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서문_아트볼프로젝트/한수진/2024.10.3-8.
산장아파트와 아파트가 위치한 금오동 꽃동네는 장소성이 짙은 곳이다. 군사도시였던 의정부의 여느 공간이 그러하듯이 미군기지 2곳이 있었으며 산장아파트의 다른 이름은 외기노조아파트(외국기관노조 복지주택)로 미군기지에서 근무하던 노동자를 위한 거주공간이었다. 오래되어 멋스럽게 낡은 건물과 생경한 풍경이 먼저 시선을 뺏지만, 이같이 상징이 가득 내포된 장소와 이곳에서 거주하는 인물을 사진으로 담는다는 것은 이미지 읽기를 시도하는 눈을 빛나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한수진의 사진은 꽃동네와 산장아파트에 거주하는 인물을 담았지만 장소성과 개개인의 서사가 사진에 정착하지 않고 맴돌게 한다.
한수진은 의미를 좇아 촬영 대상을 사전에 섭외하지 않고 촬영을 결심한 날에 걷던 길에서 발길과 눈길이 멈추면 그 대상을 담아왔다. 《멋진 체류》에서 선보이는 사진의 대상은 우연성이 작동한 그녀의 이전 사진 연작인 〈3호선〉(2011-2021), 〈ilsan〉(2022-)과 달리 프로젝트 산장의 관계 맺기로 마주했지만, 이전 연작과 동일하게 처음 조우한 장소와 대상을 살피고 작가 개인의 기억과 감정의 이끌림에 따라 어깨에 진 카메라를 내려 조립한 뒤 촬영을 한다. 여전히 어깨를 무겁게 하며 걷고 그 짐을 풀어내어 시간을 좀 더 들여야만 하는 그녀의 작업 방식. 그 짧은 틈에 오고 가는 주전부리와 함께 건네받은 그들의 이야기가 머물게 된다. 이들이 머무는 장소에 대한 정보와 개인 서사보다는 촬영하는 동안 그녀의 감정이 잠시 정착한 곳이자 인물을 만난 장소에서 그윤곽의 사이사이*를 헤아린다.
자개장과 금색 빛의 커튼 앞에 앉은 인물을 촬영한〈멋진 체류 - 002〉를 살펴보면 집안의 기물과 인물이 닮아있다. 집에서 가장 개인적인 공간이자, 휴식을 위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안방. 얇은 음성을 가지고 있던 그녀의 어두운 주황빛 옷이 방안에 스며든다. 오른편 묵직하게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자개장과 커튼은 30여 년의 거주 기간을 상상하게 하며, 형광빛이 도는 이불은 한여름을 실감하게 한다. 낯선 대상을 향하는 눈과 입은 분명하다. 바로 옆의 〈멋진 체류 - 006〉속 남성은 거실 의자에 앉아있다. 체광이 들어오는 창문 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산장아파트 앞에 기다란 건물이 흐릿하게 비춘다. 멀끔히 빗질된 머리로 맞이한 그. 자신에게 가장 편한 공간일 거실에서 자세를 취하고있지만, 낮선 대상의 출현으로 다소 경직되었고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맞닿게 쥐고 있다.
시선을 돌려 입구를 등지고 오른쪽 창가를 바라보면 〈멋진 체류 - 012〉의 풍경이 눈을 사로잡는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어그러진 물건들로 가득한 빨간 벽돌의 2층 집. 꽃동네의 골목을 걷다 보면 그 생경함에 눈길을 끌지만 파악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두려움에 존재만을 확인하고 지나가게 되는 집이다. 이름 모를 개인의 집이지만 꽃동네의 시간과 풍경의 부분 부분을 담고있다. 동네를 거닐며 보았던 주인을 잃은 집, 잔뜩 우거진
풀들의 머묾을 떠올리게 한다. 앞서 언급한 사진 사이사이에 함께 걸린〈멋진 체류 - 009, 010, 011〉는 꽃동네에 거주하거나 찾는 아이들이다. 한 아이는 유아기 때 이곳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이곳이 지금은 낯설고, 얼굴이 닮은 남매는 꽃동네 구석구석을 자유롭게 누비는 꽃동네 아이들이다. 가장 어린아이는 항상 부모님의 손을 붙잡고 이곳을 온다. 마치 이곳을 아직 잘 알지 못해 맴도는 우리처럼.
〈멋진 체류 - 005, 007〉 속 인물들은 한여름의 발걸음에 잔소리를 건네지만 환대하며 맞이하고 옅은 미소를 띄고 우리를 바라본다. 각자의 모습으로 살아왔을 이들의 멋진 체류. 한수진은 이들을만난 장소와 이들에게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으며, 반짝이는 눈들이 쉽사리 하나의 의미로 읽고 소비하여 그 의미들이 바래지 않도록 그 윤곽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본다.
*한강의「 서시」의 어구를 인용했다.