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르는 척하는 사람들이 아는 척하는 사람들보다 더 똑똑'하다.
집필을 위해 자료 조사를 하다 보면 별걸 다 공부하게 된다. 지난번에 사기당하지 않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면 오늘은 아는 척과 모르는 척하는 사람 들에 대해 고민해 보자. 목차는 다음과 같다. 긴 글이므로 바쁘다 바빠 현대인, 원하는 부분만 골라 읽어도 좋다.
1. 왜 아는 척을 하는 걸까?
1-1. 왜 아는 척을 하는 사람들은 미움을 사는 걸까?
2. 왜 모르는 척을 하는 걸까?
2-1. 왜 모르는 척을 하는 사람들은 수동적일까?
3. 자기 확신 VS 메타인지 그 승자는?
4. 어떤 애티튜드가 좋을까?
1. 왜 아는 척을 할까?
아는 척! 그것은 어떠한 현상에 대해 세부적으로 잘 알지 못하면서도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허술한 식견을 뽐내는 행위다. 살다 보면 한 번쯤은 잘 모르면서 아는 척을 해볼 때가 있고, 또 그런 사람을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광범위하게 '아는 척'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의문이 든다. 저 사람은 뭔 근거로 저렇게 자기 생각을 맹신하는 걸까?
그 이유는 위의 이미지로 정확히 설명이 가능하다. 더닝 트루거(Dunning-kruger) 효과는 지식이 얕을수록 오히려 그것을 뽐내는 욕구가 강하고, 반대로 지식이 깊을수록 스스로 검열하는 인지력이 생겨 자신감이 하락한다는 것이다. 이후 엑스퍼트 단계로 진입해 객관성을 검증받아야만 자신감이 회복된다.
A: 어제 만난 그 애는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도 참 말이 없었어.
B: 아~ 내가 그런 애들을 좀 아는데 딱 들어봐도 INFP네. 맞지?
A: 아니. 그 애는 ISFP야.
B: 어쨌든 IXFP 3개는 맞았네. 내 말이 맞잖아.
*만약 B가 심리학 박사과정을 이수한 학생이라면 성급히 MBTI를 추론했을까?
MBTI가 유행을 타면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을 사례로 가져와봤다. 더닝 크루거 효과에 의하면, 오히려 심리학을 정식으로 이수하고 책근육이 탄탄한 사람일수록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의 지식이 맞는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틀렸을 때의 리스크'를 알기 때문에 아는 척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인정욕구> 검증욕구
그러나 B처럼 어설픈 사람들이 되려 쉽게 아는 척을 한다. 그 이유는 1) 통찰이 틀려도 잃을 게 없고 2) 아직 자기 검열의 단계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정욕구가 검증욕구보다 앞선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 뽐내지 않으면 혓바닥에 바늘이 돋아난다. 엉덩이에도 뿔이 자란다. 책을 100권 읽은 사람보다 책을 1권만 읽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낮은 자존감
또한 자존감이 낮을 가능성이 있다. "난 똑똑해! 다 알아!"라고 말을 하는 모습은, 평면적으로 보자면 굉장히 당당해 보이지만 그 말 뒤에 숨은 "그러니까 날 좀 알아줘..."라는 목소리까지 들을 필요가 있다. 오지랖을 잘 부리는 사람들은 오히려 자존감이 낮다는 말과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아는 척을 섣불리 하는 사람이 후에 틀렸음을 지적받았을 때 반감을 표출한다면, 자존감이 낮을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인정을 많이 받아본 사람들은 오히려 아는 척을 잘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후의 메타인지 목차에서 다룬다.
1-1. 왜 아는 척을 하는 사람들은 미움을 사는 걸까?
하지만 <아는 척 = 불법>인가요? 아니다. 아는 척이 극악무도한 졸렬행위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확신이 서지 않아도 통찰을 일단 선언하고 보는 그 용기는 좋은 면모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는 척'을 습관처럼 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게 정말로 긍정적인 용기라면 왜 싫어하는 걸까?
B: 척 보면 촥이야. 내 눈은 못 속여.
A: 맞아. 넌 대단해. (또 시작이네)
B: 지난번에 나한테 그런 카톡을 한 거, 사실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이지?
A: 대충 그런 것 같아 (피곤해...)
B: 넌 참 읽기 쉬운 아이야.
A: 너 되게 똑똑하다 (무례해...)
오류를 고쳐주는 것도 일이라서
사실 아는 척을 많이 하면 관계의 초반에는 '적극적이고 유쾌하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는 척을 하는 행위 자체가 과묵하거나 내성적인 사람들에게서는 잘 나오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는 사람들이기에 초반에는 곁에 사람들이 머문다. 그러나 자기 맹신이 과도하여 오류를 만들어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문제다.
네 생각이 틀렸음을 지적하는 건 불편한 일이다. 친구끼리도 하기 힘들다. 그래서 대충 네가 맞다셈 치고 넘어가게 되는데, 이 '넘어가주는 일'이 반복되면 피로감이 쌓인다. 또한 말해줘도 듣지 않을 거란 생각에 적당히 곁에 머물다 떠나기를 선택한다. 아는 척을 많이 하는 사람들 곁에 희한하게 오류를 정정해 주는 사람이 적은 것은, 있었다가 다 떠나서 그렇다.
간파당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서
사람들은 혈액형부터 MBTI, 각종 심리테스트를 좋아한다. 자기 분석에 대한 흥미는 보편적이다. 내 첫인상이 어떠하고, 나는 어떤 캐릭터 같고. 우리는 분석당하는 일을 즐긴다. 단, 우리가 원할 때만. 아는 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눈치가 없어(자신은 있다고 믿는 게 또 함정이다) 빈약한 단서로 멋대로 타인을 판단하고, 이것이 무례로 정의될 때가 잦다.
2. 왜 모르는 척을 하는 걸까?
그렇다면 이번에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사람들이다. 상대가 새로 개봉한 영화에 대해 모르는 줄 알고 열심히 설명해 줬더니만, 알고 보니 이미 정보를 다 갖고 있었던 상황. 심지어 나보다 더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너 왜 안다고 말 안 했어? 하고 물으면 별말 없이 그냥~하고 말아 버린다. 왜 뻔히 알면서도 순진무구한 얼굴을 하고 바보가 되길 자처하는 걸까?
또 나왔다. 더닝 크루거 효과. <아는 척 = 사실 잘 모름>이라면, <모르는 척 = 사실 제법 알고 있음> 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모르는 척하는 사람들은 곡선의 중간 '절망의 계곡' 안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검증욕구 or 위험회피 > 인정욕구
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본인의 수준이 바보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배고파지고 우물 파는 게 사람인 법. 모든 걸 다 안다는 확신은 하지 못했기에 오히려 용기를 잃는다. 지식의 역설이라고 해야 하나. 어설프게 떠들었다가 망신당하는 일이 얼마나 쪽팔리는지도 잘 안다. 유유상종이니 주변에도 제법 '뭔가를 아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터. 어설프게 참견했다가 불편한 일 겪은 걸 목격했을 것이다.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는 반면교사를 너무 자주 하다 보면 모르는 척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
B: 나는 이렇게 생각해. 어때?
A: 맞는 것 같아!
B: 역시 그렇지? 나 좀 쩐다!
A: 내 친구 중에 네가 제일 똑똑해.
B: 널 만나면 항상 기분 좋더라.
내가 바보가 되면 네가 좋아하니까
모르는 척하는 사람들이 '영악한' 이유는 그 모르는 척으로 자기 평판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말이 다 틀렸더라도 맞다고 대충 인정해 주면 상대는 자신의 통찰력에 심취하여 기뻐한다. 상대는 자길 인정해 준 나와 함께 있는 순간을 긍정적인 경험으로 인식하고, 호의적인 태도를 취한다. 한 마디로 상대의 무지함을 눈감아 줌으로써 호감도를 올린다.
네가 바보짓하면 재미있어서
그들을 똑똑하다 말하지 못하고 '영악하다' 말하는 또 다른 이유. 절대 많은 케이스는 아니다. 그러나 있기는 있다. 고의적으로 상대의 무지함을 끌어내서 위계를 만들려는 시도가. 예컨대, 우리 모임에서 자발적으로 선무당이 된 B로 하여금 더 무지한 발언을 하도록 자극한다. 내가 잘 모르니까 좀 알려줄래? 식으로 유도한다. 그러면 B는 더욱 신이 나서 칼춤을 출 것이고 이 구역의 광대가 되는 거다. 어리숙한 사람을 골려주려는 의도, 이것은 분명 악의다. 아는 척이 그냥 대놓고 바보짓이라면 모르는 척은 가끔 악의적이기도 하다. 물론 극소수의 사람일 뿐이니 "혹시 나도 나쁜 사람인가?" 걱정하지 마시라.
그냥 무기력해서
그저 피곤해서 말을 안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ㅋㅋ)
2-1. 왜 모르는 척을 하는 사람들은 수동적일까?
모르는 척을 한다는 건 발언을 아낀다는 의미와 같다. 나서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수동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능동적으로 모르는 척할수록 관계에선 더욱 수동적인 사람이 되는 아이러니. 모르는 척을 상습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타인을 불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B: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A: (별로라고 하면 안 좋게 생각하겠지?) 잘 모르겠어.
B: 아무 생각이 없어?
A: (잘난 척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싫어) 응 없어.
나의 견해를 상대가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혹은 나의 발언이 내 평판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말을 아낀다. 지나치게 자의식이 비대해져도 오히려 모르는 척을 잘하게 된다. 사실 아무도 신경 안 쓰는데 본인 혼자 앞서 나가서 걱정하면서 검열하는 셈.
3. 자기 확신 VS 메타인지 그 승자는?
위의 내용에 근거하여 아는 척과 모르는 척을 좀 더 세련된 말로(ㅋㅋ) 정의해 보자면 전자는 자기 확신이라 할 수 있고 후자는 메타인지라 할 수 있다.
자기 확신 = 자기 자신에 대한 종합적인 믿음과 확신
메타인지 = 타인이 보는 나에 대한 분석과 통찰(인지를 넘어서는 초인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돈을 얻고 싶다면 자기 확신을 이용하시고, 사람을 곁에 두고 싶다면 메타인지를 기르시라.
A: 제가 쓰는 글이 뭐... 도움이 되려나요ㅎㅎ
(문학상 수차례 수상, 베스트셀러 작품 보유, 평론가들의 뮤즈, 매년 올해의 작가로 선정됨, 차있고 집있고 개도 키움, 안 가진 게 없음)
B: 제 작품이 플랫폼에서 판매 1위가 됐고 전업 글쓰기로 수천만 원을 벌었죠!!
(비인기 플랫폼이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1위를 함, 모든 수익을 영끌한 것이고 액수도 일반 직장인의 연봉에 비하면 썩 크지 않음, 별점을 본인과 가족 계정으로 조작함)
괄호 안의 말을 숨겨보자.
A: 메타인지가 높음
사람들은 A가 진짜로 별 볼 일 없는 사람인가? 궁금하여 더 알아보려 한다. 그러다 그의 화려한 이력을 발견한다. 자만하지 않는 A를 겸손하다 평가할 거다. 경거망동하지 않는 자세는 그 순간마다 미담이 된다. 이것이 A가 정확히 노리는 부분이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평가될지' 한 수 앞서나가 판단한다. 겸손을 도구로 이용하는 셈.
비록 가진 패를 즉각적으로 다 보여주지 못하는 전략이기에 인정받을 때까지 시간은 걸리겠으나 그것까지 계산됐을 터. 타인의 인지를 역이용하여 평판을 만드는 전략은 유효하다. 평판이 좋은 사람의 곁에는 언제나 사람이 따른다. 비록 그것이 기망이라 할지라도-
B: 자기 확신이 높음
따지고 보면 크게 성공한 것도 아닌데 구구절절 커리어로 나열한 B는 의외로 자기 계발 시장에서 먹히는 타입이다. 그와 사적으로 친해질 일이 없는 이상 사람들은 B의 말을 검증하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믿는다. "아 잘난 척 재수 없네. 쟤는 지 말이 고깝다는 걸 모르나?"라고 반감을 표하는 사람이 있을지언정, B의 큰 목소리 주변에도 와글와글 사람들이 모인다.
내가 이걸 성공했네, 이걸 잘하네, 뭘 보유했네. 하는 말은 가까운 사람은 털어내고 먼 사람은 끌어들이는 필터링을 한다. B는 이 자기 확신을 이용하여 돈을 벌 수 있다. 지금은 그런 시대다. 대신에 절대 밑천이 드러나지 않게 잘 관리해야 한다. 가장 좋은 건 일단 자기 확신으로 구라를 쳐놓은 다음, 곁에 단타로 머무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그 구라를 사실로 만드는 것이다.
4. 어떤 애티튜드가 좋을까?
뭐든지 과유불급, 적재적소가 아닐까. 살다 보면 아는 척해야 하는 상황도 생기고 모르는 척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자기 확신으로 생각을 밀어붙이는 일. 메타인지로 눈새짓을 피하는 일 두루두루 하며 살자. 대신에 오늘 여러 번 언급한 더닝 크루거 곡선은 꼭 기억해 두자. 잘 모르면 많이 떠들고, 잘 알면 말을 아낀다.
일단 이런 글을 쓰는 나부터가 심리학은 1도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 나는 이 글로도 더닝 크루거를 증명한 셈이다.
더닝 크루거 곡선의 출처
https://www.home-learn.co.kr/newsroom/news/A/1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