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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청예 Feb 09. 2020

부산현대미술관 - 레인룸

부산에서 전시를 해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피할 수 없는 를 피해 

관망할 수 있는 다른 기회



모든 예술들이 서울에 모여있는 시점에, 부산에 이런 이색적인 전시가 개최되고 있음이 다행으로 느껴졌어요. 레인룸은 세계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회화 미술보다 좀 더 다이내믹하면서도 색다른 전시를 즐기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분명 큰 기쁨이었을 거예요. 고마워요. 





40? 안가ㅋ



부산에 현대미술관이 생긴 이유로 늘 가고 싶은 열망만 있었지 한번도 가본적은 없었어요. 대중교통으로 40분이라면 정말정말 멀다는 뜻이니까요. 그리고 현대미술관 근처에 이렇다할 다른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라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레인룸-랜덤인터네셔널 전시가 1월말에 끝나기 때문에 겨우 시간을 내서 친구와 함께 찾아갔습니다. 



수직정원, 패트릭블랑



부산현대미술관은 그 자체로 예술 작품입니다. 방문할 가치가 분명히 존재하는 곳입니다. 박물관을 둘러싼 수풀이 보이시나요? 이건 바로 패트릭블랑이 직접 설치한 자연미술 작품입니다. 미술관 전체를 하나의 작품, 즉 수풀로 채워넣은거예요. 수직으로 자라나기 어려운 자연의 특성을 극복하고 미술관의 외벽을 수직 자연으로 채워넣었어요. 그래서 사계절의 풍경이 다르답니다. 늦봄에서 초여름에 방문하시면 눈이 쨍하도록 푸르른 신록을 건물에서 느낄 수 있어요. 현대미술관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현대적 작품입니다. 



시간 밖의 기록자들 무료전시



레인룸 작품은 시간이 정해져있어요. 그래서 원할 때 입장할수는 없습니다. 예약한 시간에 맞추어 입장해야했으므로 그 시간까지 '시간 밖의 기록자들' 이라는 무료전시를 감상하였습니다. 2~3개의 전시장을 합친 규모로 그리 많은 작품이 있지는 않습니다만 적은 시간에 돌아보기에는 딱 좋습니다.



앞에 서있는 저 사람좀 치워주세요 제발



이 작품을 잘 보세요. 그냥 슥 지나가면 평범한, 폐기물 더미와 집의 사진이지만 어딘가 좀 이상합니다. 사실 이 작품은 영상이라 조금씩 움직이는데요. 자세히 보면 무언가 굉장히 비현실적이며 이질감인 느껴집니다. 이 작품은 각각의 요소를 모두 합성한 작품이라고 해요. 산업폐기물과 쓰레기 낡은 집들과 먹구름을 모두 합성해서 하나의 풍경을 만든 셈이죠. 그럼에도 왠지 슥 지나쳐버리면 정말 어딘가에 존재하는 버려진 곳 같아요. 작품에 대한 부가적인 해석이나 오디오 가이드는 없습니다. 





이 작품은 특정 주제에 대한 온라인상의 댓글을 모아놓아 영상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사람들이 온라인상에서 무질서하게 뱉은 말들을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면 웃기기도 하고,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중간중간에 얼척없는 댓글들도 많아요. 정말 많은 주제에 대해 클리핑을 했더라고요. 





이 작품은 음악입니다. 화면상의 이미지는 움직이지 않지만 헤드셋으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어요. 설명이 기입돼있다면 좋을텐데 그렇지 않아서 조금 듣고 말았답니다. 아직은 제가 많이 무지해서 현대미술과는 그리 친하지 못해요. 배운게 많았더라면 아는 것도 많아지고 보는 시야가 더 넓어졌을텐데. 미술 전시를 더 열심히 돌아다니며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한편으로는, 작가의 의도나 작품의 디테일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가이드가 있었더라면 훨씬 더 재미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배우는 기쁨을 느끼고 싶거든요.



레인룸, 랜덤 인터네셔널



레인룸은 '랜덤 인터네셔널' 이라는 이름의 미디어아티스트 그룹의 작품입니다. 이 그룹은 한네스 코흐와 플로리안 오트크라스 라는 독일인으로 구성돼있어요. 둘은 영국 브루넬 대학교에서 만나 2005년 그룹을 만들었다고 해요. 그들의 작품에서는 과학기술이 돋보여요. 전시를 뛰어넘어 발전하는 현대기술의 예술성을 느낄 수 있어요.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가 "기술은 예술을 위한 도구"이기에 이를 잘 나타낸준다고 생각합니다. 레인룸의 전체 관람시간은 10분입니다.





입장을 위해 줄을 서야합니다. 대기하기 심심하니 함께 전시된 (유일한) 미디어 아트 앞에서 사진을 찍어봅니다. 사진으로 보니 제 키가 더 실감이 되네요. 183cm 입니다.



초입에서부터 시원한 빗소리가 난다. 


레인룸으로 들어서면 와아- 소리가 절로 나게 돼요. 검은 암실에 오직 라이트 하나만 켜져있어요. 하늘에는 비를 뿌리는 센서가 있습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된 이 센서 사이를 통과하여 레인룸을 빠져나가는 것이 전시의 전부입니다. 아주 간단하지만 사람들이 레인룸에 열광한 이유가 당연 존재합니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절대 젖지 않는 경험


바로 '젖지 않는 비'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뭔말이냐구요? 레인룸에 설치된 센서는 사람을 인식합니다. (아마도 체온 혹은 무게) 그래서 사람들의 이동 동선을 따라 비를 멈추게 해줍니다. 폭우속으로 당당하게 입장해도 비가 내리지 않아요.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내가 걷는 공간에는 비가 멈춘답니다. 신기하죠? 이 사진 역시 빗속에서 찍은거예요. 나를 둘러싼 채로 시원히 내리는 비의 풍경을 상상해보신적이 있나요? 레인룸은 그 흥미로운 상상을 기술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절대 뛰어들어가면 안됩니다. 뛰어들어가면 센서가 차마 사람을 인식하지 못해서 그대로 비에 쫄딱 맞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관람객들과 동시에 우두두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역시 센서가 개개인을 인식하지 못해요. 이런 사항은 가이드가 설명을 해줍니다만 알고 있어도 살짝 젖긴 하더라고요. 그러나 불쾌하지 않았어요. 친구와 함께 서로 사진을 찍어주면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전시의 값어치는 충분했습니다. 다음 번에 기술이 발달한다면 탁트인 야외에서, 자연의 중심에서 레인룸을 즐겨보고 싶어요. 바깥이 보이면 실감이 더해질 것 같거든요.





저는 비오는 날을 좋아합니다.(내가 실내에 있을 때만)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보면 왠지 마음이 차분해지거든요. 비오는 날 특유의 냄새와 한랭한 온도도 좋습니다. 맑은 날 뜨거웠던 사람들의 열정이 가라앉고, 모두 실내로 숨어버려 조용해지는 도시의 적막함도 좋습니다. 좋아하는 비 사이로 걷는 경험이 즐거웠던 이유입니다. 샌들을 신고, 짧은 바지와 짧은 티셔츠를 입고, 좋아하는 우산을 들고 폭우가 내리는 어둑어둑한 길을 걷고 싶어지네요. 오직 거리에 나와 비만 있는 순간! 혹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 비를 걸었던 순간이 그리워지네요. 태풍이 올때면 집에서 못된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이 태풍이 천년만년와서 매일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이죠. 근데 바람은 싫습니다!



부산현대미술관의 뒷풍경


전시가 끝난 후에 잠시 뒷공터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봄이 오면 친구들과 도시락 싸들고 피크닉 오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서 그 봄이 와서, 부산에 가서, 즐거운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지네요. 아직은 좀 더 열심히 살 이유를 현대미술관 뒷공터에 놔두고 왔답니다.





부산현대미술관 레인룸 랜덤인터네셔널 전시 관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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