화 재료 공부 시리즈 1,2편을 통해서 먹과 한지(종이)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전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는 “한지”, 2탄에서는 만드는 과정과 종류, QnA 소개로 돌아오겠습니다. "먹"편은 이전 게시글을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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