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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청예 May 15. 2020

예술의 전당 - 툴루즈 로트렉展

이 화가, 반고흐랑 친했다면서요? 일본 판화 영향을 받은 것도 닮았다?

핍과 독의 화가

루즈 로트렉과 마르트



이번 전시의 타이틀은 '물랭루즈의 작은 거인' 입니다. 여기에 딱 한 단어만 더 끼워넣는다면 이번 전시 로그라인으로 최고일 것 같아요. 저는 '물랭루즈의 고독한 작은 거인'으로 수정해볼게요. 참고로 우리에게 영화로 유명한 <물랭루즈>는 파리 몽마르트에 위치한 댄스홀의 이름이랍니다. 이걸 보면 툴루즈 로트렉이 주로 파리 유흥가에서 활동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죠?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을 고흐 '오베르 마을의 풍경'처럼 높은 지평선 구도로 찍어보기 (그냥 잘못 찍은 거예요...)


코로나 이녀석. 또 터졌네요. 사태가 심각해지기 전에 전시 딱~ 하나만 더 보고 왔습니다. 툴루즈 로트렉은 후기 인상주의 프랑스 화가인데요. 저는 이 작가를 이번 전시로 처음 알았어요. 그래서 이름도 사실 입에 잘 안붙습니다. 루트즈 토르렉이라고 발음하질 않나, 좀 생소하네요! 하지만 저를 놀리시면 안됩니다요. 왜냐하면 이번 전시회가 툴루즈 로트렉의 첫 전시회이기 때문이에요. 즉, 툴루즈 로르텍의 작품들이 국내에 공개되는 게 이번 기회 이전에는 없었다고 해요. 생소한 이유가 있죠?


나도 누가 사진 좀 찍어줬음 좋겠다. 같이 가실분?


마치 작품 속의 붉은 목도리처럼 선명한 벽의 컬러가 인상적입니다. 예술의 전당은 '에릭요한슨 사진전'때 와보고 처음이네요. 근데 그때랑 전시장이 달라서 2바퀴 돌았습니다. 각설하고, 본 전시에서 소개되는 약 150점의 작품은 모두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신비한 작품들입니다. 그리스 아테네의 헤라클레이돈 미술관에 있었던 작품들이라고 해요. 참고로 해당 전시는 05월 16일까지! 이 글을 작성하는 날짜가 15일인 걸 감안했을 때, 아직 전시회에 방문하지 않았다면 당분간은 감상이 어려우실 거예요. 제가 대신 소개해드릴게요~ 지금부터 생소하지만 그림 만큼은 강렬한 툴루즈 로트렉 전으로 입장해봅시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 다운, 댄디한 패션의 툴루즈 로트렉


툴루즈 로트렉은 부유한 집안 출신입니다. 하지만 로트렉의 가문에는 나쁜 전통이 있었습니다. 바로 '근친'이었습니다. 근친으로 인해 로트렉은 태어날 때부터 신체적 결함을 갖고 태어납니다. 사진으로 보아도 체구가 많이 왜소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는 고흐, 고갱, 모네, 르누아르 등 인상주의 거장들과 동시대를 살았으며 실제로 교류도 했습니다. 고흐와는 꽤나 깊이 정서적 교감을 나누었다고 해요. 하지만 그의 신체적 결함은 인생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기에 다른 화가들과는 상당히 차이나는 화풍을 가지게 됐어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는 몽마르트에서 유일하게 타인의 고통과 결핍 그리고 고독에 공감한 화가입니다.


그는 스케치와 드로잉을 아주 좋아했다.


나는 드로잉으로 자유를 샀다.


그의 생애를 좀 더 알아봅시다. 그는 신체 뿐 아니라 정신적 아픔까지 겪었기에 정신병원에 수감됩니다. 지루한 병동 생활 중 로트렉은 스케치와 드로잉을 밥먹듯이 했는데요. 정신병동 의료진들이 로트렉의 스케치들을 보고 정신병이 호전됐으며 정상적인 범주로 돌아왔다고 판단하여 그를 퇴원시켜줬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드로잉과 스케칭만이 자신에게 자유를 주는 구원이라고 생각했다네요. (참고로 그가 고흐를 처음 본건 19살때 화실에서였다고 하는데 이때부터 고흐와 교류를 했을 거예요. 그러나 고흐의 성격만 보아도 그들이 행복하고.. 낙천적인 교류를 했을리가 없겠죠? 고흐와의 교류 역시 로트렉의 우울과 불안을 거들지 않았나 '추측' 해봅니다.)


전시회의 첫번째 섹션, 참고로 이번 전시는 특정 섹션 말고는 모두 촬영이 불가함


비록 그의 몸과 마음은 고통으로 가득찼을지라도 그는 세상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처럼 결핍을 갖고 있으며 소외된 사람들을 애정으로 바라보았죠. 특히 몽마르트 유흥가의 직업 여성들을 사랑했다고 합니다. 전시회의 소개에 의하면, 그가 좋아했던 우선순위가 여자>동물>남자 였다고 하네요. 남다른 시선은 상류사회의 도덕적 모순을 꼬집는데 강점을 발휘합니다. 그는 주로 유흥가의 포스터 작업이나 각종 잡지들의 삽화를 그렸는데 상류사회를 풍자하는 블랙코미디에 능했다고 해요. 아픔이 있는 사람이 모순적이게도 웃음에 더 가깝다고 하더니, 정말 그 말이 사실이었네요.


샹송가수 아리스티드 브리앙의 캬바레 포스터들, 1번과 2번은 좌우반전만 했다.


그는 포스터를 기막히게 잘 그렸기 때문에 포스터로 인물을 스타덤에 오르게 만들었어요. 이 작품 속의 아리스티드 브리앙이 대표적인 예인데요. 세번째 작품을 보세요. 사용한 색은 오직 4개 뿐입니다. 명암도 표현돼있지 않아요. 혁신적인 단순화와 옷을 몽땅 검은색으로 채워버리는 과감함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손에 쥐고 있는 지팡이를 보면 그가 배우(겸 가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젊고 훤칠한 사람이 뜬금없이 지팡이를 쥐고 있을 리는 없으니까요. 포스터의 강렬한 인상 덕분에 브리앙은 매우 유명해집니다. 요즘말로 한다면 '그림빨 지대로 받았네!' 그래서 세번째 포스터 속 이미지를 무려 20년 동안이나 사용했대요.


스타댄서 제인 아브릴 / 우) 무용단 포스터의 여성들 중 가장 발차기 각도가 현란한 사람이 제인 아브릴이다.


그의 강렬하고 익살적인 특색은 뮤즈 제인 아브릴의 공연 포스터에도 잘 나타나있어요. 제인 아브릴은 다른 여성들보다 쫌~더 화려하고 힘있게 그려줬어요. 그는 타인을 섬세히 관찰하고 분석했다고 합니다. 스스로 '이상보다 진실된 것을 그린다'라는 말을 했을 정도이죠. 이 그림을 보면 제인 아브릴의 노란 스커트와 역동적인 발차기, 화려한 모자 등이 잘 나타나있어요.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죠. 그녀가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하는 스타 댄서인 건 어떻게 표현했을까요? 바로 작품의 오른쪽에 그려진 털난 손과 첼로 그림을 보세요. 첼로가 길게 늘어져 제인 아브릴을 가두는 액자처럼 표현돼있네요. 마치 남근을 연상시킵니다. 그녀를 둘러싼, 그녀에게 성적욕망을 보이는 많은 남성 관중들을 비유합니다.


우키요에: 일본 무로마치 시대부터 에도 시대까지 발달한 목판화


또한 이 작품을 통해 그가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어요. 강렬한 대각선의 구도와 직/곡선의 조화, 선명 and 대담한 색표현 등이 보이시죠? 그의 친구 고흐 역시 우키요에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는데 친구끼리는 닮는 걸까요. 사실,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은 오리엔탈 화풍에 큰 매력을 느꼈기에 우키요에의 영향을 많이들 받았다고 합니다.


미안합니다. 작품 이름 안적어놨네요. 쏴리.


그렇다면 이제는 그의 풍자와 사회비판 솜씨를 볼까요? 저는 위의 작품을 보고 정말 놀랐어요.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사건과 똑 닮은.. 작품이거든요. 소녀의 얼굴을 한 여배우가 어여쁜 드레스를 입고 있습니다. 그 뒤에 사진사가 초기 모습의 카메라로 촬영을 하고 있네요. 그런데 카메라 렌즈가 지나치게 돌출돼있어요. 사진사의 가랑이 사이로 길게 늘어진 옷은 성적인 연상을 자극합니다. 또한 여배우의 드레스 패턴을 자세히 보니 '?' 퀘스천 마크가 가득하네요. 당시 사진사들이 여배우를 촬영해주겠다고 실내로 부른 다음 성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로트렉은 이 작품으로 그런 풍토를 비판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코스프레-사진사들의 사진유출 미투가 있었던 걸 떠올려 본다면 예나 지금이나 시대상이 많이 바뀌진 않았네요.


빅토르 조제의 <바빌론 달레마뉴> 책 광고 그림


그를 진짜 유명하게 만들어준 사건은 이 그림과 연관이 있습니다. <바빌론 달레마뉴>는 독일의 부루즈아, 상류층을 풍자하는 책입니다. 이 그림은 해당 책의 광고 그림인데요. 풍자하면 로트렉이었기에 광고 그림을 로트렉이 담당했습니다. 그림 속 왼쪽 상단에 여러마리의 말과 기수들이 앞서 있음에도 가운데의 말을 탄 기수가 훨씬 늠름하고 멋지게 묘사됐네요. 이를 보고 왼쪽 하단의 남성의 표정이 아니꼬와 보입니다. 오른쪽 상단의 여성은 멋있는 남성을 흘끔 바라보고, 그 옆의 남자는 언짢아 보이네요. 한눈에 보아도 점잖고 행복한 그림은 아니에요.


독일대사: 그림 내려. 프랑스 뒤집는다?
로트렉: 시른디요.
조제: 헐 내리자... 나 무서워...
로트렉: 싫다니깐.
프랑스: 어라라 뭔데뭔데 왜 싸워? 나도 좀 보자.
어그로 바이럴 마케팅으로 ★포스터 가격 4배 상승★


로트렉이 그린 그림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독일의 군사력 팽창을 비꼬는 그림으로 독일VS프랑스 정치적 싸움까지 일어날뻔 했다네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득은 로트렉만 본 것 같습니다. 작품에 대한 왈가왈부가 심해지면서 그림의 몸값이 껑충 뛰었거든요.


결핍과 고독을 감싼 몽마르트 물랭루즈&그냥 냅따 풍자 어택을 날린 파리.  우) 성난 소


그가 바라보는 대상은 포용과 풍자로 구별되는 것 같아요. 그는 몽마르트의 유흥가에서 모두가 낮잡아보는 직업 여성들에게는 공감과 사랑, 수용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상류층들은 촌철살인 풍자 그림의 희생양으로 삼았죠. 강강약약이 바로 이런 걸까요? 참고로 맨 오른쪽의 '성난 소' 작품은 파리에서 진행됐던 소고기 축제를 풍자한 작품입니다. 당시 빈부격차가 심해져 빈민들은 먹을 것이 부족했는데 파리는 소고기 축제를 감행했다고 해요. 성난 소가 비싼 옷을 차려입은 남자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 꼭 사람들의 속마음처럼 보입니다.


심슨 체인 광고 포스터


다른 이야기도 해봅시다. 이건 로트렉이 진행한 심슨 체인의 광고 포스터인데요. 로트렉은 광고주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예리한 관찰력을 십분 발휘했습니다. 가장 메인이 되는 남성의 자전거 체인을 보세요. 아니 사람 그릴 땐 명암도 안넣어주던 선생님이 자전거 체인은 뭘 저렇게 열심히 그렸대? 아~ 광고구나! 느껴지시나요? 그때나 지금이나 광고주님을 위해 노력한 창작자들의 고뇌가... '심슨체인을 장착하면 혼자 타도 강하고 빠릅니다.'를 나타내기 위해서 주인공의 앞/뒤 경기자들은 모두 다인승 자전거를 타고 있어요. 하지만 자세를 보아하니 주인공이 곧 추월하겠네요. 역동성을 나타내기 위해 바퀴살은 과감히 생략했어요. 빠르게 굴러가는 자전거 바퀴는 디테일을 확인할 수 없으니까요.


초반에 소개했던 브리앙의 뒷모습! 글의 시작은 앞모습 끝은 뒷모습~


이외에도 그가 동경한 말에 대한 그림들과 몽마르트 여인들에 대한 그림들을 많이 볼 수 있었어요. 사실 전시볼때는 조금 지루했는데 이렇게 정리하다보니 재미가 있네요. 몸도 마음도 아팠지만, 툴루즈 로트렉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몽마르트 속 결핍을 담아내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했다고 합니다. 부유한 백작의 지위를 가진 아버지가 있었음에도 낮은 곳을 바라보았던 로트렉. 어쩌면 로트렉이 결핍된 신체를 갖고 태어났기에 가질 수 있었던 시야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가 결핍된 사람이 아니었다면, 온전한 심신을 가졌더라면 고독과 결핍을 껴안을 수 있었을까요? 물론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로트렉 전은 군중속의 고독으로 고통받는 현대인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줍니다.


굿즈샵에서 산 6000원짜리 키링, 음~ 안 이쁘다!!


의무처럼 기념품을 구매하고 로트렉전 감상을 마쳤습니다. 얼마전에 르네 마그리트 멀티미디어 전보고 좀 실망했다고 적었었는데요. 정통 오리지날 전시회보니까 그건 그냥 달달한 음료수 같네요. 모르는 화가여서 공부하는 느낌으로 본 거라 쪼꼼 지루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전시회는!! 굿굿입니다. (???) 로트렉의 첫번째 내한공연 아니 내한 전시 잘봤어요. 다음에 또 보아요. 작지만 큰 성찰을 가진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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