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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Oct 27. 2021

조금 뒤처지면 뭐 어때.

시대에 역행하는 남자와 여자




나는 그 흔한 주식투자 안 한다.

20대 중반 서울의 좋은 직장을 때리치우고

고향인 대구로 내려왔고. 그러고도 모자라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곳에서의,

나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새로운 곳에서의

(그중에서도 시골의) 삶을 늘 꿈꿔왔다.


남편 역시 이제는 주식 안 한다.

서울에서 인턴 생활 이후

대기업 취업 준비를 하다가

돌연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었다.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왔고, 이제는 전국을 누빈다.


두사람은 요즘 젊은 사람이면 다한다는

주식 투자도 안 한다. 부동산에도 관심이 없다.

이런 남자와 여자가 만났으니 어떻게 되었을까.

결혼하고 아예 시골로 정착할 꿈을 꾸게 되었다.


그러나 늘 발목 붙잡던 건 남편이 우리의 터전이 될 함양으로 좀처럼 발령이 안나는 것. 처음엔 동쪽 끝으로, 그러다 2년 후에는 서쪽 끝으로 발령이 나서 우리는 연애시절부터 줄곧 200여 킬로미터가 넘는

장거리 생활, 주말 부부를 하고 있다.


본청에 근무하면 진급도 빠르고 호봉도 더 빨리 오른다. 처음엔 내가 "젊을 때 몇 년 본청 근무하다 오는 건 어때? 내가 같이 대전 생활할게." 라며 지원해보라 했지만, 남편은 안 그러겠단다. 결혼 전 더 높은 급수의 공무원 시험도 다시 치려 했던 사람인데, 막상 결혼하고 나서 빠른 진급 욕심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보다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소중해졌다고. 앞으로 아기가 생기면 더욱더 그럴 것이라 했다.


부산에 있던 그의 친구들은 하나 둘 서울로 취업해 가거나 결혼 터전을 수도권에서 일구고 있다. 또 많은 내 대구 친구들은 서울에서 생활한 지 10년이 넘어가면서 내려올 생각을 아예 안 한다. 그런 주변 지인들 사이에서, 우리는 좀 많이 다른 길을 가고 있다.


편하고 익숙한 고향마저 벗어나,

평생 살아본 적 없는 지리산 자락에 간다니.

거기다가 임신을 하고 보니 그곳은 산부인과조차 없는 분만 취약지역이란다. 병원을 가려면 진주나 대구까지 가야 한다. 대신 좋은 점은 필요한 경우에 구급차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정도?


주변에서 다들 말린다. 연고지를 떠나, 대도시가 아닌 곳에서 장사를 계속한다니. 게다가 아기까지 낳아 키운다고 하니. 지인들은 염려 섞인 말로 그냥 대구에 있는 게 낫지 않겠느냐 한다. 근데 나는 믿는다. 함양이 잠재가치가 무한하다고. 그리고 아이 건강이나 교육 측면에 있어서도 훨씬 더 좋을 것이라고. 일단 알레르기성 비염•결막염이 있는 나조차 평일에 대구에 있을 때는 늘 아침마다 코에서 피가 나고 심한 비염에 시달리는데, 함양만 가면 코와 눈이 맑아짐을 느낀다. 그러니 아기한텐 더욱이 좋은 환경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주 주말이면 부모님께 출필곡 반필면을 한다. "함양 가서 힐링하고 돌아올게요" :-P

그런데 어쩌나. 함양에 새집은 지어지고 있지만

출산일은 머지않았고 남편의 발령은 빨라야 출산하는 내년 1월에야 가능할 텐데. 그전까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저 함양 1/2 살이에 대해 기록해나갈 브런치의 새 매거진을 어제 만들어두었다. '우린 조금 뒤처지기로 했습니다.'라는 주제로.


그런데 오늘 늦은 오후였다.

일하고 있던 남편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나 이번 주말에 출근해야 할 것 같아"

"왜 일이 많아?" 그랬더니,

"응 그리고 내일 백신도 미루어야 되겠어."라고.

원래 2차 백신을 맞는 내일부터 연차를 써서

목금토일 4일을 쉬기로 했던 그.

나도 함양에서 프로그램 참여가 있어 내일 가기로 했던 터라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그의 말,


11월 1일 자로 발령 났어. 함양으로


응????? 발령이라뇨? 갑자기?

곧 인사발령 공문을 보여주었다.

정확하게 인사발령 난 게 맞았다. 세상에, 그렇게 원했던 함양으로 이렇게나 갑작스레 나다니. 얼떨떨했다. 곧 양가 부모님께도 알렸고, 다들 기쁨과 축하의 인사를 해주셨다.


함양으로 옮기면 앞으로 그는 집에서

단 10분 거리의 직장을 다니게 된다.

3년 넘게 주말 지나면 이른 새벽부터 2시간 가량

 길을 출근하고, 오래되어 낡고 좁은 관사에서 룸메들과  5 타지 생활하는 마음이 많이 짠했는데 이제는 온전히 우리집에서, 가까운 거리로 출퇴근한다니!!!!! 신난다.

나 역시도 아직은 구상만 하던 함양으로의 일 터전을 한걸음 더 가까이 이룰 수 있게 됐다.


간밤에 꾼 꿈이 어쩌면 남편의 발령 예지몽이었나.


조금 느리거나 뒤처지면 어떠하랴.

남들과 다른 방식이면 또 어때.

우리만의 보폭과 속도로,

그런 인생이면 충분하다.


많은 변화가 있어왔던 요 몇 년.

2020년은, 결혼을 했다.

2021년은, 함양으로 터전을 절반 옮기고

뱃속에 상아부부 2세 차밍이를 가졌다.

2022년은, 차밍이가 태어나고

온전히 함양살이를 하게 될 예정이다.


계속해서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우리의 앞날,

혼자에서 둘이 되고

두 사람이 다시 세 사람으로 되어가는 중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상아 패밀리 어디 한 번 잘 살아봅시다.





남편의 메시지.                                                                             2022년 좋은 일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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