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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청예 Nov 08. 2020

헬터스켈터, 붉고 파란 미쟝센

넘치도록 인위적인 미쟝센 속으로(스포O)

100% 주관적 해석입니다.

직접 감상 후 판단해보시길 추천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미술관 못가서 영화라도 보고 쓰는 생존신고글)



붉고 파랗고 노란 미쟝센
헬터스켈터의 천국, 연옥, 지옥
헬터스켈터, 2013


본 영화 좀 좋아한다, 아시아 미쟝센 영화에 관심이 있다 한다면 한번 쯤 봤을 영홥니다. 일본 현지에서는 유명했던 영화입니다. '사와지리 에리카' 이름만으로도 가십 만들어내긴 충분하니까요. 내용은 별거 없습니다. 만화가 원작인데요. 루키즘 집착으로 인하여 파멸해가는 여배우의 삶을 그려냈습니다. 스토리에 대한 얘기는 하고 싶어도 못할 정도로 음... 처참합니다. 아무튼 이 영화는 귀와 입보다는 눈을 위한 영화 같습니다. 미쟝센이 어마어마합니다.


리리코가 인기 절정이던 순간


쟝센이 정말 화려합니다. 눈이 아플정도로요. 많은 물품을 등장시키고 강렬한 색채 위주로 갑니다. 일본식 미쟝센이 딱 보이는 영화라고 해야할까요.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 <불량공주 모모코>, <사쿠란>을 보면 느껴지는 '일본느낌'의 연출이 진합니다. 하지만 위 3영화보다 이 영화가 부족한게 있다면.... 이 영화는 좀 과합니다. 좀 많이 인위적입니다. 감독이 미학공부 하다가 화가 난 걸까요? 마치 본인이 아는 걸 전부 다 보여주겠다는 심보로 만든 영화 같아요. 심각하게 인위적이라서 보다보면 살짝 질릴 정도입니다.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이나 <불량공주 모모코> 역시 작위적인 연출이 다수지만 스토리와 잘 어우러져서 아름답다/슬프다라는 메세지 전달이 확실한 편입니다. 그러나 <헬터스켈터>는 스토리가 메인이 아니라 미쟝센이 혼자 달려나가는 느낌이라 버겁습니다.



위 '예쁜 영화'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 매우 좋아하실 거예요. 탑배우 리리코에 걸맞는 영상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보다보니 색감 사용에 눈이 가더라고요. <헬터스켈터>에는 3가지 색감이 주를 이루고 습니다. 빨강/노랑/파랑 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차례대로 지옥/연옥/천국을 나타내는 것 같더군요. 한번 제 마음대로 해석해볼게요.



1. RED - 지옥


리리코의 집

 

영화의 지배적인 색감입니다. 영화 정말 빨개요. 특히 리리코의 감정이 가장 많이 표현되는 집을 표현하는 색감입니다. 그녀는 집에서도 빨간 홈드레스를 입고 새빨간 침실 등을 켭니다. 하지만 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순간도 편안하지 못합니다. '인기를 잃으면 어떡하지, 사랑을 받지 못하면 어떡하지.' 고민 뿐입니다. 분명 탁트인 창이 있어야할 구조인데, 거대한 입술 페인팅이 있습니다. 심지어 새빨간 입술이죠. 집에서도 세간의 관심과 가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그녀의 삶을 보여줍니다. 대중의 입안에서 굴리는 대로 굴러갈 수밖에 없는 그녀의 운명처럼.


리리코의 화장실


특히 화장실은 눈이 찢어질 정도로 새빨개요. '어떻게 저런 곳에서 똥싸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이 공간은 영화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리리코가 처한 지옥같은 삶을 잘 보여주거든요. 화장실 거울 속에 비치는 그림 보이시나요? 마리아와 그리스도 초상화입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눈 부분이 검열돼있어요. 검열bar하나만으로도 신성한 그림이 다소 왜설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림 위엔 'CAST'라는 글자가 살짝 보입니다. 캡쳐에는 못담았네요. CAST는 '배우'라는 뜻이 있죠. 즉, 그림 속 마리아와 그리스도는 오리지날이 아닙니다. 그럴듯해보이지만 모두 가짜, 인위적인 인물임을 나타냅니다.


새빨간 화장실로 달아나는 리리코


리리코 역시 오리지날이 아닙니다. 그녀는 전신성형으로 다시 태어난 존재입니다. 그녀를 만든 소속사 사장에게 누군가 "당신의 복제품이냐?" 라고 묻기도 하죠. 신성해보이지만 사실은 입맛대로 검열된 가짜 존재일뿐인 그림 속 초상화와 같습니다. 레플리카는 절대 오리지날을 이길 수 없는 법. 그녀는 자연미인 신예 고즈에의 등장과 함께 천천히 몰락합니다. 그리고 지옥 같은 삶이 시작되죠. 빨갛고 화려한 공간에서 그녀는 더욱 더 괴로워합니다. 구토를 하고 기절까지 합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새빨간 입들에게서 도망치지 못해요. 리리코는 자신을 고치려는 마음 보다 대중의 사랑을 잃기싫다는 욕망에 지배당합니다. 감독은 이 부분을 계속해서 보여줍니다. 그것도 엄청 작위적으로 강조합니다. 리리코의 처절함과 절망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요. 그리고 잊을만하면 자꾸 신성함을 보여주는 오브젝트를 노출시킵니다. 캡쳐 왼쪽의 뜬금없는 마리아상, 화장실 변기위의 황금 오브젝트들이 그렇습니다. 리리코 내면 어딘가에 숨어있을지도 모를 순수함을 보여주고 싶은 걸까요. 그럴 수록 그녀가 더 비참해지니까요.


리리코가 두 번 다시 찾지 못할 미소

그녀는 마지막까지 자신을 새빨갛고 화려한 공간에 가둡니다. 지하의 퇴폐술집, 화려한 음악이 울리는 바닥 아래에 한쪽 눈을 잃은 리리코가 있죠. 향기없는 장미들과 소품으로 둘러싸인채로. 아름다울지언정 지옥입니다. 끝내 구원을 받지 못하고 붉은 상태로 남아버립니다. 지옥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녀가 고즈에를 이기지 못했으며 대중의 사랑을 다시 되찾지도 못했으며 처절히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절대 꺼지지 않고 뜨겁게 타오르는 지옥불에 갇혀버린 리리코. 새빨간 악마들이 그녀를 속이고자 장미의 모습으로 위장한건 아닐까요.



2. YELLOW - 연옥


살바도르 달리, 연옥 8칸토


명화에서 지옥은 보통 붉은 색감으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명화 속 인물들이 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건 아니죠. 근데 천국을 가는 것도 아니라면? 그곳은 어디이며, 어떤 색감으로 표현해야할까? 살바도르 달리 작품처럼 연옥은 주로 녹색, 황색으로 표현되곤 합니다. 지옥과 천국의 중간이므로 지옥처럼 빨개서도, 천국처럼 푸르러서도 안됩니다. 중의적인 색감이 필요하죠. 그래서 녹색과 황색이 선택된게 아닐까하는...


리리코의 매니저


리리코를 사랑하는 매니저의 집입니다. 남자친구와 동거중입니다. 이들의 공간은 옐로우 톤입니다. 리리코의 시뻘건 공간과는 매우 대조적입니다. 그녀는 리리코처럼 지옥 속에 사는 인간이 아닙니다. 성실하고 착한 여성으로 나오죠. 그러나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갈 인물도 아닙니다. 리리코를 지나치게 가여워하고 사랑한 나머지 리리코가 하라는 대로 뭐든지 다해버리거든요. 나쁜 범죄까지 저지릅니다. 리리코로 인해서 서서히 타락해가죠. 하지만 마지막 미션, 고즈에를 죽이라는 임무는 수행하지 못합니다. 그런 그녀는 천국/연옥/지옥 중 연옥과 가장 잘어울리는 인물이 아닐까 싶어요.

 

리리코의 여동생


리리코는 오랜만에 여동생을 만납니다. 무슨 꽃인지는 모르겠는데 샛-노란 꽃밭에서 만나요. 성형으로 변한 언니와 태어날 때의 모습을 간직한 동생. 이 둘을 노란 꽃들이 보듬습니다. 이 장면을 봤을 때 저는 여동생에겐 파란 색채가 더 어울리지 않나? 싶었어요. 욕망이 없는 순수한 영혼으로 보였거든요.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저는 노랑이 연옥을 나타내는 것 같다는 해석을 굳혔습니다. 왜냐면 리리코가 실종된 후 여동생 역시 리리코처럼 전신 성형을 해버리거든요. 결국 리리코가 남긴 흔적은 사라지지않고 그녀의 여동생도 물들입니다. 리리코만큼 타락한 인물은 아닐지언정, 궁극적인 순수함은 잃어버립니다.


집으로 가는 길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답다 생각한 장면이었어요. 집으로 가기전 복도를 지나는 리리코와 매니저입니다. 알록달록한 벽이 보여요. 그녀의 집은 새빨갛고, 매니저의 집은 노랗지만 그 집 밖에는 알록달록한 세상이 있어요. 환한 빛도 들어오고 있어요. 하지만 그녀들은 이 아름다운 색을 이제 가질 수 없어요.



3. BLUE - 천국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지옥과 연옥, 남은 건 천국입니다. 대충 천국을 떠올려보라하면 우리는 푸른 이미지를 많이 상상합니다. 왜냐면 지옥은 지하에, 천국은 하늘에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하늘의 푸르고 청명한 이미지로 천국을 떠올리는게 자연스럽습니다. 저는 이 영화에서도 푸른색감=천국으로 정의했습니다. 하지만 <헬터스켈터>에 '유토피아'를 뜻하는 천국은 없어요. 구원의 공간이 아닌, '신의 영역'을 의미하는 천국일 뿐입니다.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으며 리리코의 마음을 초월하는 영역이요. <최후의 심판> 작품을 보면서도 알 수 있어요. 비록 신들이 천국에서 내려오고 있긴하나 인간들을 구원하러 오는게 아니라 심판하러 오잖아요? 때로는 천국이 아름다운 유토피아가 아니라 냉혹하고 엄격한 공간도 될 수 있어요.


수술실


리리코가 전신성형을 하는 수술실. 온통 파랍니다. 차갑고 창백한 공간. 하지만 성형을 참아내야만 그녀는 한단계 더 아름다워질 수 있어요. 본인이 믿는 인기의 정점까지 갈 수 있습니다. 메인 닥터가 마치 신의 계시처럼 그녀에게 '더한 것도 참아왔지 않냐'며 수술을 감행합니다. 물건을 마구 집어던지고 박살내던 집과 달리 이 곳 수술실은 리리코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냥 꾹 참아내야만 해요. 하지만 그녀가 수술실에서 받은 심판은 매정했습니다. 그녀는 가혹한 부작용을 얻게 되죠.


아쿠아리움에서 만난 변호사와 리리코


그런 리리코에게 불법 성형 범죄를 쫓고 있는 남자가 등장합니다. 제 기준 이 영화에서 가장 작위적인 인물 1위입니다(...) 리리코도 리리코지만 저 남자가 하는 말은 온통 작위 투성이에요. 살면서 단 한번도 내뱉지 않을 것 같은 말만합니다. 마치 소년만화 명대사마냥. 아무튼 그래서!! 저는 이 인물을 감독이 심은 마피아로 간주했어요. 작품 속 인물이긴 하지만 결국 감독이 하고싶은 말을 대신 해주는 사람... 나레이션 대신 등장인물로 나온 전지적 작가시점 대리인... 초월적 인물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만약 리리코가 이 남자의 말에 순순히 응했다면 구원을 받았을까요? 남자의 가르침과 지시를 수락했다면 구원을 받았을까요? 물론 이 인물이 신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리리코가 겪고 있는 서사를 초월한 시각을 가졌다는 점에서 마치 신으로 느껴졌어요. 리리코가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



아픈 현실을 잊기 위해 리리코가 찾는 약 컬러도 흰색과 청색입니다. 약을 먹어야만 리리코는 겨우 잠을 자고 안정을 취할 수 있어요. 지옥같은 삶을 잠깐이라도 벗어나게 해주는 약입니다. 물론 이 영화속에 천국이 없는 것처럼, 그 약을 먹는다고 치료가 되는 건 아니죠. 잠깐의 안정일 뿐입니다.



무서운 현실. 약에 취한 리리코는 상상을 합니다. 수중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모습. 푸른 바다속에 있는 듯 하네요. 하지만 이 상상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냉혹한 현실이 자꾸만 오버랩되죠. 지옥같이 새빨간 화장실에서 겨우 안정을 위해 채워넣은 푸른물. 그마저도 리리코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합니다. 결국 물을 약으로 보는 등 환각에 의해 기절하고 맙니다. 그 어떤 것도 리리코를 안락하게 해주지 않습니다.


그녀와 마마


리리코를 만든 소속사 사장이 있는 공간. 리리코는 그녀를 '마마(엄마)'라고 부릅니다. 리리코를 성형시킨 장본인이자 여배우를 만드는 창조자죠. 푸른 공간에서도 리리코는 새빨간 옷을 입고 있네요. 리리코는 소속사 사장이 돈 정산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의심합니다. 그녀를 '마마'라고 부르면서요. 하지만 정작 창조주인 사장은 냉철합니다. 말로는 리리코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낀다고 하지만 돈을 주지는 않아요. 오히려 인터뷰에서 자신도 별로 남는게 없다고 했죠. 신에게 아무리 기도하며 부탁해도 절대 들어주지 않는 것처럼 그녀에겐 자신을 만들어준 소속사 사장 역시 기댈 수 없는 존재입니다.



4. 끝


리리코 자신, 주변 인물들, 그녀가 거부할 수 없는 상대들. 모두 리리코를 구원해주지 못합니다. 못한건지 안한건지 모르겠네요. 리리코가 빗속에서 일렬로 서있는 자판기 앞에 앉아 우는 장면이 인상깊었어요. <헬터스켈터>는 한치의 평화도 없이 끝납니다. 작위적인 미쟝센과 강렬한 색감을 반복해서 보여주면서 말이에요. 감독이 뭘 말하고 싶어하는지 너무너무 잘 알 수 있었어요. 그러니 불필요한 연출은 조금 줄였어도 좋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사와지리 에리카 연기 실력에 감탄하면서, 일본식 미쟝센에 한번 더 혀를 내두르면서 감상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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