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물을 대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친구 중 유독 물건들을 소중히 다루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의 핸드폰은 구형이다. 핸드폰이 늙어 죽을 때까지 친구는 함께할 모양이다.
관절이 뻑뻑해지고 느릿느릿해져 노인이 된 핸드폰이 불편해 보이건만 그냥 쓰겠다 한다.
친구는 물건 하나에도 마음을 담는다. 함부로 버리는 물건이 없다.
친구는 사람을 대할 때도 매한가지 태도여서, 정말로 많은 사랑과 신뢰를 얻고 있는 그런 친구이다.
2. 사물을 대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그림을 대하는 방식을 생각해보았다. 그림을 대하는 것은 사실 어렵다. 시각적인 영향력은 꽤나 강렬한 것이어서 사실 작품이라는 시각 메시지를 받아들이기에는 누구나 시간이 필요하다. 단지 1차원 적인 감각으로 느끼는 것, 그 이상의 깊이와 만남을 요구하는 현대미술작품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
3. 미술교육학 박사 박영애 씨는 <의미 만들기의 미술>이라는 책에서 작품을 대할 때,‘명예 인간’으로 대우하라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냥 인간도 아니고 왜 ‘명예 인간’이라 했을까... 생각해보니, 존중해주는 마음으로 작품을 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꺼라 생각된다. 박영애 씨는 명예 인간, 즉 작품을 마주 대할 때 이러한 질문들을 제시한다.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너는 무엇에 대한 것이니?"
"너는 무엇을 어떻게 해서 나의 지식에 보탬을 줄 수 있니?"
"너는 인간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나의 생각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니?"
4. 사실 화가가 그냥 그리는 법은 없다. 점 하나, 선 하나에도 ‘의미’는 부여된다.
그래서 보는 사람들은 그 숨겨진 의미를 보물찾기 하듯 찾아낼 수 있다. 다만, 해석은 열려있어서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도출해 낼 수 있으며 , 그것으로 담론과 토론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5. 여기 비야 셀민스(Vija Celmins)의 회화작품이 있다. 사물을 대하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진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실에 있는 물건들을 그렸다고 하였다. 차분한 색감과 담담하면서 세심한 작가의 붓질이 느껴진다. 화면의 정중앙에 '적당한' 크기로, 단 한 개의 물건만이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스탠드는 마치 두 눈이 있는 듯이 보인다. 그래서 정면으로 나와 마주 보고 있는 것만 같다. 약간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어서 어리둥절 하게 혹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마치 나를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회색이 주를 이루는 톤인데, 난로는 가슴에 붉은색을 띄며 열기를 내뿜고 있다. 그래서 숨을 쉬고 있는 듯이 보인다. 다소 투박한 형태로 한물간 디자인의 난로이다. 아마도 오랜 기간 작가와 함께 했을 것이다.
저 접시 위에는 토스트가 하나 있었을까? 아마도 버터를 바를 때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나이프와 접시가 한 개씩 정갈하게 포개어 놓여있다. 부스럼 하나 남김없이 깨끗이 비운 접시와 식기의 모습이 기분 좋게 배부른 느낌이다.
각각의 사물들이 살아있는 것만 같다. 자신과 함께 동거하고 있는 이 하나하나의 물건에 작가의 애정이 느껴진다. 분명 오랜 기간 작가와 함께 했을 이 사물들은 작가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하면서. 작가는 사물들과 함께 마주보며 이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까?
'오늘도 너는 네 역할을 감당하고 있구나. 나도 오늘을 담담하게 그리고 성실히 살아 나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