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왜 이렇게 급할까요

교실에서 들은 그 한 문장

by 나오

총회는 무사히 끝났지만, 아직 학부모 상담이라는 가장 큰 산이 남아 있었다.


상담 당일, 학교가 코앞인데도 괜히 단정하게 차려입고 일찍 집을 나섰다. 복도에서 잠시 기다리다 시간에 맞춰 교실 문을 두드렸다.




학부모 상담은 교사에게도 정말 긴장되는 순간이다.

여러 번 해왔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특히 대면 상담은 얼굴을 마주해야 하기에 표정을 숨길 수 없고, 말 한마디에도 신중해진다. 아이에 대한 생각을 미리 정리해 두고, 학교생활과 수업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도 다시 점검하게 된다. 어떤 질문이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학년 초 상담은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교사도, 학부모도 나눌 이야기가 많지 않다. 서로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인사를 나누는 자리인 셈이다. 아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친구들과 잘 지내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를 중심으로 상담이 흘러간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중학교의 경우 1학년은 대면 상담이 많은 편이고, 2, 3학년은 전화 상담이 주를 이룬다. 아무래도 신입생 시기에 학부모님의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교사 입장에서는 전화 상담이 조금 부담이 덜하다. 대면 상담은 그만큼 더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학부모님을 직접 뵙게 되니 기억에도 오래 남고, 그만큼 말의 무게도 커진다.



00 이가 우리 반에서 글씨를 제일 못써요.


담임 선생님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아이 이야기가 시작됐다. 아이의 글씨가 좋은 편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순간 당황했지만, 곧 이유를 듣게 되었다.



성격이 급해서 그래요.

할 일을 재빨리 끝내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거든요.

글자도 천천히 쓰면 잘 쓸 텐데
빨리 쓰려니까 그래요.



빨리 써서 글씨가 엉망이 되고 있는 거라곤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아직 입학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아이의 성향을 정확히 보고 계셔서 놀라웠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종종 "조금만 천천히 해보자"라고 이야기해 주신다고 하셨다. 머리가 좋아서 빨리 끝내고 다른 것을 탐색하고 싶은 아이라고 덧붙여 주셨다.


연신 감사 인사를 드리고 교실을 나서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혹시 수업을 방해하거나 친구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많았는데, 그런 문제는 전혀 없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안도감이 들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내 자식이라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매일같이 체감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교사로서 상담을 할 때도 점점 더 조심스러워진다. 그리고 '그럴 수도 있다'라고 이해를 하게 된다.


물론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처럼 아이를 보면 부모를 그대로 닮은 부분이 정말 많다. 특히 중학생쯤 되면 성향과 개성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도 교사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지점이 분명 존재한다.


도대체 이 아이는 왜 이럴까?
누구를 닮은 걸까?


가끔 남편에게 묻게 된다.


"솔직하게 이야기해 봐. 자기 어렸을 때, 우리 애 나이쯤에 어땠어? "


남편은 너무 어릴 때라 잘 기억이 안 난다며 얼버무린다. 재차 물으니,


"아니... 내가 활발하긴 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지. 자라면서 많이 사회화된 거긴 해. 얘도 좋아지겠지~ "


아이를 낳고 나서야, 나는 유전의 힘이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사람의 타고난 성향보다 '교육', 그러니까 '환경'의 영향이 더 클 거라고 확신했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아이가 장난감을 집던 순간, 너무 쉽게 무너졌다.


나는 아이에게 자동차와 인형을 나란히, 정말 나란히 제공해 주었다. 심지어 크기도 색도 비슷했다!


아이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순식간에 자동차를 집더니 하루 종일 그것만 가지고 놀았다.


임신 기간 내내 조산기로 누워 지내야 했던 나는, 아이에게 줄 인형을 직접 만들었었다. 아이가 자동차를 선택했을 때, 저 멀리 던져진 인형... 바로 그 인형이 내가 한 땀 한 땀 만들었던 그것이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모든 걸 내려놓았다.


나는 아이가 자동차도, 인형도 고루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기대였을 뿐이었다. 아니 착각이었다. 남자애가 자동차와 파란색을, 여자애가 인형과 분홍색을 좋아하는 건 사회적으로 주입된 게 아니었다. 그냥 타고난 성향이었던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교육'으로 무언가를 만들 순 없다.


'education'이 '밖으로 이끌다(educere)'에서 비롯된 단어라는 것, 교육학 첫 시간에 배웠던 바로 그것. 아이의 타고난 성향이 긍정적으로 발현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이 교육인 것이다. 없는 걸 주입할 순 없는 노릇이다.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어도,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는 말처럼, 아이에게 자동차와 인형을 함께 제공해 줄 수는 있지만 선택은 아이의 몫이다.


성격이 급하고 호기심 많은 아이의 성향을 바꿀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이 더 좋은 방향으로 발현될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도 결국은 하나를 향한다.


아이의 바람직한 성장


교사도 학부모도, 우리가 바라는 건 이 한 가지다. 종종 학교와 가정, 학생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서로의 입장 차와 오해, 감정 등이 쌓인 결과다.


조금이라도 의문점이 들거나 서운함이 있으면 그때그때 풀고 가는 게 좋다. 쌓아두면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이 오기도 한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려는 노력. 그리고 우리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결국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아이가 자기 모습대로, 잘 자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