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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창연 Jun 03. 2017

샹젤리제에선 빵모자를

Better late than Never


파리에서의 로망이라.

파리와 로망이라는 단어를 연결 지어 생각했을 때, 역시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빨간 빵모자이다.

그렇다면 그 빵모자를 쓰고 어디로 갈까. 뉴스에 등장하는 파리 특파원의 단골 배경, 샹젤리제 Champs-Élysées 거리로 가서 샹젤리제 노래를 흥얼거리며 투스텝으로 총총총 걷고 싶다.


언듯 들어봐도 자본주의 냄새가 나는 이 장면은 어릴 때 우연히 BC카드 광고를 본 후로 줄곧 나의 로망이었다.


"파리에는 정말 빵모자를 쓴 사람이 많아요?"

"네. 많긴 많은데 다 한국인이에요."


먼저 파리를 다녀온 팀원에게 묻자, 한국인들이 주로 많이 쓴다고 했다.  역시 BC카드 광고는 나만 본 것이 아니었다. 


사실 어딜 가도 한국인은 한국인을 알아본다. 비슷한 옷차림으로 (블로그로 검색한) 맛집을 가고, 비슷한 포즈로 사진을 찍는다. 파리에서 모두 다 빵모자를 쓰고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 상큼한 20대 사이에서, 내가 빨간 빵모자를 쓰고 앉아 있다면? 아아. 나는 왠지 모르게 자신이 없어졌다.


빨간 빵모자는 내 오랜 로망인데!

초등학교 때부터 나의 꿈인데!

도둑맞은 느낌마저 들었다. 

사실은 나도 BC카드 광고에서 훔쳐왔으면서. 



"그럼 이런 모자는?" (영화 <밀정> 중 한 장면)


"그럼 이런 모직 모자 쓴 사람도 많으려나?"

내가 보여준 배우 한지민 사진을 쳐다보던 팀원은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이런 건 할머니들이 쓰던데요..."

아... 잠깐만. 방금 코로 웃은 것 같은데 내 기분 탓이지?


여행 전날까지, 과연 나는 빨간 빵모자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 생각하다가 일단 가지고 가서 한국인들이 많이 쓰지 않으면 꺼내 쓰는 것으로 결정했다. 예전에 사둔 빨간 빵모자가 분명 있는데, 서랍을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가 없어서 아쉬운 대로 검은 빵모자를 가방에 넣었다.










파리 콩코드 광장에서 에투알 개선문까지 2km가량 이어지는 샹젤리제 거리 avenue des Champs-Elysées는, 프랑스다운 여유로움과 럭셔리한 쇼핑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늪과 들판이던 이 곳을 17세기 왕비 마리 드 메디치 Marie de Médicis를 위해 튈르리 정원에서 센강을 따라 걷는 나무 산책로로 조성했다. 

'샹젤리제'란 이름은 엘리시온 들판 Elysian Field이라는 뜻인데, 이 들판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행복한 영혼이 죽은 후 가는 곳이라 믿던 곳이라고 한다.


6호선 개선문 역(Charles de Gaulle Étoile)에 내려 샹젤리제가 시작되는 거리로 올라갔을 때  4월 파리의 하늘이 환하고 푸르렀다. 가방에서 빵모자를 꺼내서 썼다. 이어폰을 끼고 샹송 베스트 앨범을 틀었다. 높다란 봄날의 가로수와 반짝거리는 간판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사이를 걸었다.


길을 걷다 우연히 건물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앗! 내가 이렇게 싱글 하게 웃은 적이 얼마만이지'하고 놀랐다. 근래 이렇게 스스로가 사랑스럽다고 느낀 순간이 있던가. 조금 더웠지만 빵모자를 절대 벗지 않았다. (거창하게도) 내 삶의 방향마저도 옳은 느낌이었고, 이 거리 위에 앞날이 시원하게 펼쳐진 느낌이었다. 내가 기껏 상업 광고에 넘어간 것이라 해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향수를 시향 해주던 점원이 웃으며 말했다. 

"샹젤리제에 어울리는 패션이네요."


너무 좋다. 사실 이렇게 좋아할 줄은 나도 몰랐다. 그래. 이렇게 좋은 거면 하는 게 맞지. '유럽여행은 너무 무리였나'하는 생각이 싹 사라졌다. 삶을 살수록 내가 볼이 빨개질 정도로 열중하거나, 발끝까지 지릿하게 기쁜 일이 흔치 않아졌다. 원래는 조그만 것에 막 슬퍼하고 막 기뻐하던 얄팍한 인간이 나였는데... 

울다가 웃어서 ***에 털 날까 봐 걱정하던 그런 시절은 지나고, 어느 순간 나는 뭐 딱히 힘든 일도 없고, 그렇다고 뭐 딱히 좋은 일도 없이 남들이 보기엔 철이 든(젠장. 철이 들어버린) 그런 어른이 되었다. 그런 어른들의 세계에는 쌓아야 하는 숫자와 맞춰야 하는 기준들이 있다.


어릴 때 나를 그토록 설레게 하던 작은 숫자들, 쓸데없는 열망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이력서에 쓸 수도 없고, 너무 흔해 자랑하기도 애매한 그런 꿈들은 또 어디로 간 것일까? 

흔하다면 흔해진 유럽여행이지만 나에게는 정말 큰 의미였다. 딱히 쓸데는 없어 보이지만, 내게는 정말 소중한 꿈이었다. 행복한 영혼들이 죽은 후에 가는 들판이라는 샹젤리제에, 살아서 행복하게 왔으니 됐다.


Aux Champs-Élysées  샹젤리제 거리에는

Aux Champs-Élysées 샹젤리제 거리에는

Au soleil, sour la pluie 해가 맑든 비가 오든

À midi ou à minuit 정오든 자정이든

Il y a tout ce que vous voulez 당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있어요

Aux Champs-Élysées 샹젤리제 거리에는





텔레비전에서 BC카드 광고를 보았을 시절 , 나는 영수학원에서 이런 영어 속담도 배웠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A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  Every dog has his day.


그중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 안 하는 것보단 늦더라도 하는 게 낫다. Better late than Never.


어린 나는 왜 돌은 굴러야 하는지, 사람은 왜 놀아야 하는지(이미 놀고 있는데), 왜 개에게 좋은 날이 필요한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또 '웬만하면 안 늦는 게 낫지. 늦더라도 해야 한다니. 이런 것도 교훈인가?'라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그땐 내가 이렇게 게으르고, 매사 늦된 어른이 될지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샹젤리제 거리를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걸으며, 빨간 빵모자를 쓰고, 샹송을 들으며, 양 손에 쇼핑 가방을 들고 걸을 때 나는 그 속담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Better late than Never.

비록 나의 로망이 시기를 놓쳤다고 해도, 오랫동안 간직해 온 꿈이 있다면 해보는 것이 좋은 것이구나. 늦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 낫구나.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사는 게 맞구나. 나는 4월 파리의 환한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참 이곳에 잘 왔구나,라고 생각했다.


Better late than Never.

그것은 포기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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