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만 준다 했는데

날 이만큼이나 강한 사람으로 본 건지 묻고 싶다

by 초원



신은 인간에게 선물을 줄 때
시련이라는 포장지에 싸서 준다.
선물이 클수록 더 큰 포장지에 싸여 있다.

영화 「딕 트레이시」에 나온 말이다.



친구들이 ‘너 인생은 시트콤'이라고 할만큼

인생이 다사다난, 파도가 많이 치는 편이다.

절대 경험주의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터널의 끝엔 광명이 비친다를 믿고 살아왔는데

그런 나에게 최근 일주일은 너무나 버거웠다.

운전중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또르르 흐를 정도로 한계에 달했다.


아이의 유치원 입학.

1월 1일생이니 6살이나 다름없는 5살이고, 그동안 생활한 어린이집이 이 아이에게는 작은 울타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달 전 입학 설명회날, 다른 어떤 아이보다 부모인 우리와 잘 떨어져서 시간을 보냈다. 블록놀이 삼매경에 빠져 집에 가자해도 듣질 않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최후의 3인 중 하나였다.


"선률인 신입생 아니라 재원생 같아요" 라던 어느 선생님의 말, “유치원 생활 적응은 걱정 없겠는데요?" 라던 친구 엄마의 말. 그래서인지 유치원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고 아이의 생활이 기대가 컸다.


대망의 입학식 날이 되었다.

입학식을 마치고 부모님은 먼저 귀가하고, 아이들은 오후 4시 반까지 정상 생활을 모두 마쳤다. 하원버스 타고 집에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예상하지 못한 전화가 왔다.


"어머니~
오후 간식 먹을 때 잠깐 일이 있었어요.
선률이가 먼저 다 먹고 일어나는 순간
옆에 친구가 팔을 잡아당겼는데
많이 아픈지 울었습니다"

"어지간해서는 아픈거 참는데... 많이 울었나요?"

"네. 좀 많이 한참 울었어요. 보건실 데려갔는데 이상 없다 하셔서 달래주었고 이젠 괜찮아졌어요"

'좀 많이 한참'이라는 단어에 꽂혔다.

내 아이는 신생아 때부터 예방접종 주사를 양쪽 어깨에 맞아도 울지 않아 의사선생님과 간호사들이 감탄해왔다. 아플 때도 좀처럼 기운이 넘치고, 어지간한 통증을 잘 참고 넘기는 애다. 그런 선률이가 친구의 장난에 울었다니. 그래도 괜찮아졌다는 선생님 말을 믿고 십여분 후, 집 앞에서 하원하는 아이를 만났다.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는 나를 보곤 “엄마 아까 친구가 잡아당겨서 팔이 많이 아파요"라 했다.

불안했던 내 예상은 적중했다. 팔이 빠진 거였다. 3개월 전쯤 할아버지랑 침대에서 놀다가 왼쪽 팔이 빠진 전적이 있었다. 그때 의사선생님은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자주 빠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 당부했었다. 이번에도 역시 그 팔이었다. 집에 왔는데 아파서 팔을 살짝 들어 올릴 수조차 없어했다. 안아줘도, 외투를 벗기려 해도 너무 아프다며 결국 엉엉 울어버리는 아이였다. 병원에 가서 빠진 팔을 맞추려 했지만 이미 병원들은 다 닫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응급실에는 아이 팔을 맞춰줄 의사가 없었다.


왜 유치원 보건실선생님은 괜찮다 하셨던걸까. 팔을 다치자마자 전화 주셨다면 제때 병원에 갈 수 있었을텐데. 으레 입학식날 적응 하지 못하고 우는 다른 아이들의 울음과 뒤섞여 선률이의 팔이 빠져 우는 울음이 별거 아니라 치부하셨던 것 같다.



버스에 내려서 일어난 일을 설명하던 아이



담임선생님과 방과 후 선생님 두분이 번갈아가며 죄송하다 전화 주셨지만, 그러면 뭐하나. 빠진 아이의 팔은 끼우지 못하는데. 결국 팔 빠진 그대로 밤을 보내야 했다. 밤새 팔이 아파 끙끙 대며 뒤척이는 모습이 너무나 짠했다. 다음날 아침 오픈런으로 병원에 도착해 팔을 맞추고 나서야 아이는 웃음을 되찾았다. 의사선생님이 어깨까지 감아준 간이 붕대를 하고, 유치원에 들여다 보냈다.


그런데 입학식날 기억이 문제였을까.

다음날, 유치원에 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식탁에 아침 먹으러도 잘 오지 않고,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장난감 방에 들어간다. 아이와 한참을 실랑이를 하다 버럭 소리도 지르게 되었다. 현관에서 외투를 안입으려는 아이와 대치하며

“빨리 안 갈 거야!???" 재촉하는데,

"어딜 가는데요?" 모른 척 묻는 아이.

진짜 몰라 묻는 게 아니라 딴청을 피우는 게 분명했다. 힘겨운 등원준비를 마치고 간신히 차에 태워 시동을 켜는데, 순간 뒷좌석 카시트에 앉은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절규에 가까운 울음을 터트렸다. 떼를 쓰는 수준을 넘어서, 경기를 일으키며 오열했다.


"으아아악 유치원 안 갈 거야!!!!!!"



어젯밤이었다. 잠들기 전 침대에서 나눈 대화.

"세. 종. 대. 왕"

"우와~ 한글 만드신 세종대왕 알아?" 했더니

"시아도 세종대왕 안대요" 그러곤 잠시뒤,

"유치원 영영 안 갈 거예요" 이러던 아이.

순간 적잖이 당황스러웠지만

그래, 자고 일어나면 또 생각 바뀌겠지 넘겼다.


그런데 아침에 정말 유치원 가지 않으려

늑장 부리고 준비 하지 않다가 반복되는 엄마의 채근에 준비는 했지만 집을 나서 차 시동을 킴과 동시에 터진 것이다. 어르고 달래고, 설득하고, 윽박질러봐도 소용이 없었다. 하필 그날은 오전 오후 미팅이 2건이나 있던 날. 엄마랑 계속 같이 있을 거라는 애한테 가장 무서운 무기인

"너 그럼 낯선 이모삼촌들이랑 계속 만나야 한다?"

-아이는 낯가림도 심하고 예민해서 낯설고, 많은 어른들을 만나는 걸 극도로 피한다. 이러면 체념하고 유치원에 간다고 할 줄 알았지. 그럼에도 괜찮다고, 기어코 엄마 따라간단다.


결국 그날 나는 아이와 함께 일과를 보내야 했다.

오전은 그래도 가벼운 모임이라 동행하였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장소가 책방이어서 계속 책을 읽어달라는 아이에게 수권을 읽어줘야 했고. 혹시 마시던 초코라떼라도 책에 쏟을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전전긍긍 도무지 모임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거창, 산청, 합천에서 온 손님들을 모시고 내가 함양의 관광자원들을 가이드해드려야 하는 일정. 이 아이를 데리고서는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단다. 친정엄마가 오늘은 근무를 하지 않는 날. 이분들을 만남과 동시에 구세주가 와서 냉큼 납치해 가주었다. 할렐루야!

하지만 가이드를 하면서도 내내

"영영 안 갈 거야" 라던 아이의 말이 자꾸만 불안하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서 내일도 안 가면 어떻게 하지? 모레는?'

황소띠라 그런지 고집이 황소 못지않다. 자기가 마음먹은 것은 곧 죽어도 지키고만 마는 아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주말 동안의 남편과 나와 할미들과의 합동 설득, 가스라이팅, 당근투척 등등의 온갖 노력으로 겨우 보내는 데에 성공했다. 나는 선률이가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점을 노려 “어린이집을 졸업해야 유치원에 갈 수 있는 것처럼 유치원을 졸업해야 초등학교를 갈 수 있고, 또 초등학교를 졸업해야 중학교, 고등학교도 갈 수 있고, 그 다음에 대학교에 가야 진정한 어른이 된다.“ 라고 설명해 주었다. 대구할미는 책장 한켠 뽀얗게 먼지 내려앉은 30여 년 전 나의 유치원앨범까지 찾아 꺼내서 “이거 봐. 엄마도 이렇게 유치원에 나왔다? 엄마는 무슨반? 민들레반, 선률이는? 풀내음반!" 보여주었고. 부산할미는 "일주일 동안 유치원 안 빠지고 잘 가면 선률이가 받고 싶은 선물 사줄게."라 하셨고. 남편은 키즈카페를 가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내일 유치원 등원버스 타고 잘 간다 약속하면 화랑 놀이터 데려가 줄게"하고 딜을 했다.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모여 월요일 아침, 아이는 힘겹지만 용기를 내어 마침내 등원을 했다.


그래서 시련이 모두 지나갔냐고 물으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시련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글이 길어져 2탄으로 이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