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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청예 Oct 12. 2023

당장 9 곱하기 5를 못해도 되는 이유

봉사를 하면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조차 좋아진다.

아동 교육 봉사! 드디어 이번 달로 3개월을 채웠다. 호텔 프린스에서 제공하는 <소설가의 방> 혜택을 누리는 동안, 나와의 약속을 지킨 셈이 됐다. 비록 매주 브런치에 후기를 쓰겠다는 야무진 계획은 못 지켰지만(ㅋㅋ) 말과 글보다 중요한 건 역시 행동이죠. 행동만큼은 부단히 이어가고 있었으니 스스로 만족하자.



1) 쌤. 저는 K-암산으로 다 풀 수 있어요.


주로 매주 초등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쳐주는데, 이 친구들의 공통된 특성이 복잡한 문제도 ‘암산’으로 해결하려 한다. 요즘은 암산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첫 문제풀이 시간에는 하고 싶은 대로 풀게끔 내버려 두지만, 문제를 틀리고 나면 그때는 암산으로 하지 말고 연필로 적어가며 풀어보라 권유한다. 왜냐하면 3.2 + 4.0 은 암산으로 얼마든지 풀 수 있다. 하지만 3.17 + 36.891이라는 문제는 여러 숫자가 수식 안에 복잡하게 섞여있으므로 암산이 헷갈릴 가능성이 높다. 솔직히 나한테도 당장 물어보면 암산이 안 될 듯…


그런데 4학년 남자아이가 “이것이 K암산법” 이라면서 끝까지 암산으로 풀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웃기고ㅋㅋ 어이가 없어서 그 친구한테 “K암산, 실패!” 하고 놀려줬다. 그러니 그 아이가 틀릴 때마다 자기도 웃기는지 계속 웃더니 나중에는 결국 연필로 적으며 풀었다. 그 후에는 정답을 맞혔다. 그다음부터는 그 친구가 암산으로 문제를 풀고 나면 “이 답에 자신 있어?”라고 물어주었다. 그랬더니 또 뭐가 그리 웃기는지 “아니요ㅋㅋㅋ”하면서 키득거렸다. “이번에도 K암산?”이라 되물으면 그때서야 혼자 낄낄거리며 연필로 적어 다시 풀었다.


수학을 잘하는 친구인데 아마 그날은 장난을 치고 싶었나 보다. 나도 그게 너무 웃겨서 가르치는 동안 많이 웃었다. 그런데 도대체 K암산이 뭐지?ㅋㅋ 봉준호, bts, 손흥민 같은 암산법인가ㅋㅋ 다음에는 나도 K암산이 뭐냐고 물어봐야겠다.



2) 7890 x 0.1 = 728 (????)


가끔 아이들의 머릿속이 궁금하다. 국어 문제를 풀 때보다 수학 문제를 풀 때 아이들의 상상력은 더 커지는 것 같다. 아이들은 도저히 가늠이 불가한 어떠한 메커니즘으로(ㅋㅋ) 숫자를 대하고 문제를 푼다. 그러면 어른인 나는 당황을 해서, 어디서부터 가르쳐줘야 할지 매우 의아해진다ㅋㅋ


나: 자 0.1이 17개 있고 0.01이 5개가 있대.
친구: 네.
나: 차근차근 풀어보자. 0.1이 17개면 몇이지?
친구: 1.7요
나: 그럼 0.01이 5개면?
친구: 0.05요
나: 맞아! 그럼 1.7이랑 0.05를 더하면?
친구: 3.5요!
나: (???????????) 어…. 어떻게 한 거야??


이유를 물으면 잘 대답해주지 못한다. 이건 아이들이 잘 몰라서라기보다는 머릿속에 자신만의 계산법이 있는데 어른인 내가 당황하니까 자기도 절로 당황해서 설명을 잘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르쳐주면서 느낀 건데, 아이들은 “땡!”이라는 말보다 “왜 그렇게 생각해?”라는 말을 더 어려워하는 것 같다. 전자는 재미있다고 웃는데 후자는 진짜로 얼어버린다.

 

아무튼 계산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는 알려줘야 하기 때문에 이유는 알아야 한다. 그런데 아이가 겁을 먹으면 안 되니까 물어보기보다, 연습장에 푸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부탁한다. “와 최고다. 3.5 나오는 방법 나도 알려줘.” 이런 식으로 칭찬을 하면 신나서 알려준다(ㅋㅋ) 그런데 다시 하면 본인이 말해줬던 그 답이 안 나온다. 당연하다. 오답이니까 다시 나올 리가 없다.


친구: 어 왜 1.75지… 아깐 3.5였는데….
나: 1.75가 정답인데? 니가 맞았어!
친구: 이게 답이라고요??
나: 이게 답이고 니가 푼 방법도 맞음. 이렇게 푸는 거 맞음.
친구: 헐! (정말 헐 이라고 함)


사실 나는 정식 교육자도 아니고 교육학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다. 대학생 때 계절학기로 몇 개 수강해 본 게 전부이다. 그러니 늘 걱정이 되긴 한다. 이렇게 가르쳐줘도 되나? 피해를 주는 건 아닐지…. 망설여지기도 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내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던(??) 방법으로 알려주고는 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혹시 이 글을 보는 당신이 교육학 전공이시라면 좋은 방법을 알려주세요~!



3) 너는 구구단을 못해도 행복할 권리가 있지.

어른이 구구단을 못하면 문제가 될 거다(아마도)… 살아가는 데 불편함이 따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구구단을 몰라도 웃을 수 있다. 제일 쉬운 5단을 헷갈려도, 3단에서 한자리 숫자가 몇 번 나오는지 알지 못해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낄낄 웃으며 집으로 돌아가도 되고, 그랬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3학년 친구가 곱셉 문제를 풀다가 구구단을 종종 틀렸는데 그 아이는 그래도 해맑게 웃었다. 자기는 바보라면서. 그래서 내가 같이 웃으면서, 모르면 한번 더 외우면 되니까 바보가 아니라고 응원해 줬다. 나는 재학증명서가 아닌 졸업증명서를 떼야할 만큼 나이를 먹었고, 구구단 정도는 잠결에도 헷갈리지 않는 어른이 됐다. 나이를 먹는 게 가끔은 슬프고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도 있더라고. 나보다 한참 어린아이에게, 당장 구구단을 못 외워도 바보가 아니라는 말 같은 것들.


중학생 때 나는 인수분해 파트를 시작하면서 수포자가 됐다. 그때 학원 선생님이 너무 무섭게 다그치셔서 학원에서 울었던 적도 있다. 그런 기억이 있는 어른이기에 문제를 틀려도 다그치고 싶지 않았다. 겨우 1주일에 1번 보는 봉사자라 마음이 가벼운 것도 있겠지만, 또 다른 마음으로는, 사실 알고 있다. 지금은 좀 못해도 흥미만 잃지 않으면 잘하게 되리란 걸. 학원에서 쨀쨀 울던 나도 고등학교 올라가서 수학 모의고사 1등급도 받고 했으니까. (수능 때는 못받았지만ㅋㅋㅋ)


그래서 봉사를 다녀오면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점조차도 좋아진다. 앞으로 남은 봉사도 잘 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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