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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창연 Jun 08. 2016

Beautiful moments

이토록 훌륭한 순간

차들이 지나가는 길을 메우고 도로 아래 만든 길은, 길이 아니다. 주택을 허물고 칸칸이 좁게 나눈 건물은, 더 이상 집이 아니다. 신림동에서 산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뜨내기라는 것을 뜻한다. 갓 서울로 상경한 사회 초년생이 원룸을 구하고, 다른 계급으로의 환승을 꿈꾸는 이들이 고시촌에 모여든다. 이곳에서 계속 살 것이라고 말하거나, 이곳을 고향이라 하는 사람은 없다.








"뉴 잉글랜드의 기후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다. 거친 날씨와 찌는 듯한 무더운 날씨, 흐릿한 날씨, 얼음 벌판에 빛이 반사되어 비치는 듯한 누르스름한 날씨가 있으면, 또한 화창하게 맑은 날씨, 덥지도 춥지도 않은 완벽한 날씨도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나는 이걸 써먹어 본다. 30대 후반은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시점이다. 끝없이 일어나는 일들과 당장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은 욕망, 암울하고 불안한 앞날, 외로움에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은 퇴근길의 나날이 있으면, 또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밤들, 내일의 일들이 기대되는 완벽한 나날도 있다. 아, 그렇구나. 훌륭하다는 말의 참된 의미는 그런 것이었구나. 그러므로 지금 달리지 않고 이렇게 누워서 빈둥대는 나 역시 훌륭한 러너의 하나로구나.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마음의 숲-









길이 아닌 길을 걸으며 집이 아닌 집을 바라보다가, 문득 빛나는 노을이 눈에 들어온다.

비루한 풍경 위에도 아름다움은 고루 번진다.

김연수의 말을 빌리자면 이 순간 역시도 훌륭하리라.




떠나지 못하는 낮들과 머무르지 못하는 밤들,

못마땅하면서도 마음에 드는 내 삶,

초라하면서 더없이 풍요로운 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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