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작사를 배우면 돈을 많이 벌까요?
※이 글은 실제 작사학원을 10개월 이상 수강한 '지망생'의 입장에서 쓰여졌습니다.
요즘 작사 학원 홍보가 심심찮게 보입니다. 김이나 작사가를 시작으로 하여 국내 '억'소리 난다는 연봉을 받는 작사가들이 미디어에 많이 노출됐고 자연스럽게 '작사가' 직업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어요.
또한 '작사'란 나의 글로 노래를 완성하는 직업이기에 직업 자체에 대한 '로망'이 존재합니다. 요즘은 K-POP 팬들이 부쩍 많아져 '그들과 같은 영역에 종사하고 싶다'는 환상까지 충족할 수 있을 것만 같구요. 저 역시 글과 노래를 모두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작사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데뷔준비반에 돌입했는데요.
이 과정까지 거치며 느낀 바가 많아 후기를 남겨봅니다. 100% 솔직한 제 '개인'적 후기입니다. 혹시 작사가를 희망한다면 참고용으로 봐주세요! 정말 매력적인 직업 작사가! 지피지기 백전백승인만큼 미리 알아보고 나면 더 잘 준비할 수 있겠죠? :D 제가 직접 겪은 것들과, 필드에서 지금도 가사를 배출하고 계시는 강사님들께 들은 것을 종합했습니다.
먼저 지망생이 거쳐가는 과정설명.
학원수강->존버->실전반등극->데모음원 작사제출->소속사에서 채택->음원공개->'입봉(=작사가데뷔)'->소득발생
1) 불로소득? 입봉 전까지는 수익 0원
-> 작사가의 인기가 높아지는 이유는 '한번 써놓은 가사가 평생 저작권료를 벌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건 입봉, 즉 데뷔를 한 작사가들이나 해당사항이 있는 거구요. 입봉을 하지 못한 지망생들은 수익원이 전혀 없습니다. 드라마나 시나리오 작가에는 '보조작가' 개념이 있지만 작사가는 보조작사가 개념이 없어요. 본인이 데뷔하지 못하면 수익은 일절 발생하지 않습니다. 또한 히트곡 작사가 아닌 이상 단일 음원수익이 평생 생계를 책임져줄 정도로 발생하지는 않는다고 해요.
2) 입봉? 쉽지가 않아
-> 그럼 입봉 하면 되잖아~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텐데요. 일반 글작가도 겸해본 제가 느낀바로는 신춘문예 당선(등단)과 작사가 입봉에 별 차이가 없어보입니다.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겁니다. 보통 소속사에서 데모 음원을 보내면 그 음원에 가사를 써 내는건 지망생 뿐만이 아닙니다. 날고 기는 국내탑 작사가, 네, 서지음님 김이나님 조윤경님 황유빈님 같은 분들도 모두 가사를 써냅니다.
소속사에서 가사를 '채택'해야 '입봉'을하고 데뷔를 하는건데 이 경쟁에 신인/경력직 차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매우 치열합니다. 한 학원에만 해도 수강생이 수십이고, 전국이면 수백이니까요.
3) 입봉해도? 거기서 안끝나
-> 그럼 입봉을 했다고 칩시다. 그 길로 꽃길인생이 필까요? 제가 제일 놀란 건 이 부분이었어요. 분명 작사가 데뷔를 했는데도 계속해서 학원을 다니는 분들이 많아요. 입봉은 끝이 아닙니다. 그냥 시작입니다. 계속해서 작사채택은 경쟁입니다. 입봉을 해도 내 이름값이 높아지지 않는다면 커다란 메리트가 생기진 않습니다. 매 작품이 신인작처럼 경쟁입니다.
4) 입봉말고 다른 루트없어?
->없어요. 이게 지망생들에게 가장 큰 디메리트입니다. 학원에서 열심히 배워도 학원 밖에선 입봉 루트가 없습니다. 아 딱 두개만 빼고요. 첫째 본인이 직접 싱어송라이터가 돼서 음원발표. 둘째 친한 뮤지션 지인에게 인맥으로 가사 꽂기 그런데 이 두개가 가능했다면 애초에 작사학원을 다니시지 않겠죠?(허탈ㅋㅋ)
과거엔 작사가오디션이 종종 있었지만 최근에는 데모음원에 대한 보안이 강화되고, 이미 고스펙 작사가들이 많이 포진해있는 상황이므로 작사가오디션이나 공모전도 거의 없습니다. 있다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유명 소속사에선 없습니다.
학원을 비싼 돈주면서 다니는 이유는 '정말로참말로' 학원 외에 입봉 루트가 없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SM엔터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개인에게 에스파 여름공개 음원을 주지는 않지요.
5) 심지어 지망생들에게 데모를 주지않는 기획사도 있다
-> 저는 학원을 다니면 모든 지망생들에게 데모 공개가 똑같이 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아닙니다. 소속사에서 특히 신경쓰는 데뷔조나 그룹이 있을시 지망생들도 참가가 가능하게 뿌리지는 않아요. 특정 작사가들(예컨대 조금 저명한 사람들. 아이돌 작사를 많이 진행해본 사람들)에게만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정 소속사에서는 거의 이런식으로만 가사를 받기도 합니다. 즉 '경력직만 받습니다~'하는 소속사가 있다는 것!
6) 모든 기획사가 작사비를 주진 않는다?
-> 사실 저는 입봉전 작사가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요. 내 가사가 채택된다고 해도 작사비를 따로 주는 기획사는 매우 적다고 합니다. 듣기로는 SM엔터의 경우 n만원을 지급한대요. 타 소속사는 들은 바가 없어 모르겠네요^^; (실제 경험으로 알아보고 싶다~ㅋㅋ) 물론 가사에 대한 저작권료는 당연 지급합니다! 즉 가사비+저작권료를 받는경우도 있고 그냥 저작권료만 받는 경우도 있어요. 저작권료는 노래의 히트 정도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7) 그럼 작사하면 돈 다 내꺼?
->슬프게도 아니라네요. 요즘은 단독 작사가로 음원이 발매되는 경우가 매우매우 적어요. 유명한 아이돌 음악 아무거나 검색하셔서 작사참여진을 보세요. 여러명이 공동으로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매우 많아요! 그렇다면 저작권도 엔빵입니다. 심지어는 글자 5개로 작사진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이럴 때는 어떻게 페이를 계산하냐면요. 비율로 나눈다고 하네요!
ex) 너를 사랑하는 나를 봐줘 = 총 10글자
A작가: '사랑하는' = 40% 분배
B작가: '너를 / 나를 봐줘' = 60% 분배
초-메이저-히트 작사가의 경우 멋있게 단독으로 이름을 뙇! 올리지만, 요즘에는 갈수록 다수작사가가 많아지고 있어요. 대부분의 가요들이 그렇답니다~
8) 아이돌을 몰라도 작사가 할 수 있나?
->아이돌 몰라도 작사가 할 수는 있어요. 단, 아이돌 공부를 좀 한다는 전제하에... 데모음원 파일은 거의 8할이 아이돌 노래입니다. 그 중에서도 발라드가 아닌 댄스곡이요. 남은 2할도 거의 거의 거의 대부분이 아이돌의 발라드입니다. 그 외 아티스트의 발라드곡은 매우 드물어요. 즉 케이팝 음악을 많이 듣지 않고, 아이돌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면 매우매우 불리합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거죠. 공부를 하지 않고도 시험은 칠 수 있지만~ 공부를 한 사람보다 성적을 높게받을 가능성은 당연히 거의 없겠죠?^^; 작사는 센스의 영역이고 글의 영역이니 나도 글좀 쓰니까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면 오산! 아이돌 문화에 익숙해지셔야만 합니다.
9) 글쓰는 사람이 하는 직업? X 아이돌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직업 O
-> 차라리 그렇습니다. 작사가는 '글'을 쓰는 직업이라기 보다는 '케이팝'을 쓰는 직업입니다. 실제로 제가 수강했던 강사중 한분은 "우리는 예술 하는 거 아닙니다. 비즈니스 하는 겁니다."라고도 말씀해주셨어요. 작문력은 사아아~실 작사가랑 크게 상관없는 것 같아요ㅎㅎ! 국문학과를 나온 사람보다 집에서 아이돌 무대영상 100번 본 사람이 더 유리한 영역입니다. 거짓말같죠? 진짜인데... 물론 아이돌 좋아한다고 다 유리한 건 아닙니다만 상대적으로 더 잘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아티스트마다 세계관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기존 스타일도 다른데 이걸 다 고려해서 가사를 써야 합니다. 절절한 음원이 왔다고 해서 절절한 글만 쓰면 안 된다는 겁니다. 예컨대, 똑같은 데모파일이 와도 샤이니 키가 부르는 가사와 태민이 부르는 가사는 달라야 합니다. 작사가는 누가 부를 것인지를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개별적 아티스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더 나아가 케이팝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작사가 직업은 매우매우매우 힘들 것입니다.
10) 톡 까놓고 말해서 돈 없으면 못해요
->입봉 하기 전까지 작사가 지망생들은 작사 학원을 다녀야 합니다. 그것말고는 입봉루트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작사학원, 당연히 공짜가 아닙니다. 4주 기준 평균적으로 40만원 입니다. (학원에 따라 아주 약~소한 차이는 있어요) 이 40만원을 두세번 낸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보통 학원들의 커리큘럼은 12개월 수강시 실전반(=데모파일을 주는반)으로 넘어갑니다. 커리큘럼이 짧은 학원도 7개월은 버텨야 진급해요. 실력에 따라 차등으로 올리는 게 아니라 그냥 월수로 카운트하기 때문에 "난 실력으로 빨리 진급하겠어!!" 이런건 없습니다. (진짜로 없어요;) 즉 데모 파일 하나를 받기 위해 최소 300~400만원을 투자해야 합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근데 실전반 간다고 바로 데뷔하는 사람? 거의 없어요. 대부분이 장수생입니다. 더러는 3년 이상 학원을 수강하기도 해요. 그럼 매달매달 40만원씩 계속 지출이 됩니다. 호기롭게 학원에 들어왔다가 '입봉'에 발이 묶여 달달이 지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몇몇 학원은 장수생이 되면 휴강을 하더라도 데모파일을 보내주긴하는데 이건 케바케입니다.
11) 주로 20대 / 여자들이 많다
-> 학원 2곳을 수강해봤는데요. 20대 여자분들이 대다수 입니다. 직장인이거나 학생이거나 직업은 다양했어요! 다들 마음 속에 최애한명씩 품고 오시는 것 같은! 물론 저도ㅎㅎ
12) 작사가가 되면 가수를 만날 수 있나?
-> 아니라고 하네요...! 초초초 메이저 탑티어 작사가가 되면 소속사에서 아티스트와 함께 가사를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그러지 않고서야 아이돌과 직접 만날 일은 없다고 합니다. 거의가 아니라 그냥 없다고 하네요!(감사 사인시디는 많이들 보내신다고 해요!) 실제로 지망생들이 제출하는 가사 역시 아이돌들은 볼 일이 없고 A&R 이라고 하는 팀에서 채택한다고 합니다. 팬사인회에 가서 "00오빠 제가 이번에 작사학원에서 오빠네 타이틀곡 데모파일 가사 제출했어요~!" 라고 말해도 아티스트는 O_o?? 영문을 모를 겁니다. 띠요용.
이걸 살짝 바꿔말하면...? 대형 소속사 A&R팀과의 소통력이 높은 학원의 가사가 채택될 확률이 높아진다..!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지망생분들이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그러니 그냥 열심히 쓰면 됩니다!!
=> 총평.
작사는 정말정말 재미있습니다. 실제로 해보면 더 재미있어요. 하지만 이 재미있는 행위가 직업으로 연결되기까지는 최소 7개월 많으면 n년까지도 길어집니다. 기약이 없습니다. 학원 수강료는 4주마다 40만원씩 따박따박 돌아옵니다.(만약 한달이 5주인 경우에는 2번 내는 것이지요~) 세상에 모르는 아이돌은 또 어찌나 많은지, 어느순간부터는 음악감상이 음악'분석'으로 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경쟁은 치열한데 꽃길이 보장돼있지는 않습니다. 예술가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이 영역도 매우 상업화가 돼있어서 기술력으로 승부를 봐야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단지 음악만 좋아하는 열의로는 오래 버티기가 힘듭니다. 케이팝을 좋아하셔야 하고, 최소 비용을 준비하셔야 합니다. 지망생 기간이 길어져도 지치지않는 마음과 체력도 필요해요. 과제는 많으면 일주일에 네다섯개가 쏟아지기도 합니다. 현재 데뷔하신 작사가 분들은 모두 대단하고 천재인 분들입니다. 그분들과도 함께 경쟁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사를 쓰는 직업은 작사가가 유일합니다. 나의 글이 텍스트가 아닌 음악으로 되살아나는 경험은, 작사가에게만 허락되는 낭만입니다. 또한 케이팝 아이돌과 아주 간접적으로나마 소통이 가능하다는 기쁨도 있습니다. 때문에 작사가 시장이 자꾸만 치열해지고 험난해져도 지망생들은 언제나 많을 것입니다. 저도 그 중 한명일거고요! 우리 모두 힘을 냅시다아~!
했네 이번달 학원비 이체~
근데 내 가사는 본체만체~
탔네 장수생 롤러코스터~
준내 힘들어서 했지 급체~
vertigo 느낄때까지 버텨도
정말 데뷔하기 힘든 시대~
yeah!
-이렇게 쓰면 10년 버텨도 안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