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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Nov 09. 2021

시골에서 프로당근러 되기.

당근으로 물건 팔아서 육아용품 장만하기




"당근으로 물건 팔아서 젖병 소독기 사자."

그러니까 사건의 발단은

지난 주말 다녀온 베이비페어에서였다.

모유수유 수업을 듣기 위해 남편이랑

산모교실에 처음으로 같이 참가를 했는데,

교육이 끝나고 마지막엔 경품 추첨 시간이 있었다.

참가자는 적고 경품은 많아

50명 모두에게 1개씩 돌아간단다.

물티슈 한 박스부터 시작해서

두유, 젖병, 배냇저고리 등 수많은 경품이 있었고

그중에 마지막 1등이 유팡 젖병소독기,

젖병뿐만 아니라 치발기나 장난감, 각종 이유식기 소독에도 유용하다는 젖병소독기가

예전부터 가지고 싶던 참이었다.

"일등 되자 꼭."


꼭 가지고싶다는 의지의 낙서ㅋㅋㅋㅋㅋ


거의 추첨이 끝나가는데도 아직까지

내 이름 적힌 종이는 뽑히지 않았고 그 사이

기대는 커져만 갔다. 이제 남은 경품은 단 3개.

두 번만 무사히 넘기면(?) 젖병 소독기다.

다음은 유명한 브랜드의 힙시트 아기띠,

좋은 상품이지만 아기띠는

신생아 아기띠도 지인에게 받았고

아기가 좀 크면 쓰는 힙시트 아기띠까지

벌써 세 개나 있어서 없어도 된다 생각했던 찰나,

"김아라님 축하드립니다"

아...... 걸려 버렸네

1등이 가장 원하던 젖병소독기,

아니면 2등 상품 아기매트도 괜찮았는데.

물론 3등도 대단한 거지만

우리에게 필요한게 아니라서 아쉬움이 가득했다.


산모교실을 마치고 대구에서 함양으로 왔다.

"불필요하게 가지고 있는 물건들 팔아서

그 돈으로 차밍이 젖병소독기 사주자."

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하여 시작된 당근마켓.

그동안 아기 출산용품 사려고

당근마켓을 수없이 들락날락거렸지만

(그래서 얻은 건 원목 아기침대와 스탠딩 욕조, 기저귀보관함. 딱 필요한 것만 최소한으로 샀다.)

판매를 해보기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팔 물건들을 모색해서 하나하나 리스트 정리했다.

대구 작업실에서 쓰던 라탄 테이블과 의자 세트부터 시작해서 벽거울, 리클라이너 의자 등등.

물건들을 공들여 하나하나 사진 찍어 올렸다.

가장 먼저 올린 라탄테이블 의자 세트는

올리자마자 구매하신다는 분이 나타나서

당장 퇴근 후에 약속을 잡았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5단 식품건조기도 저렴하게 올렸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예약이 잡혔다.

시시각각 반응이 나타나니 신나고 재밌었다 히히

그동안 당근구매자로서 많은 판매글을 보면서

나름의 노하우를 배우고 익혀온 게 도움이 되었다.

판매노하우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사진이 반이다.

썸네일이 좋아야 영상을 눌러보는 유튜브처럼

첫 이미지가 클릭을 좌우한다.

그러니 약간의 사진빨과 보정은 필수다.


배경이 한몫한 제품샷


2. 스토리텔링을 잘해야 한다.

그냥 단지 팝니다가 아니라

이러저러해서 샀는데 무슨 이유로 팔게 되었는지,

나름의 스토리.


남편의 잔소리로 인해 팔게 된 아이 :P


3. 사이즈 부피를 확실하게 명시해야 한다.

사이즈 기재는 필수.

사진에서도 크기감이 느껴지면 더 좋다.

이유는 뒤에 가서 쓰겠음.


4. 파려는 상품의 현재 새 상품 가격을 검색 후 가격 책정을 해야 한다.

아이들이 가지고 놀 수 있는 나무공작상자 미개봉 새 상품을 판매하려고 하는데, 단순하게 5천 원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올리기 직전 검색을 한 번 해봤더니 무려 5만 원이 넘는 제품이었던. 자칫하면 1/10도 채 안 되는 가격에 올리는 바보짓을 할 뻔했다.


가격 검색 안해봤으면 어쩔 뻔 했나.


5. 네고 요청에 바로 승낙하지 말자.

쉽게 네고를 해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제 값에 구매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시골에서 당근을 해보니 느낀 점은,

생각보다 판매성사율이 높다는 것.

올린 13개의 상품 중 5개가 당일에 바로 팔렸다.

도시에 비해 빈번하게 올라오지 않는 이유도 있고,

또 도시에서 흔한 물건이 여기서는 희소아이템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케아나 코스트코 같은 대형마트의 물건이 판매가 잘 된다.


하지만 좋은 점만 있겠나.

다소 억지 쓰시는 분들도 계신다.

한분은 리클라이너 의자를 와서 실물을 보고 결정하겠다더니 도착 전 미리 시간 알려달라 해도 말없이 불쑥 와서 집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는 구매는 하지 않고 막말과 함께 그냥 가던 아저씨...^^ 그날 밤 또 다른 물건에도(이번엔 겨우 몇 천 원짜리 물건을) 또 와서 보고 결정하겠다기에 거절했다.


또 다른 한 분은 직접 가져 다 달라고 거의 생떼를 썼다. 식당 하는데 수제원목도마가 필요하다나. 마침 남편과 저녁 먹으러 나가는 길에 근처를 지나게 돼서 도마를 챙겨갔다. 그런데 상자를 내밀자마자,

"아니 왜래 작노!" 라며 절레절레하는 나이 많은 아주머니. "제가 가로 세로 크기 상세하게 다 적어놨었는데요." 해도 "아휴, 못 봤제 식당에서 못쓴다" 하면서 헛걸음하게 만드셨던 :-( 앞으로는 시골 어르신들을 생각해서 수치로만 적을 게 아니라 크기 비교대상(예를 들면 생수병이라던지)을 상품 옆에 놓고 사진 찍어야겠다.


휴지통이 너무 많아 예쁜 무소음 페달 휴지통 하나를 올렸다. 대뜸 깎아달라 하는 분께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네고해드리던 찰나, 다른 분이 제 가격에 구매하신다고 했다. 그러니 네고 요청에 즉각 승낙하는 건 하지 말아야겠다는 걸 배웠다.


테이블과 의자를 사러 거창에서부터 온 부부. 아내는 방석을 챙기고, 그냥 아내 말에 운전하고 따라왔을 남편은 테이블과 의자를 번쩍 들고서 차로 가는, 그런 두 분의 뒷모습이 보기 좋아서 사진을 찍을 뻔했다. 평점과 함께 판매후기를 남겼더니 돌아온 구매후기. 집 2층에 놓았는데 잘 어울린다는 사진과 함께 보내주셨다.


당근으로 첫 판매하고 번 돈


당근마켓으로 어제 하루 번 돈이 10만 원 남짓.

단순히 물건을 팔았다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 자원순환에 일조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언젠간 쓰겠지 하는 마음에 계속 가지고 있었으면 끝내 사용 안 하고 결국엔 버려졌을 그런 물건들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가서 유용한 쓰임을 다한다는 사실이.



부디 잘 쓰여지기를-



작은 꿈이 있다면 함양에서 벼룩시장을 열고 싶다. 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garage sale처럼.

대도시의 도심이 아니고선 주택이 많은 미국에서는 주거환경 덕분에 집에 차고 겸 창고로 쓰이는 garage가 많다. garage sale은 바로 이 공간에서 자신이 쓰지 않는 물건들을 내다 놓고 동네이웃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 흥정을 벌이는 행사를 말한다.

마당에서 수레나 돗자리를 이용해 각자의 물건들을 물물교환도 하고 사고팔면 얼마나 사람 냄새나고 정겨울까. 이렇게 또 함양에서의 버킷리스트가 늘어간다.


스토리를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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