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인 삶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된 메시지다.
민족주의나 애국심에 호소하지 않아 좋았고 그러다보니 영화 전반에 가볍고 유쾌한 느낌이 깔려있다.
허구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사실성을 살렸다는데 스토리 자체는 전반적으로 무난하게 흘러간다.
(아래 내용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진 출처: 다음영화)
특히 중간 중간 귀에 꽂히는 등장 인물들의 대사가 좋았다.
일본에서 대역죄로 기소된 박열은 유명세를 얻고 싶어 일을 벌였냐는 취조 질문에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산다'고 이야기한다.
또 최종 재판에서 사형 선고가 내려진 후 '육체는 죽을지라도 정신은 살아있을 것' 이라 외친다.
그와 운명을 함께했던 후미코 역시 박열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그녀는 옥중에서 지나간 자신의 삶을 회상하며 '움직인다고 해서 살아있는 건 아니다. 박열과 동지로 뜻을 함께 했던 3년 동안 만이 진정한 나의 삶' 이라 읊조린다.
기존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와 차별화되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후미코는 일본인이지만 권력에 대항하는 젊은이로 한국인인 박열과 뜻을 함께 한다. 영화는 '한국 대 일본'이라는 틀을 벗어나 '부당한 권력과 폭력 대 저항과 자유정신'으로 짜여져 있다. 이는 비단 영화에서 다뤄진 아나키즘, 독립운동 뿐 아니라 이후의 민주화 운동, 근래의 촛불 시위까지 '자유와 평등을 찾고자 하는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또 한 가지, 비참하고 슬픈 시대적 분위기를 최대한 '위트와 낭만'으로 그려내고자 노력한 점이 인상적이다. 주인공들이 자진해서 웃으며 감옥에 들어가는 모습이나 사형 선고를 앞두고도 유머와 낭만을 잃지 않는 자세에서 치기 어리다기보다는 자신의 신념을 멋들어지게 표현할 줄 아는 젊은이가 보인다.
대학 시절, 각자의 생각과 느낌을 미술 작업을 풀어냈던 우리 과의 구호는 '주체 회화'였다. 당시엔 아무 생각없이 수없이 외쳤던 단어인데 생각해보면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낸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또 이를 존중해주었던 분위기에 아주 딱 맞아 들어가는 구호였다. 비단 이것이 특정 전공이나 직업에 있어서만 해당되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하고 나이를 먹어 가며 또 하루를 살아내는 나는 과연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걸까.
<박열>은 무엇보다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아무 말 못하고 또 남의 시선 때문에 자신을 죽이며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된다.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는 후미코의 그 확신이 부럽고 또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