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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Oct 12. 2021

1/2 시골살이

귀촌을 하는 중입니다.





나는 천상 도시 사람이다.

태어난 곳도 인구 250만이 넘는 대도시,

자란 곳도 몇 년 서울러 했던 것 말고 변함없었다.

심지어 외가댁도 서울, 친가도 대구.

그런 내가 돌연 시골이라 불리는

함양군으로 전입하게 된 것은 어찌 된 일일까.


함양과의 첫 인연은 2008년쯤 거슬러 올라간다.

아침저녁으로 일교차 커지는 이맘때였다.

"상사화 보러 가자!"는 아빠 말에

따라나선 식구들이 당도한 곳은 함양 상림공원.

마치 바짝 올린 촘촘한 속눈썹을 닮은

꽃무릇이 지천에 피어있던.

그 강렬한 빨강이 유일한 함양에 대한 기억이었다.


사실 꽃무릇은 상사화가 아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인연은 2014년,

전남친 그러니까 현남편과 지리산 천왕봉엘 올랐다.

남편은 쏟아지는 별을 보여주겠다며 그 당시 등린이였던 나를 무슨 자신감으로 끌고 갔을까. 어쨌든 지리산 대피소에서 묵으며 1박 2일 천왕봉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 그때가 지금까지 50여 번 함께 산을 오른 우리의 첫 동반산행이었다. 지리산이 자리하고 있는 4개군(구례, 하동, 산청, 함양) 중에 한 곳이 함양이다.


우연히 만난 사진작가분이 찍어주신 그때의 우리,
그리고 천왕봉에서의 일출


마지막 세 번째 인연이 3년 전, 남친과 재회하고

어느 여름날 그가 나를 친가이자 외가 동네로 데려갔다. 그곳이 바로 함양이었다. 그때 나는 느꼈다.

여기서 살고 싶다고. 이곳에서 에어비엔비를 운영하며 살면 행복하겠다는 막연한 꿈을 꿨다.


그해 여름날의 함양.


우연이었을까 운명이었을까.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함양군민이 되었다.


전입신청하고 받은 문자. 나 정말 함양사람 된거야?


지금은 1/2, 절반만 귀촌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동쪽 끝자락에 있던

남편이 지원한 함양으로 발령이 안 나고

엉뚱한 서쪽 끝자락으로 발령 났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연애시절부터 줄곧

부산~대구 장거리 연애를 해왔던 남편과 나는

결혼한 지금은 더 장거리 생활을 하고 있다.

누군가는 그럼 나더러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서 살면 안 되냐 묻겠지만 나는 터전이 중요한 자영업을 하고 있는 터라 쉽게 옮기질 못하고 계속 대구에 머물고 있다.


그런 우리에게 함양은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오작교 같은 곳.

금요일 밤이나 토요일 오후가 되면

퇴근한 그와 내가 각자 정읍에서, 대구에서

딱 중간 지점인 함양에서 만난다.

그리고 월요일 새벽이 되면 다시 각자의 터전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우린 주말부부 라이프와 동시에

1/2 시골살이를 경험하고 있다.


정읍~함양~대구. 함양이 오작교일 수 밖에 없는 이유


천상 도시 사람인 내가,

벌레라면 질색팔색 기겁을 하고

어두움(밤)을 무서워하는 내가 과연

아는 이 하나 없고 해진 후엔 온통 깜깜한 어둠뿐인

이런 곳에서 과연 살 수 있을까? 의문이었지만 웬걸, 인간의 적응력이란 놀랍도록 뛰어나다.

벌레는 여전히 손으로 잡진 못하지만

보고 소리 지르거나 펄쩍 뛰는 일은 없고,

(자주 나타나는 청개구리나 큰 거미 정도는 이제 귀여워 보이기까지 한다.)

여전히 밤은 무섭지만 해지면 창문과 문 꼭꼭 잘 걸어 잠그면 되고,

주변에 아는 지인 하나 없어도 시시각각 변하는 주변 풍경에 심심할 겨를이 없다.

그리고 뭣보다 도시에서 살 때보다 2.5배는 더 부지런해진다. 눈도 일찍 떠지고, 할 일도 많다.

어쩌면 내 뼛속엔 천상 시골사람 기질이 있었던걸 지도.


현재는 비어있던 시골집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곧 온전한 우리집이 지어지고 난 후

내년 상반기 남편이 함양으로 발령이 나면,

내가 작업실을 함양에서도 운영하게 되면

그때는 365일 24시간 온전히 귀촌생활할 수 있겠지.


앞으로의 다가올 하미앙라이프에서 이루고 싶은 몇 가지가 있다. 원하는 것(꿈)이 있으면 말해야 하고, 써 놓아야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그러니 민망해도 적어봐야겠다.



첫 번째, 내 손으로 직접 키운 작물로 제품을 만들고 식탁에 올리는 것.

-남편이 올여름 토마토, 옥수수, 가지, 수박, 고추 등을 심고 수확해서 간접경험을 했다.


두 번째, 오랜 꿈인 대형 반려견 키우는 것.

-기다려라 골댕아! 그런데 어쩌면 한 번도 생각 못한 진도견이 될지도...?


세 번째, 사람들이 머물다 갈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하는 것.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며 손님들에겐 내가 만든 잼이 포함된 브런치를 직접 제공하고,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

(남편은 그가 잘하는 산대장 역할을, 나는 내가 잘하는 잼머+를)




2022년이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다.

두사람에서 세사람이 되고,

1/2에서 온전한 하미앙라이프를 하게 되는

그날까지 burning-!



종종 새가 날아와 문을 두드린다.
집앞 산뷰.
집앞 리버뷰.
집에서 가까운 상림숲, 숲세권이다.
최근엔 집앞에서 반딧불이도 여러마리 발견했다.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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